그림과 지도로 보는 런던 Isle Of Dogs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에 이어 런던의 두 번째 금융 허브로 불리는 지역이자, 20세기 초 서인도 부두에서 과일 수입을 하던 선창에서 이름을 따온, 지금은 하늘과 맞닿을 듯 고층 빌딩이 밀집해 있는 카나리 와프(Canary Wharf)로 통칭되는 곳. 고층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으며, 새로운 빌딩 건설 현장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현재 진행형 도심인 이곳은 런던 중심가와는 또 다른 독창적인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곳이기도 하다. 카나리 워프가 속해있는 오늘날의 아일 오브 독스는 세련된 문명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이 땅은 템스 강이 자주 범람하는 습지와 목초지에 불과한 땅이었다. 이번 글에서는 아일 오브 독스의 사라진 풍경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역사 속 아일 오브 독스는 스텝니 마쉬(Stepney Marsh)로 알려진 땅이었다. Stepney는 교구이자 지명을, Marsh는 습지를 뜻한다. 템스 강의 수위가 올라가는 만조가 되면 땅의 많은 부분이 물에 잠겼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으로 불렸다. 13세기 무렵 진흙과 석회를 이용해 4.6미터가량의 제방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지만, 이후로도 템스 강의 범람 및 홍수로 인해 지속적으로 제방을 보수해야만 했다. 17세기 후반 네덜란드 화가 핸드릭 당케르츠가 그린 풍경화를 살펴보자. 이 그림은 그리니치 공원의 원 트리 힐(One Tree Hill)에서 바라본 그리니치의 전경을 담았다. 두 개의 흰 건축물이 보인다. 현재까지도 잘 보존되어 있는 이 건물은 왼쪽이 퀸스 하우스(Queen's House), 오른쪽이 킹 찰스 코트(King Charles Court)이다. 킹 찰스 코트 뒤편, 강 너머 오른쪽 들판이 지금의 아일 오브 독스이다. 이 그림에서는 불분명하지만 섬 중앙 길을 따라 나무들이 있는 곳에는 당시의 지도로 The Chappell이라 표기된 예배당이 존재했다. 예배당은 아래에 첨부된 또 다른 그림과 지도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림이 보여주듯 주변 땅은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반대편의 그리니치와 달리 주거를 위한 건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당시에는 소, 말, 양과 같은 가축을 방목하는 목초지로서의 역할을 했다. 이곳의 풀이 신묘했는지 병에 걸린 가축들을 소생시키는 목초지로 유명했다.
1740년 지도를 보면 북쪽 지역에 킬링 그라운드(Killing ground)가 존재했는데, 이곳은 도축장이었다. 목초지에서 살을 찌운 가축들은 해당 도축장에서 도축되거나, 런던의 유명한 스미스 필드 가축 시장으로 끌려갔다. 지도의 남쪽에는 페리 하우스가 위치해 있고, 지도 중앙에는 위에서 언급한 예배당이 보인다.(이전 시대의 지도에서는 The Chappell로 표기되었다가 이후 Chapel House로 표기)
로버트 도드(Robert Dodd)의 그림은 아일 오브 독스 남쪽 선착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템스 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쌓은 제방 안쪽으로 소들이 방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제방 위로는 세련된 옷을 입은 인물들이 산책을 한 후 배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이고, 그 앞쪽으로 제복과 삼격형 모자를 쓴 그리니치 병원의 연금 수급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들은 해군에 복무하며 부상을 당한 상이군인들, 혹은 은퇴 후 보살핌이 필요한 퇴역 해병들이었다. 한 명은 다리에 붕대를 감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나무로 만든 의족을 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에서의 아일 오브 독스는 평화롭고 소박한 정취를 풍긴다.
1543년 <런던의 파노라마(Panorama of London)>는 예배당을 기록한 최초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12세기에 최초로 언급된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에 그림으로 남겨지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배당은 아일 오브 독스 내에서 가장 높은 지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템스 강의 범람으로부터 안전할 수 있었다. 중세부터 근대까지 기록된 아일 오브 독스 내 유일한 건축물이 이 예배당이다. 하지만 이 건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1868년에 개장한 밀월 독(Millwall docks)을 지으면서 철거되었고, 예배당이 남아있던 터는 물속에 잠겼기 때문이다. 현재는 원래 예배당이 있던 위치보다 조금 남쪽에 채플 하우스 스트리트(Chapel House Street)라는 도로명으로만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1703년에 제작된 지도에서 서쪽 강변에 풍차가 다수 존재했던 것을 알 수 있다. 이 지도에는 위치와 이름이(풍차의 소유주로 알려져 있음) 자세하게 표기되어 있다. 오늘날의 카나리 워프에서도 강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데, 밀집한 공간에 높게 세워진 빌딩으로 인한 와류 현상인 줄 알았지만 이 지도를 보고서는 역사적으로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라는 걸 알게 됐다. 지금과 비슷한 바람이 당시에도 불었다면 런던 내에서 풍차를 세우기에 이보다 이상적인 장소는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 풍차들은 다수의 그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695년 네덜란드 화가 잔 그리피어(Jan Griffier)의 그림에서 서쪽 강변을 따라 풍차가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1747년의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판화에서도 풍차가 그려진 아일 오브 독스가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 풍차들은 1600년 후반 무렵 제방 위에 만들어졌으며 처음에는 옥수수를 제분하는 용도로 사용됐다가 나중에는 식물의 종자에서 기름을 추출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아일 오브 독스의 남서쪽을 밀월(Millwall)이라고 부르는데 이 지명이 제방 위로 풍차가 줄지어 세워진 풍경에서 유래됐다. 산업 혁명 이후 증기기관이라는 새로운 동력의 등장과, 지역의 기반 산업이 무역업, 조선업, 제철업등으로 재편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서쪽 제방을 따라 풍차가 돌아가고, 가축들이 들판에서 풀을 뜯는 목가적인 모습의 아일 오브 독스는 이제 사라지고 없지만, 마쉬 월 도로(Marsh Wall Road), 밀월(Millwall), 채플 하우스 스트리트(Chapel House Street)와 같은 형태로 남아 여전히 현재를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