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들의 마지막 항해, 템스 와핑

그리고 최후의 맥주 한 잔

by 괴발자 H
18세기 런던 와핑(Wapping)의 처형장에서 교수형 당하는 해적을 묘사한 판화, 오른쪽 배경에 로더하이트(Rotherhithe)의 세인트 메리(St Mary's) 교회가 보인다

템스 강 수위가 낮아지자 와핑(Wapping) 강변을 오르내릴 수 있는 돌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템스 강의 가장자리가 드러나는 썰물 시간에 맞춰 강기슭에 교수대가 만들어졌고, 사형 선고를 받은 악명 높은 해적의 마지막 모습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교수대를 볼 수 있는 곳은 이미 구경꾼들로 가득했다. 길거리뿐만 아니라, 템스 강 위로도 배들이 정박했고, 배에서도 사형 집행 장면을 보기 위한 사람들로 붐볐다. 타워 브릿지에서 동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와핑 강변은 교수형을 집행하는 공개 처형장(Execution Dock)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1800년에 제작된 지도의 하단 중앙 부근에 와핑 스트리트(Wapping Street)에서 템스 강의 처형장(Execution Dock)으로 가는 길이 표시되어 있다

런던에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공개 처형장이 있었다. 런던탑(Tower of London)은 반역자를, 스미스필드는 (Smithfield) 이단자와 마녀를, 와핑(Wapping)은 해적을, 타이번(Tyburn)은 일반 중범죄자를 다루는 공개 처형장이었다. 해적 처형장이 와핑에 있었던 이유는 런던 부두가 와핑에 있었기 때문이다. 교역을 위해 런던으로 배를 타고 오는 모든 상인, 선원, 해적, 밀수꾼들은 반드시 와핑 처형장을 거쳐야만 했고, 그 길목을 지나는 범죄자들에게는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1760년 5월 5일 타이번에서 페러스(Ferrers) 경이 재정 관리인을 살해한 혐의로 처형되는 장면을 담은 판화, 좌우로 관람석이 보인다.

19세기 중반까지 런던에서는 공개 처형이 지배적이었고, 의도된 행사였다. 국가의 권위를 과시하는 전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고, 희생자의 가족과 이웃에게는 정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여줬다. 무엇보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억지력을 주기위해 만들어진 의식이었다. 세간의 이목을 끄는 공개 처형은 인기가 높았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는데, 18세기 런던의 유명한 도둑이자 탈옥범 잭 셰퍼드의 공개 처형에는 그의 사형 집행과 호송 행렬을 보기 위해 20만에 가까운 군중이 모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752년, 존 스완과 엘리자베스 제프리스가 처형장으로 호송되는 행렬을 묘사한 인쇄물, Bispham Dickinson, British Museum

현장에서는 범죄자들의 입을 통해 최후의 진술을 들을 수 있었다. 길거리 행상들은 범죄자가 누구이며 일으킨 사건, 죄목, 진술 등이 담긴 팸플릿을 현장에서 팔았고, 처형 다음날에는 범죄자들의 처형 장면을 묘사한 인쇄물이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현재로서는 공개 처형을 관람한다는 걸 상상하기 어렵지만 당시에는 일 년에 여러 번 있는 익숙한 오락거리였다. 부유한 사람들은 시야를 해방받지 않고 볼 수 있는 좌석을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했고,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과 이들에게 인쇄물 및 길거리 음식을 파는 행상들로 분주했다.

런던의 세븐 다이얼스에서 제작된 한 장 짜리 인쇄물(Broadside), 사형과 관련된 삽화, 사건에 대한 개요, 법정 진술 등이 쓰여있었고, 길거리 행상인들에 의해 판매되었다.

와핑에서 처형이 이뤄지던 시기에 런던 내 두 개의 악명 높은 교도소가 있었다. 템스 강을 기준으로 북으로는 스미스 필드와 블랙프라이어 사이에 위치한 뉴게이트(Newgate, 1188-1902) 교도소와, 남으로는 서덕의 버로우 역 근처의 마샬시(Marshalsea, 1373–1842) 교도소였다. 이곳에 수감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해적들은 사형 집행일 날 와핑의 처형장으로 호송되었다. 교도소에서 처형장으로의 호송은 영국 해군의 권위를 상징하는 은색 노를 필두로 해군 원수 또는 그의 대리인이 탄 마차, 치안 담당관, 집행관 등이 행렬을 이끌었다. 뉴게이트에 수감된 사형수는 콘힐, 화이트채플 로드, 커머셜 로드를 거쳐 와핑으로 호송되었고, 마샬시 수감자는 런던 브릿지, 런던탑을 지나 와핑으로 이동했다. 거리는 이들의 행렬을 보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교수형이 집행되기 전 해적들에게 1리터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 술은 이들의 목에 올가미가 둘러지기 전 내뱉던 자백, 회개와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기는데 도움이 됐다는 설이 있다.

대공습으로 사라지기 전 1936년에 그려진 캡틴 키드의 교수형에서 맥주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와핑 강변의 펍, The Turks Head, Arthur Pitts

교수형 후 시신은 무덤에 묻히는 경우도 있었지만 해부를 위해 외과 병원으로 보내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선원들에게 본보기가 필요했던 사형수들은 아일 오브 독스, 블랙월, 틸버리등 템스 강 하류로 옮겨져 세 번의 조수가 있기까지 강변에 전시된 후 수습되었다. 이는 런던을 오가는 모든 배의 선원들에게 바다 위에서의 살인, 반란, 해적질과 같은 범죄를 일으키지 않도록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관습이었다.

19세기, 캡틴 키드의 시신이 깁벳에 결박된 상태로 교수대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와핑에서 교수형 당한 인물 중 유명한 해적은 보물섬의 모티프가 된 캡틴 키드로 알려진 윌리엄 키드( William Kidd)이다. 뉴게이트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키드는 살인 및 해적 행위에 대해 유죄를 판결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1701년 5 월 23일 런던탑을 지나 와핑의 처형장으로 호송된 그는 신의 장난이었는지 첫 번째 교수형 시도에서 목줄이 끊어지는 바람에 두 번이나 교수대에 올라야 했다. 그의 시신은 명성만큼이나 3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수습되지 못한 채, 강변에 매달려 있어야 했다. 시신을 새들이 쪼아 되는 것을 방지하고 오랫동안 유지하기 위해 타르로 칠해진 뒤, 깁벳이라 부르는 인간 철장에 결박되어 있어야 했다. 깁벳은 머리, 몸, 다리가 떨어나가지 않도록 고정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대부분은 대장장이에 의해 사형수의 신체에 맞춤 제작되었는데, 어떠한 것들은 다양한 신체 크기에 맞게 조절 가능하면서 재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되기도 했다.

1747년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산업과 게으름 시리즈 중 다섯 번째 판화, 배경에 아일 오브 독스의 교수대에 시신이 매달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해적의 시신을 걸어두는 교수대는 템즈강을 오가는 선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강변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깁벳이 강바람에 흔들려 끼릭끼릭 거리는 마찰음은 섬뜩할 뿐만 아니라, 미신을 믿는 뱃사람들에게는 이 장소를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불경한 장소였다. 반면에 이걸 돈벌이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바로 그리니치 병원의 연금 수급자들이었다. 이들은 퇴역하거나, 부상을 당한 선원들이었기 때문에 망원경을 구하는 것도, 다루는 것에도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연금 수급자들은 그리니치 공원의 원트리 언덕에서 방문객들에게 1페니의 비용을 받고 망원경을 빌려줬고, 사람들은 강둑에 매달려 있는 해적의 시신을 구경했다. 이 내용은 찰스 디킨스가 쓴 <보즈의 스케치>, 그리니치 페어 챕터에도 묘사되어 있다.

1페니의 비용으로 망원경을 빌려주는 연금수령자들은 렌즈를 통해 보이는 템스강, 돛대 하우스, 선박, 쇠사슬에 매달려 있는 남자의 장소와 같은 흥미로운 광경 등에 대해 솔로몬도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을 한다.
1853년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에 묘사된 그리니치 파크의 한 장면. 한 신사가 망원경 앞에 서있고, 그 뒤로 삼각형 모자를 쓴 그리니치 연금 수령자가 보인다.

그리니치 공원에서 가장 근접한 교수대는 강 건너편 아일 오브 독스의 교수대였기 때문에 망원경으로 들여다본 쇠사슬의 남자는 윌리엄 호가스의 그림 배경 중 하나로 묘사된 교수대에 매달려 있었을 것이다. 어찌 보면 현대의 동전 넣고 경치를 보는 망원경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렌즈를 통해 바라본 대상이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다.


https://www.historic-uk.com/HistoryMagazine/DestinationsUK/Execution-Dock/

https://landmarksinlondonhistory.wordpress.com/2017/12/03/the-shoreline-of-mortality-wapping-execution-dock/

https://en.wikipedia.org/wiki/Tyburn

https://en.wikipedia.org/wiki/Newgate_Prison

https://en.wikipedia.org/wiki/Execution_Dock

https://cutt.ly/x8KDZMg

https://cutt.ly/98KFYnR

https://www.bl.uk/onlinegallery/onlineex/crace/a/007000000000018u00038000.html

https://www.bl.uk/onlinegallery/onlineex/crace/a/largeimage8838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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