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만에 무슨 일이?
이 소설은 무명작가인 '나' 가 재벌 총수의 운전 기사인 '유재필(유자)' 의 일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기본 줄기이다. 이문구 작가 특유의 풍자와 해학이 '유자' 의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언어유희 등을 통해 구체화된다.
유자는 말재주가 좋고 농담도 잘하지만 소신이 뚜렷하고 강자의 눈치를 보지 않는 성격이다. 약자에게는 부드럽고 강자에게는 강직한 사람인 것이다.
유자는 택시 운전을 하다가 운좋게 대기업 총수의 운전기사가 된다. 어느 날 유자는 한 마리당 수십만원씩(지금 시세로는 천 만원 가까운 금액으로 추정) 하는 수입 비단 잉어 여러 마리를 대기업 총수가 들여놨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비단 잉어는 클래식 음악이 들리면 꼬리를 흔들며 춤을 춘다. 전부 합하면 그 회사 직원 여러 명의 몇 달 월급이었고 출판사 다니는 친구 ‘나’ 의 몇 년 월급이었다. 유자는 매우 아니꼬움을 느끼고 친구에게 ‘뱉어낸벤또(베토벤)’, ‘차에코풀고싶어(차이코프스키)’ 의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추는 딴따라 고기라며 언어유희를 이용해 해학적으로 아니꼬움을 표현한다. 얼마 뒤 이 비단잉어들은 원인을 알 수 없이 다 죽어버리고 총수는 그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진다. 그는 ‘후진국에 시집와서 춤도 춰야 하고 객고도 쌓여 힘들어 죽었겠쥬’ 라며 천연덕스럽고 익살스럽게 잉어의 죽음에 대해 예측한다. 그리고 다음날, 놀랍게도 잉어들의 시체를 어떻게 했냐는 총수의 질문에 매운탕을 끓여서 먹어버렸다고 대답한다. 총수는 ‘천하의 독종’, ‘잔인무도한 것’ 이라며 유자를 비하하고 괘씸해한다. 이러한 총수의 태도는 정작 자신이 부리는 사람에게는 냉정하면서 비싼 비단잉어에만 애정을 보이는 위선적이고 허영심 많고 비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이를테면 재벌 총수의 애완견이 죽었는데 그 애완견으로 보신탕을 해서 먹은 격이라 설명했다. 학생들은 의아해하며 질문한다.
“샘, 총수가 너무 착한데요? 총수가 전혀 비인간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오히려 인간적인 것 같은데요?”
얼마 전, 영화 베테랑이 크게 인기를 끌었다. 학생들에게 익숙한 재벌의 행태란 총수의 사촌 동생이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는 화물트럭 기사를 야구 방망이로 피멍이 들도록 마구 폭행하고 매값으로 2천만원을 던져주거나, 직원을 무릎 꿇리고 승객들이 탄 비행기를 회항시켜버리는 사건 같은 극심한 갑질이다. 본격적으로 세습 자본주의로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이런 엽기적이고 괴이한 징후들은 이대로라면 더욱 심해질 것이다.
“여러분의 말이 맞다. 1970년대는 한참 우리나라가 산업화되기 시작했던 시기이고 지금처럼 자본이 신분을 촘촘하게 규정하지 않았던 시기이다. 자본의 힘이 지금처럼 막강하지도 않았던 것이지. 하지만 사람보다 자신의 허영심을 채워주는 값비싼 애완 동물을 더 중하게 여기는 총수의 행태는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어. 그 때 당시의 시각에서는 비인간적, 위선적인 것이지. 어쨌든 문제에 나오면 이렇게 답해야 해.“
질문한 녀석이 대답한다.
“예전 시대가 훨씬 살기 좋았던 것 같네요.”
다른 녀석이 불쑥 말한다.
“샘, 저는 20대 맞고 2천만원 준다 하면 그거 좀 맞고 받을 것 같아요. 2천만원이잖아요.”
주변의 아이들이 피식 웃는다. 이 아이들은 그 말의 무서운 의미를 알고 하는 말일까? 아니면 벌써 이 사회에서 발휘하는 자본의 절박함과 위대함을 짐작하고 있는 것인지?
“시대는 진보하지 않고 퇴행하였으며 우리 사회는 잠깐 누린 민주주의 사회에서 점점 멀어져 오히려 봉건 사회와 가까워지고 있다. 1970년대의 재벌 1세대들은 대를 이어 그들의 부와 권력을 세습했고 1세대 재벌이 재벌 2세, 재벌 3세로 이어지면서 자본주의는 신자본주의가 되었다."
시간도 부족하고 너무 학생들의 꿈을 꺾는 것 같아 뒤의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이제는 장기 불황과 저성장 시대로 들어섰고 사회 구조적인 모순이 누적되면서 평범한 사람들은 부의 축적은커녕 취업조차도 힘든 사회이다. 아마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 중 반 정도가 겨우 취업할 것이고 그나마 취업한 자리도 대부분 비정규직일 것이다. 나머지 반은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 준비를 하거나 노량진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을 전전할 것이다.
뭐든 열심히 노력하면 원하는 대로 될 수 있고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어른들의 말은 대다수에게는 통하지 않는 거짓말이다. 적어도 이런 사회에서는. 그 말을 하는 본인조차도 요즘 젊은 세대들과 여러분들이 겪는 것 같은 살벌한 생존 경쟁을 해본 적이 없다. 의미도 모른 채 기계적으로 내뱉는 말이다. 그 말의 정확한 뜻은 바늘 구멍을 뚫기 위해 피흘리는 치열한 전쟁을 통과해야 하고 그 스펙을 만들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착취해야 한다는 뜻이다. 더 무서운 것은 그렇게 해도 그 바늘구멍을 뚫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차라리 그 바늘구멍을 넓히기 위한 행동이나 투쟁이 더 가능성이 있다.
막상 바늘 구멍을 뚫어도 기다리는 삶은 이러하다. 전국민이 소수의 공무원이나 성공한 자영업자를 제외하고 재벌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 재벌은 임원을, 임원은 정규직 직원을, 정규직 직원은 비정규직 직원을 착취한다. 말 그대로 아비규환의 지옥이다.
그러니까 어른들의 거짓말에 속지 말고 차라리 혁명을 준비하라.”
시간과 용기가 있었다면 했을 말을 못하고 이렇게 대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