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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Mar 25. 2017

생리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

여성이 타자가 아닌 사회를 꿈꾸며

 한 여학생이 망설이는 표정으로 쭈뼛거리면서 와서 어렵게 입을 연다.


"선생님, 제가 .......는데요."


 모기만한 목소리라 들리지가 않는다. 눈동자를 굴리고 눈치를 보면서. 두려워하는 것 같고 불안해하는 것 같다. 옆자리 남자 선생님을 의식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제 감이 온다.

"아..생리한다고?"

 목소리를 낮춰서 얘기해주니 고개를 끄덕인다. 갑자기 시작되서 당황했다고, 해결하고 가려면 수업 시간에 좀 늦겠다는 말을 한다. 생리대는 있냐니까 빌렸다고 한다. 생리통이 심하면 보건실에 가서 약을 받아가라고 말해주니 그제야 안심이 되는지 얼굴이 펴진다.


 그냥 큰소리로 얘기하면 안되는 걸까? 왜 우리나라에서 생리는 쉬쉬하고 감추고 여자가 몰래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할 짐 같은 존재일까? 그렇지만 나 역시 큰 소리로 이야기할 수 없다. 아이가 원하지 않을 것이므로 목소리가 낮춰질 수밖에 없다.


 문득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이라는 영화가 떠오른다. 그 영화에서 주인공이 소속된 여성 핸드볼팀은 경기를 제대로 못해서 남자 감독에게 질책을 받고 특히 실수를 한 어린 선수는 호되게 혼난다. 나중에 감독이 없는 여자 선수들만의 자리에서 그 선수는 울면서 생리 중이라는 말을 못한 채로 억지로 참고 하다가 제대로 못한 것이라며 눈물을 흘린다.

 이 영화는 여성들이 결국 피해갈 수 없는 '타자'의 운명을 다루고 있다. 감독은 남성이고 감독의 지시와 지도를 받는 선수들은 여성이다. 남성은 생리를 안하고 여성은 생리를 한다. 몸의 제약에서 자유로운 남성은 사회의 주류가 되고 거의 모든 영역에서 판을 짠다. 즉 시스템을 형성한다. 하지만 어느 정도 이상의 나이가 된 여성들은 생리 뿐 아니라 출산, 육아, 가사일 등 수많은 짐들을 짊어지고 산다. 벗어날 수 없는 몸의 제약에 묶여 마치 모래주머니를 발목에 달고 뛰는 듯한 느낌으로 허덕이며 살아간다.

 그러나 타자의 자리를 벗어날 수 없을 뿐 아니라 유독 여성에게 더 엄격하고 가혹한 나이와 미에 대한 기준으로 인해 '나이먹었다, 이제 늙었다' 는 조롱과 수군거림의 대상이 된다. 영화 초반부에 여기가 양로원이냐는 조롱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같은 팀 어린 여선수이다. 생리 사건은 타자로 운명지어진 여성들을 연대하게 만들고 어린 선수들과 작품 속에서 시종 아줌마로 불리는 선수들의 화합에 기여한다.

 언제나 이미 특정 성 위주로 짜여진 판 속에서 눈치보고 쭈뼛거리고 타자로 떠도는 수밖에 없는 수많은 한국 여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도 그 중의 하나였다. 내가 본 많은 한국 여자들은 부끄러워하고 눈치를 보고 망설이고 참는 것을 잘한다. 그들은 착하고 헌신적이고 상황에 잘 적응하며 그래서 역설적으로 강하다. 하지만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내고 권리를 요구하고 할 말은 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하다. 그런 여성은 '센 여자' 로 낙인찍히고 별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 번은 여자반인 우리반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러분, 생리는 죄가 아니다. 부끄럽고 감춰야 할 것도 아니다. 여성이라면 누구나 하는 당연한 신체 현상이다. 생리 때문에 배가 아프고 옷을 갈아입어야 하고 수업에 늦는다면 그냥 당당하게 말해도 된다. 남자 선생님한테도 쭈뼛거리지 말고 당당하게 말해도 된다.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학생들의 얼굴이 환해진다. 그렇지만 나도 안다. 소심하고 유순한 여학생들은 여전히 망설이고 참고 또 참을 것이다. 이미 짜여진 틀은 견고하고 단단하니까.

 그 안에서 뭔가 다른 모습, 특이하고 모난 것처럼 보이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쉽지 않다.

 당장 나 스스로도 생리 때문에 보건 휴가를 쓰는 여교사를 본 적이 없다. 휴가는 커녕 조퇴도 쉽지 않다. 나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타인이 하는 것을 본 적도 없다. 항상 휴일에 생리를 하길 간절히 바라며 그러지 못할 때는 진통제를 먹으며 억지로 버텨왔다. 그래서 생리를 하는 날은 늘 벌 받는 날과 같았다. 법적으로 보장된 보건 휴가는 장식에 불과하다.

 하지만 원래 변화는 느리고 천천히 오는 것이고 언젠가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고 사회에 진출하였을 때는 조금 달라진 사회가 될 것이라고,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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