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쟁이 써니 Mar 30. 2017

봄은 반드시 온다는 희망과 확신이 결국 봄을 불러온다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속 희망의 위대함에 대하여

 약 1년 전인 2016년 1월, 신영복 교수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 분의 마지막 책이었던 '담론' 의 '마지막 강의' 라는 부제가 가지던 의미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1.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

작가는 '담론' 의 뒷부분에서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를 소개한다며 '석과불식' 을 제시한다.

 

 마지막 글 “희망의 언어 석과불식”입니다. 내가 가장 아끼는 희망의 언어입니다. 20년을 견디게 한 화두였습니다. 석과불식은 “씨 과실은 먹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입니다. 씨 과실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줍니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그림은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찹니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 내는 지혜이며 교훈입니다.

 신영복 교수님께서 돌아가신지 1년이 된 지난 겨울,  내가 참여하는 독서 모임에서 그 분의 대표작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다 같이 읽기로 했다. 학창 시절 한 번 읽었고 국어 교과서에도 본문이 실려 있어서 금방 읽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밀도 높은 문장들이 담고 있는 무게가 진중하여 생각보다 천천히 읽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겨울이 물러가고 눈앞에 봄이 성큼 다가온 2월 말, 책을 다 읽었다.

 

 책을 읽으며 그 분이 말씀하신 '석과불식' 의 장면이, 희망의 씨앗이 새싹을 틔워 큰 나무가 되고, 나무가 거대한 숲이 되는 장관이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 같은 환상을 보았다. 이 책 한 권 속에 담긴 사색은 이 위대한 장관의 실체였다.

 눈앞에 길고 밝은 미래가 펼쳐져있던 청년이자 학자였던 저자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평생을 감옥에서 보낼 운명의 덫에 걸렸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응당 그러한 운명의 포로가 된 사람이 가질 법한 원망, 분노, 억울함, 저주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작가는 마치 온몸으로 묵묵히 겨울을 견디는 나목처럼 조용히, 차분히 견뎌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훨씬 덜한 역경에도 분노하고 좌절하고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도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참을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토록 의연할 수 있었을까?

 답은 희망이었다. 농촌에서 씨가 되는 과실을 먹지 않고 아끼듯 그 분은 희망을 애지중지하며 아끼고 끝까지 지켜냈다. 희망이 생명이고 역경을 이기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20년의 오랜 겨울을 버티어내고 이겨낸 작가는 석방 후 학자와 작가로서의 삶을 꽃피우며 '석과불식' 으로 지켜낸 희망의 씨앗을 무성한 나무로 키워낸다.


2. 나목 그리고 나비

 이들은 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애정을 표현하고 본보기로 삼고 싶어하는 존재들로 등장한다.


 한 마리의 연약한 나비가 봄하늘에 날아오르기까지 겪었을 그 긴 '역사'에 대한 깨달음이 겨우내 잠잠던 나의 가슴을 아프게 파고들었습니다. 작은 알이었던 시절부터 한 점의 공간을 우주로 삼고 소중히 생명을 간직해왔던 고독과 적막의 밤을 견디고...징그러운 번데기의 옷을 입고도 한시도 자신의 성장을 멈추지 않았던 각고의 시절을 이기고...이제 꽃잎처럼 나래를 열어 찬란히 솟아오른 나비는, 그것이 비록 연약한 한 마리의 미물에 지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적어도 내게는 우람한 승리의 화신으로 다가옵니다.



 햇빛 한 줌 챙겨줄 단 한 개의 잎새도 없이 동토에 발목 박고 풍설에 팔 벌리고 서서도 나무는 팔뚝을 가슴을, 그리고 내년의 봄을 키우고 있습니다. 부산스럽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에 비해 겨울을 지혜롭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들은 희망의 상징이자 화신이다. 겨울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을, 봄은 반드시 온다는 것을 믿고 냉혹한 추위를, 징그러운 번데기의 시기를, 견뎌내며 인내한다.

3. 겨울에 대한 긍정

 그렇다면 그 힘든 겨울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어떨까? 의외로 작가는 겨울에도, 겨울이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인생의 역경에도 긍정적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필연적으로 봄이 오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겨울에 땅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개구리, 파리, 너구리, 잠자리, 매미, 뱀, 곰...우리들의 생각, 우리들의 역사는 실은 겨울에 키크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기다림은 더 많은 것을 견디게 하고더 먼 것을 보게 하고,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눈을 갖게 합니다.


기다린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참고 견디게 하고, 생각을 골똘히 갖게 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자기의 자리 하나 굳건히 지키게 해주는 옹이같이 단단한 마음입니다.


어떻든 봄은 산 너머 남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발 밑의 언땅을 뚫고 솟아오르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나무의 나이테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나무는 겨울에도 자란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겨울에 자란 부분일수록 여름에 자란 부분보다 훨씬 단단하다는 사실입니다.


 겨울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하지만 마땅히 봄이 오기에 기다림을 견뎌낼 수 있다. 봄은 거창한 것도, 멀리서 오는 것도 아니다. 봄은 우리 발밑에서 언땅을 뚫고 찾아오고, 우리 내부에는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생명력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그리고 기다림은 나쁘지만은 않다. 계절 겨울이 만물을 더 성장하게 하고 더 단단해지게 하는 것처럼  인생의 겨울도 마찬가지이다.

 나의 개인적인 겨울은 나에게 깊은 상처와 좌절을 안겨주었고 그 어떤 위로로도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없었다. 내가 다니던 교회도, 기도도, 성경 구절도 기만으로만 느껴졌다. 나름 진심어린 조언과 위로였을 말들도 그낭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그저그런 말들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 어디에서도, 종교에서도 받을 수 없었던 치유와 위로를 이 책에서 받았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 모두는 씨앗과 같은 희망을 품고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가 봄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겨울은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준 신영복 교수님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신영복 교수님처럼 자기 안의 희망의 씨앗을 발견하여 푸르고 찬란한 나무로 키워낼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생리한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하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