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을 지지합니다
미투 운동과 피해자들이 당한 경과를 들으면서 예전에 읽은 책의 몇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읽으면서 깊은 혐오감과 섬찟함에 몸서리치게 했던 장면이었다.
1. 소설 토지에는 최 참판 댁 여종 삼월이가 그 집을 점령하여 새 주인이 된 조준구에게 강간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조준구의 심복 노릇을 하는 하인 삼수는 은밀하게 조준구를 도와 삼월이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을 알려주고 삼월을 유도하여 그 행위가 가능하도록 도운다. 이 장면을 여고생 때 처음 봤을 때 마치 벌레를 보는 듯한 혐오감이 엄습했다.
미투 운동 과정에서 피해 여성들이 성추행을 당한 경과를 자세히 이야기할 때 이 조력 남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윤택 연출가가 안마를 빙자한 성추행을 강요할 때 피해 여성을 연출가 방으로 보내고 하소연을 무마시킨 조력 남성들이 있다. 조민기 배우가 강간을 시도하려고 피해 여성을 차 안으로 유인했을 때 같이 타고 가라고 부추긴 남성들이 있었다.
강간이나 성추행 행위를 하는 남성도 그렇지만 이를 도와주는 남성도 아주 벌레같이 역겹고 혐오스러운 것들이다.
2.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조선시대를 다룬 역사책이었는데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 여종들의 험난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다루었다. 여종은 성적으로도 주인 남성에게 종속되고 젊고 예쁜 여종은 표적이 된다. 책에서는 충격적이게도 예쁘고 어린 여종을 강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비법을 양반 남성들끼리 공유한 시를 소개하고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본인을 육식 동물, 여종을 초식 동물에 비유한 살면서 본 것 중에 가장 소름끼치고 혐오스러운 시였다. 이런 일이 얼마나 많이 벌어졌고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이 벌레 같은 종자들이게 짓밟혔던 것인지를 생각하면 솟구치는 분노와 살의를 참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미투 운동을 보며 이 모든 일이 과거형이 아나라는 것이 더 공포스럽다. 과거 신분제 사회에서나 벌어졌던 일들이 눈앞에서 펼쳐지면서 과연 나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나 하는 생경함이 엄습했다. 어쩌면 21세기에 살고 있다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 많은 여성들은 아직 봉건 시대에 빠져나오지 못하고 고통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3. 피해 여성들은 유독 연극계에 소속되었던 분들이 많다. 이와 관련해서 박노자 작가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 생각났다. 박노자 작가는 한국인들이 김일성 일가 북한 세습 체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이 외부자의 시선으로 봤을 때 의아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런 작은 북한 같은 공간이 한국 내에 너무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김일성을 섬기듯 누군가를 섬기면서 김일성을 숭배하는 북한 주민을 비웃는 한국인들이 의아하다고.
이재용이 삼성을 계승했을 때 북한과 삼성의 공통점을 비웃는 기사가 나기도 했지만 삼성처럼 오픈되지 않은 집단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어쩌면 더 무섭다. 예를 들어 사학 재단에서 이사장이 누리는 지위는 이재용 못지 않다. 연극계도 이런 폐쇄성과 권위주의가 판을 치는 소왕국들의 결합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이윤택 연출가에게 피해를 당했던 여성이 그를 극단의 왕이었다고 지칭했다. 연극계 뿐 아니라 얼마나 많은 폐쇄된 불합리한 공간에서 많은 피해 여성들이 벌레 같은 왕과 그를 위한 조력 남성들에게 시달리고 있는 걸까. 아직 밝혀지지 않은 피해자들이 얼마나 많을까.
4. 토지에서 삼월이는 결국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지금이 21세기라는 가장 명확한 증거를 미투 운동이 보여주고 있다. 봉건 사회와 다른 점은 피해 여성 외모를 평가하거나 피해 여성 탓을 하고 실명부터 밝혀야 믿어주겠다는 덜 떨어진 남성도 여전히 있지만 지지하고 연대를 원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도 못지 않게 커졌다는 것이다.
21세기 여성들은 왜곡된 권력 구조와 그로 인해 파생된 성 착취에 저항하고 이에 연대한다. 그리하여 이것이 더 좋은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더 이상 봉건 사회에서나 겪는 성 착취가 불가능한 사회로 만들어가는 귀한 첫 걸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