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우림, '스물다섯 스물하나'
어느 날, 별 생각 없이 가요 프로그램 '복면가왕'을 보다가 한 노래를 듣고 영혼 깊숙한 곳에서 깊은 감동과 떨림을 느꼈다. 주윤발 가면을 쓴 남자 가수가 가수 자우림의 노래 '스물다섯 스물하나'를 부르고 있었다.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꽃이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 날의 바다는 퍽 다정했었지./ 아직도 나의 손에 잡힐 듯 그런 듯 해.
부서지는 햇살 속에 너와 내가 있어/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을 꾸었지.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너의 목소리도 너의 눈동자도/ 애틋하던 너의 체온마저도
기억해내면 할수록 멀어져 가는데/ 흩어지는 널 붙잡을 수 없어.
바람에 날려 꽃이 지는 계절엔/ 아직도 너의 손을 잡은 듯 그런 듯 해.
그때는 아직 네가 아름다운 걸/ 지금처럼 사무치게 알지 못했어.
우~ 너의 향기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우~ 그날의 노래가 바람에 실려 오네./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지난날의 너와 나.
우~ 영원할 줄 알았던 스물다섯, 스물하나.
스물다섯, 스물하나.
그, 혹은 그녀는 지금 꽃이 지는 계절에 있다. 인간의 나이로 치면 더 이상 청년이 아닌 시기 이후일 것이다. 시간은 너무 빨라 그 때의 내가 멀게 느껴지지 않고 봄의 한가운데에서 나의 손을 잡고있던 네가 아직 내 옆에 있는 것 같다. 봄의 한가운데에 있을 때는 꽃이 아름다움을 모른다. 삶은 유한하며 젊음은 짧고 옆에 있는 이는 사라질 수 있음을 그 때는 모르는 것이다. 꽃은 지기에 더욱 아름답고 젊음은 금방 지나가기에 더욱 찬란하다. 그러나 그 때는 그것을 결코 알 수 없다.
그 때 나는 스물 하나, 너는 스물 다섯이었다. 너의 향기가 지금도 코끝에 선연하다. 함께이기에 더 다정했던 바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 눈부시게 웃던 네가 있었다. 그 때의 너는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 그 때의 나는 그것을 몰랐다.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질 듯 젊었기에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을 나누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가 앞으로도 이렇게 영원할 줄 알았다. 연락을 할 수도 안부를 물을 수도 없는 영원한 이별이 우리를 갈라놓을 줄은 몰랐다.
봄의 한가운데에서 풋풋하고 싱싱하게 아름다웠던 너, 이젠 볼 수도, 연락을 할 수도 없는 너를 떠올려본다. 너의 목소리, 눈동자, 너의 체온과 심장 박동 소리 같은 너에 대한 세세한 부분을 떠올리려 해도 아스라히 멀어지는 것 같다. 세월의 강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고 강물에 돌이 마모되듯 내 안의 너는 흐릿해지고 있다. 그 시절의 아름다운 너와 나, 영원히 함께일 줄 알았던 우리의 견고하고 온전하던 사랑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런 생각을 하니 내부에서부터 겉잡을 수 없는 오열 같이 휘몰아치는 한이 솟구친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한 여성이 나직하게 읊조리며 차분히 과거를 회고하는 듯한 김윤아의 원곡은 초반에는 담백하고 담담한 느낌이다. 처음의 나직한 읊조림이 뒤로 갈수록 조용한 울림을 담은 슬픈 함성으로 바뀌어 말할 수 없는 감동을 준다. 그런데 '주윤발'은 이 노래를 조금 다르게 해석한 듯하다. 그가 부르는 노래 속에는 폭풍치는 듯한 절규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지난 인연에 대한 안타까움일까. 이루지 못한 사랑과 돌이킬 수 없는 젊음에 대한 회한일까.
복면가수 '주윤발'의 무대를 본 후 가슴이 설레어 늦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노래 제목의 나이대와 비슷한 시기에 나는 처음으로 진정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고 우린 지극히 사랑했고 사랑받았다. 천성이 따뜻하고 다정하고 순했던 그 사람은 "네 손이 차갑고 내 손이 따뜻한 걸 보면 우린 천생연분인가봐" 라며 차가운 내 손을 늘 감싸주었다. 매사에 자신보다 나를 더 생각하고 배려해주었던 사람. 평소에는 조용하면서도 한 번 웃기면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던 사람. 함께 있으면 너무 잘 통하고 즐거워서 밤새도록 얘기만 해도 좋을 것 같다고 했던 사람. 이렇게 만났으니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던 사람. 든든하고 따스한 나무가 되어주겠다고, 언제든지 쉴 수 있는 나무가 되어주겠다고 했던 사람.
그 때 우리는 봄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당신은 내가 처음으로 본 가장 아름다운 꽃이었다. 당신은 언젠가 잃어버린 내 심장의 한 조각 같았다. 정작 젊디 젊었던 우리는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랬던 그 사람이 지금은 내 곁에 없다. 연락할 수도 안부를 물을 수도 없다. 그 때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는 영원히 세월의 강에 의해 막혀버린 것이다. 그 충만하던 순간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때의 젊고 꿈에 가득차 있었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그 때의 나는 내가 영원히 젊을 것처럼 생각했다. 마치 20대가 영원히 지속될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나 20대의 그 순간은 찰나와 같이 짧았다. 세상사에 찌든 지금과 달리 근심 없이 웃을 수 있었던 순간들이었다. 그 시간은 놀랍도록 금방 지나갔다. 지금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 어머니가 '인생은 순간이다' 라고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고 있다. 젊음이 손아귀에 쥔 모래처럼 빠르게 빠져나가는 것이 아프게 느껴진다.
젊은 날은 짧고 순식간에 지나간다. 그러기에 역설적으로 젊음은 아름답다. 옆에 있었던 인연도 어느 순간 헤어지고 사라질 수 있음을 그리하여 역설적으로 그 순간은 더욱 강렬한 향기와 노래로 박제될 수 있음을 이 노래는 들려주고 있다.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다운 가사와 후반부로 갈수록 깊은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오열과도 같은 김윤아의 음성은 강렬한 인상과 감동을 준다. 이를 고요해보이는 내부에서 부는 폭풍과도 같은 그리움과 절규로 재해석한 복면가수 '주윤발'의 무대도 훌륭했다. 마법처럼 순식간에 봄의 한가운데를 불러와준 이 노래, 오랜만에 만난 진심을 담은 노래와 무대로 행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