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노래홀릭 01화

공주의 창문 아래의 병사는 왜 99일째에 떠났을까?

-시네마천국, love theme

by 글쟁이 써니

첫사랑과 헤어진 직후 상상조차 못한 애별리고(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는 고통)에 시달리며 한동안 미친 사람처럼 지냈다. 심장을 갈가리 찢는 듯한 고통은 생각 이상이었고 낯설었기에 더 어쩔 줄을 몰랐다. 거기다 우리는 서로에게 질리거나 다투어서 헤어진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실 때문에 억지로 헤어지다시피 한 것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이별의 상처에 친구들에게 전화로 하소연을 하기도 하고, 네이버 검색창에 이별 상처 극복법을 검색하기도 하다가 생각한 방법이 이별하는 남녀가 나오는 영화를 찾아서 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사랑하는 사람과의 어쩔 수 없는 이별이 등장하는 많은 영화들을 보았다. 비커밍 제인,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지금 만나러 갑니다, 그리고 시네마 천국에 도달했다.


1. cinema paradiso


영화 시네마천국에서는 엔니오 모리꼬네의 잔잔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운 선율이 흐른다. 가장 자주 등장하는 두 곡은 cinema paradiso와 love theme이다. 귀엽고 깜찍한 소년 토토가 등장하는 영화의 초반부(토토의 유년시절) 에는 cinema paradiso가 주로 나온다. 음악의 잔잔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는 꼬마 토토와 중년의 영사 기사 알프레도가 우정을 쌓는 초반부 스토리와 매우 잘 어울린다. 엔니오 모리꼬네의 음악은 너무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영화에 녹아들기에 음악이 영화 그 자체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팬들의 말은 사실이었다. 극장 화재 사고 이외에는 시종 입가에 미소를 띄게 하는 내용들로 진행된다. 가난하지만 귀엽고 똑똑한 꼬마 토토는 영화를 정말 좋아한다. 머릿속에는 영화에 대한 생각 뿐이고 극장에서 영사 기사 알베르토와 함께 영화를 보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삶의 낙이다. 그렇게 어린 시절이 지나간다.

2. love theme


귀여운 꼬마는 빛나는 눈을 가진 똑똑하고 꿈 많은 소년으로 자라난다. 알프레도 대신 영사 기사로 일하는 소년은 운명적으로 첫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의 인생에서 신앙과도 같은, 천형이자 낙인이 될 첫사랑을. 어느 순간 배경 음악은 love theme 의 조용하지만 서글픈 선율로 바뀌어있다.

워낙 유명한 음악이라 영화를 보기 전부터 여기저기서 많이 들었었지만 소년과 소녀의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와 어우러지는 멜로디를 듣는 순간 알게 되었다. 멜로디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 그 자체라는 것을. 이루지 못한 사랑이 선율로 구현되면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스토리와 음악의 싱크로율은 100퍼센트였다. 잔잔하면서도 서글픈 멜로디에는 더는 볼 수 없는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하지 못한 인생에 대한 회한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이 노래는 수많은 이루지 못한 첫사랑들이 음악으로 환신한 것처럼 느껴진다.

3. 공주의 창문 아래의 병사는 왜 99일째 되는 날 떠나버렸을까?


토토가 청소년이 된 이후에도 알프레도와의 우정은 지속된다. 어느날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수수께끼같은 말을 한다. 스토리를 알고 보면 토토의 인생을 예언이라도 한 듯한 의미심장한 이야기였다.


"공주를 사랑한 병사가 있었다. 공주는 병사에게 내 방 창문 아래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100일 동안 서 있어준다면 당신과 결혼을 하겠다고 말했다. 청년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공주의 창문 아래를 지키고 서 있었다. 하지만 99일째 되는 날 병사는 그 자리를 떠났다."

빛나는 눈을 한 꿈많고 똑똑하지만 가난한 소년 토토는 도무지 병사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기가 병사였다면 아마 100일을 채우고 사랑을 이루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알프레도는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토토는 첫사랑의 열병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되고 마치 자신이 그 병사가 된 것처럼 그녀의 창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의 마음 속에는 병사와 달리 자신은 이 어려운 사랑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가득했을 것이다.

사랑에 빠진 소년의 열정과 순수함은 소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녀 역시 그를 사랑하게 된다. 토토는 가난한 홀어머니 아래서 극장 영사 기사 일을 하며 학교를 다녀야 하는 처지이고 그녀는 부유한 은행가의 딸이지만 사랑에 빠진 젊은 남녀에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행복한 시절은 잠시, 엘레나의 집에서는 토토와의 사랑을 반대하고 그녀를 다른 곳으로 데려가버려 방학 동안 둘은 떨어져 있게 된다. 토토는 비를 맞고 눈을 감으며 "방학이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영화라면 금방 몇 달이 지나가버릴텐데." 라고 중얼거리며 눈을 감는다. 그런 그의 입술 위로 그녀의 입술이 겹쳐진다. 잠깐 틈을 내서 그를 보러 온 것이다. 빗속에서 키스를 나누는 둘의 사랑은 꽤나 견고하고 희망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소녀 집안의 반대는 매우 강하고 설상가상 남자는 군대로 끌려가게 된다. 아무리 편지를 보내도 답이 없다. 군대에서 돌아온 후 미친듯이 그녀를 찾아봤지만 찾을 수가 없다. 알베르토를 통해 메시지도 남겼으나 묵묵부답이다. 결국 토토는 그녀의 대답 없음을 거절로 받아들이고 고향을 떠나 로마로 간다.


떠나는 토토에게 알프레도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너는 장님인 나보다 더 앞을 보지 못하는구나. 잘 들어. 인생은 영화와 달라. 인생이 훨씬 혹독하고 잔인하다. 그래서 인생을 우습게 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돌아와선 안 돼. 깡그리 잊어버려야해. 편지도 쓰지 마. 향수에 빠져선 안 돼. 잊어버려. 만일 못 참고 돌아오면 널 다신 만나지 않겠어. 알겠지?"

토토는 알프레도에게 말한다.

"이제 병사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하루만 참으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었겠지만 공주는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거예요."

첫사랑의 좌절을 맛보기 전의 토토는 병사가 왜 99일째에 사랑을 포기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이 무지개로 보일 시기, 그의 생각에 어렵고 힘든 사랑 역시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이루지 못한 사랑은 대부분 현실 앞에 좌절됨을 그는 몰랐다. 엘레나와의 사랑이 좌절된 후 그는 비로소 병사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병사는 알았던 것이다. 어차피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공주와 병사의 사랑은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토토는 엘레나를 잊을 수 없었다. 이루지 못한 첫사랑은 낙인이자 천형처럼 그의 가슴에 남았다. 중년이 되어서도 엘레나를 처음 보고 사랑에 빠졌을 때의 영상을 돌려보는 그이다. 그리고 역시 중년이 된 엘레나에게 말한다.


"시간이 흐르고 많은 다른 여자들을 만났지. 그러나 절대 너를 잊지 않았어. 난 성공했지만 내 맘속엔 언제나 너 뿐이었지. 넌 나에게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느낌을 갖게 했지."


4. 알프레도의 마지막 선물인 키스 장면 모음은 무엇을 의미할까?


알프레도가 과거 자신과 엘레나의 만남을 의도적으로 방해하여 사랑을 좌절시킨 것을 알았을 때 그는 분노한다. 알프레도의 방해로 인하여 그는 평생의 사랑인 엘레나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집안의 반대로 위태로운 사랑을 이어가던 그들에게 알프레도의 방해는 사랑을 끝장내는 결정적인 이별 요인으로 작용했다. 토토는 이미 죽은 알프레도에게 '미친 영감' 이라며 욕을 한다. 그러나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전해주라며 남긴 유품을 빈 영사관에서 틀어보며 토토는 눈물을 흘린다. 알프레도가 영사 기사 시절 신부님의 엄격한 검열 아래에서 편집한 키스 장면들을 이어붙인 영상을 보게 된 것이다. 이것을 토토에게 남긴 알프레도의 저의는 무엇일까?

키스 장면은 영화의 꽃이다. 영화는 사람들의 꿈과 사랑을 담은 예술이다. 현실에서는 이루지 못한 꿈과 사랑을 사람들은 영화를 통해 대리 만족한다. 그렇지만 알프레도가 토토에게 말했듯 현실은 영화와 다르다. 영화 속에서는 심각한 문제들도 쉽게 해결되고 행복한 결말도 쉽게 찾아온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현실은 영화보다 훨씬 지루하고 고단할 뿐 아니라 슬프고 끔찍한 일조차 종종 일어난다. 그래서 알프레도의 말대로 인생을 우습게 보면 안되는 것이다.

영화 자체가 꿈의 산물인데 영화 속 사랑의 절정을 담은 키스 장면은 그야말로 꿈과 환상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 현실에서 현실에 반하는 사랑은 대부분 이루어지지 못하고 좌절된다. 부유한 집안의 딸인 엘레나와 가난한 청년 토토의 사랑은 사실 현실적이지 못한 사랑이다. 영화에서라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두 사람의 사랑은 이루어져 행복한 결말을 맞았겠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둘의 사랑은 좌절되거나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그로 인한 더 큰 무언가를 감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토토가 부유한 엘레나를 부족함 없이 부양하기 위해 인생의 꿈인 영화 감독을 포기해야 한다든가. 이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알베르토는 "너는 앞이 안 보이는 나보다도 더 앞일을 내다보지 못하는구나." 라고 말한 것이다.

꿈의 결정체인 영화,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장면들을 이어붙여 만든 영상은 청년 토토와 엘레나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다분한 위로가 담겨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프레도의 선택은 옳은 것이었을까?

토토는 알프레도에게 영사 기사 일을 배우며 영화에 빠지게 되었다. 알프레도는 토토에게 영사 기사 일보다 더 대단한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독려한다. 그리고 알프레도는 매우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토토의 미래를 결정해버린다. 토토의 미래에 필경 걸림돌이 될 엘레나를 토토의 인생에서 제거하고 알프레도에게 좁은 세계인 시칠리 섬을 떠나 큰 세계인 로마로 가라고 길도 정해준다. 그리고 알프레도의 맘이 약해지지 않도록 절대 연락하지도 고향에 오지도 말고 독하게 꿈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해준다. 알프레도의 적재적소의 조언이 없었다면 토토는 영화 감독으로 성공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인생에서 저런 멘토 한 명이 있었으면 싶을 정도로 토토에게 있어서 알프레도는 부러운 존재이다.

하지만 두 사람을 갈라놓은 알프레도의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청년 토토와 엘레나에게 그의 행동은 끔찍한 짓이었을 것이다. 그토록 사랑했는데 둘은 다시는 함께 못할 사이가 되어버렸다. 만약 두 사람이 원하는대로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랑을 이루었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엘레나의 집에서는 엘레나를 내놓은 자식 취급하고 안보려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엘레나를 그녀가 살았던 삶의 수준에 맞게 부양하기 위해 토토는 영화 감독의 꿈을 포기해야 했을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처가의 인정을 받기 위한 일을 해야 했을 것이고 꿈만을 바라보기 위해 장기간의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영화 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토토는 인생의 사랑인 엘레나를 얻는 대신 영화 감독이라는 일생 일대의 꿈을 이루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알프레도의 판단은 맞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이 함께 꾸려갔을, 힘들지만 그 와중에도 아름다웠을 미래는 통째로 날아가버렸다. 그 결과 엘레나는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알프레도는 성공은 했지만 평생 그녀를 그리워하며 살게 되었다. 둘 중 어떤 인생이 더 가치가 있을지에 대한 답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알프레도는 본인이 마음대로 남의 인생을 결정해버렸다. 그렇게 사랑하던 둘의 사이를 영원히 갈라놓았다. 그의 행동이 옳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키스 장면을 이어붙인 알프레도의 영상은 두 사람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위로와 찬가였을 것이다. 이것을 본 토토는 알프레도에 대한 미움이 누그러진 듯 눈물을 흘린다. 중년의 나이가 되어 인생을 어느 정도 알았기에 알프레도의 심정과 자신에 대한 배려를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인생이란 사랑도 꿈도 모두 이룰 수 있는 영화적인 것이 아닌 혹독하고 잔인한 것이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되었을 것이므로. 그래서 토토가 영화를 보는 장면에서 흘러나오는 love theme는 둘의 좌절된 사랑을 위로하며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하는 것처럼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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