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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쟁이 써니 Feb 03. 2021

죽을 권리를 생각하다

영화 미비포유(스포 있음)

1. 줄거리 

영국 어느 소도시의 카페 직원으로 일하던 루이자(에밀리아 클라크)는 카페가 문을 닫는 바람에 졸지에 실업자가 된다.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고민하던 차에 좋은 일자리가 나타난다. 전신마비 환자 윌(샘 클라플린)의 6개월 임시 간병인이 그 자리였다. 늘 특이하고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솔직하고 수다스러운 루이자와 냉소적이고 매사에 공격적인 윌은 처음에는 티격태격 한다. (옷이 안 예쁠 뿐 루이자는 사실 매우 예쁘다. 에밀리아 클라크는 미드 왕좌의 게임에서 칼리시였다. 여기서는 안예쁨을 연기하는 느낌) 잘 나가는 젊은 사업가였고 집안도 부유해서 남부러울 것 없던 윌은 교통 사고로 목 아래로는 모두 마비된 전신마비 환자가 되어버렸다. 그는 여러 번 자살 시도를 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6개월 뒤 스위스에서 안락사하는 것으로 부모님과 합의가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밝고 수다스러운 루이자가 귀찮기만 하다.

 하지만 윌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밝음에 물들어가고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며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루이자와 함께 간 연주회에서 루이자는 예쁜 빨간 드레스 차림이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차가 집에 도착하지만 윌은 집에 조금 있다가 들어가자고 한다. 조금 더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와 데이트한 남자' 로 머물고 싶다고.

 루이자 역시 생일날 딱 자기 스타일의 꿀벌 스타킹을 선물해주고 아버지를 집안 소유의 성 관리인으로 채용해주는 등 자상한 윌을 사랑하게 된다.(루이자에게는 7년된 남친이 있는데 그래서 루이자가 환승 이별했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워낙 자기중심적이고 눈치 없는 남친이라 윌이 아니었어도 결국 헤어졌을 것 같다)

루이자는 생각한다. 이제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으니 안락사에 대한 윌의 생각도 바뀔 거라고. 루이자는 윌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살아있음이 좋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윌이 할 수 있는 각종 스포츠 활동도 알아보고 여행도 준비한다. 그리고 윌과 간호사 나단, 루이자 셋이서 여행도 떠난다. 해변의 아름다운 리조트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루이자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킨 스쿠버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 날 밤, 루이자는 안락사에 대한 윌의 생각이 변함없음을 알게 되고 말할 수 없이 상심하고 화가 나서 윌에게 말도 걸지 않은 채로 돌아온다. 그리고 윌의 어머니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루이자는 결국 윌의 안락사 장소인 스위스로 간다. 그리고 윌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한다. 몇 주 뒤 파리의 한 노천 카페에서 루이자는 윌의 편지를 읽는다. 그리고 영화는 끝이 난다.

 

2. 인간에게 죽을 권리란?

안락사를 검색해보면 

'회복의 가망이 없는 중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인위적으로 생명을 단축시켜 사망케 하는 의료행위. 안사술·존엄사'

이렇게 나온다. 존엄사를 검색해보면

 '회생 가능성이 없는 사망 임박 단계의 환자가 연명 목적의 치료를 받지 않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며 생을 마감하는 행위'

라고 나온다. 윌 같은 경우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으니 존엄사보다는 적극적 안락사인 조력 자살 쪽이 더 가까운 것 같다.

 윌은 목 아래로는 마비된 전신마비 환자다. 소설 미비포유에서 간호사 나단은 가까이서 지켜보는 윌의 인생은 정말 비참하다고 윌이 엄청난 부자지만 단 하루도 윌과 자신의 삶을 바꾸고 싶지 않다고 한다. (윌은 엄청난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온다) 파리를 좋아했다는 윌에게  루이자가 같이 파리에 가자고 하자 윌은 성한 몸으로 갔을 때가 좋았다는 거지 이 몸으로는 가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거절한다.

 소설에서 윌은 사고 전 각종 익스트림 스포츠와 취미를 즐기던 활달한 청년이었던 것으로 나온다. 루이자가 젊은 나이를 조그만 소도시에서 썩히는 것을 유난히 안타까워하는 윌은 사실은 누구보다도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자신의 사고 전 삶을 너무도 사랑했기에 사고 후 삶과의 격차와 간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택한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 안락사는 불법이다. 윌이 한국인이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재력을 이용하여 몰래 스위스로 도망가서 했을 수는 있겠지만.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여주인공 세리가 시도하나 실패한 것으로 나온다. 영국도 안락사가 합법은 아닌 것 같다. 윌의 가족은 어떻게 한 거지..)

 하지만 어느 것이 옳을까? 목 아래가 마비되고 육체적 고통에 시달리는 삶은 싫다고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그에게 그래도 삶은 존엄한 거니까 너는 억지로라도 살아야 한다고 말할 권리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삶의 주체는 윌이고 목 아래가 마비된 비참한 삶을 견뎌야 하는 것도 윌이다. 감히 제 3자가 삶의 존엄을 운운할 수 있을까.

 현재 안락사가 합법인 나라는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위스, 콜롬비아, 캐나다, 미국의 일부 주라고 한다.
 극단적 상황에 놓인 인간에게 죽을 권리가 허용되어야 할까? 그렇다면 극단적 상황의 기준은 무엇인지가 논란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삶은 존엄한 것이니 금지되어야 할까? 이 문제는 매우 격렬한 토론을 유발할 만한 민감하고 어려운 화두인 것 같다.


3. 명대사(책 버전)


"혼자서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정해놓고 온갖 경험들을 아예 막아놓고 있잖아요." "하지만 진짜 아닌 걸요." "어떻게 알아요? 아무 것도 안 해보고, 아무 데도 안 가봤는데.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길이 없었는데?""당신은 여기를 벗어나 멀리 떠나야 해요, 클라크. 남은 평생을 이 빌어먹을 식탁 매트나 파는 동네에 처박혀서 살지 않겠다고 약속해줘요." "약속이요? 왜요?" "그저...당신이 이 동네에서 영원히 살 거라는 생각을 하면 견딜 수가 없어요...인생은 한 번밖에 못 사는 거요. 한 번의 삶을 최대한 충실하게 보내는 건 사람으로서 당연한 도리요."  "스물일곱이나 됐는데도 착한 딸이니까. 너무 무서워서. 이러지 말아요, 클라크. 좀 삶을 살아봐요. 대체 발목 잡은 게 뭐가 있다고 이래요?" "가끔은 말이에요, 클라크. 이 세상에서 나로 하여금 아침에 눈을 뜨고 싶다는 들게 만드는 건 오로지 당신밖에 없다는 거. #영화미비포유 #미비포유 #에밀리아클라크 #샘클라플린 #존엄사 #안락사 #조력자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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