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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리봉 Jul 02. 2023

빗속에서 춤 추는 법

  담임 교사로 학급을 운영할 때, 1인 1역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올해는 옆자리 선생님의 학급 운영 방법 중 ‘명언 도우미’를 도입하여 실시하고 있다. 학급의 명언 도우미가 친구들과 함께 읽고 싶은 글귀를 칠판에 적는 것인데,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6월 모의평가’를 앞둔 시기에 기록된 글귀가 유독 눈길을 끈다.      


인생은 폭우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우는 거야. (비비안 그린)

  중요한 시험을 앞둔 시기라 예민하고 지친 친구들에게 전하는 말이 ‘빗속에서 춤추는 법’이라니 참으로 근사하다.      


  그런데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비가 오면 그것도 폭우로 인해 생기는 피해들에 대한 걱정을 어떻게 멈출 수 있다는 말인가? ‘유동하는 공포’(지그문트 바우만)라는 책에는 ‘불안’, ‘공포’에 대해, 위협의 상황에서 모든 생물이 공포를 체험하지만 인간의 경우는 다른 동물들과 달리 위협이 출현했든 안 했든 파생적 공포까지 생각할 정도로 행동의 제약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는 쏟아지는 폭우를 멈추게 할 수도, 걱정과 두려움도 쉽게 떨칠 수도 없다. 이때는 폭우가 그치기를 기다려야 한다. 어떤 위협은 정면 돌파해서 헤쳐 나가야겠지만, 때로는 잠시 피해 가는 것도 한 방법일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기다림의 자세이다. 두려움에 떨며 수동적인 태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힘든 환경에서도 자기 삶의 즐거움을 능동적으로 찾는 것이 필요하다. 위의 명언처럼 멋진 인생은 폭우가 없는 삶이 아니라, 폭우 속에서도 춤을 출 줄 아는 삶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 누리는 것을 배우는 과정이 인생이지 않을까?     


  몇 년 전, 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감독 김초이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뜻대로 일이 되지 않았던 긴 세월을 겪은 감독은 ‘복’과 ‘행복’의 비결로 아침 산책과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반복’을 이야기했다. 삶의 행복감은 큰 행운이 한 번 올 때 경험할 수도 있지만,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반복할 때도 느낄 수 있다. 여기서 ‘작은 즐거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연한 기회에 일어나는 행운과 달리 ‘작은 즐거움’은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반복 ‘실천’을 통해 지속적으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가정과 학교의 교육은 ‘폭우를 돌파하는 법, 어쩌면 폭우가 없는 온실을 짓는 법’에 치우치는 듯하다. 물론 폭우를 이겨내는 법도 중요하지만, 피할 수 없는 폭우 속에서도 삶을 즐길 수 있는 ‘춤추는 법’에 대한 지혜를 함께 고민하면 좋겠다.      


  지금은 대입을 앞둔 우리 반 학생들의 마지막 내신 성적을 결정짓는 기말고사 준비 기간이다. 중요한 시험인 만큼 긴장과 두려움이 크겠지만, 이 순간에도 자기 삶의 리듬에 맞는 스텝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 또한 그들의 스텝이 꼬이지 않도록 옆에서 박자에 맞게 박수를 함께 쳐 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경상일보 6월 칼럼에 기고한 글입니다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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