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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Aug 09. 2022

50, 고래를 그리다

고래가 날자 나도 날았다

 글쓰기도 바쁜데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다니.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러니까 이 일의 시작은 내가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배우면서부터다. 그림책 만들기 수업을 통해 그림을 무려 16장이나 그려야 했다.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그림은 형태감이 살아야 되는 일이다. 딱 보고 나무인지, 사람인지, 건물인지 정도는 알아야 한다. 처음 커다란 도화지를 놓고 얼마나 깊은 한숨을 쉬었는지. 빈 도화지는 죄가 없는데. 그림책 글의 원고대로 16장면에 덩어리 스케치를 했다. 동그라미에 글씨로 여기에는 탁자, 여기에는 사람 이런 식으로 하는 과정이었다. 나를 매우 못 믿었지만 첫 그림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그림을 쉽게 접근하는 방법에 대해서 의외로 술술 풀어주셨다. 방법이 귀에 솔솔 날아들더니 조금씩 어렵던 마음에 바람이 순풍이 돌기 시작했다. 

  

이 단계를 넘어서니 또 다른 관문이 나를 기다렸다. 이번엔 낱장을 제대로 스케치하기. 나처럼 드로잉을 하려는 사람들을 위한 앱이 그렇게 많은지 몰랐다. 영상도 정말 많고. 그림의 세계가 이렇게 넓은 지도 처음 느꼈다.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더니 글 세계만 갇혔다면 많이 놓쳤을 뻔했다. 

 나는 처음 글쓰기를 배울 때처럼 앱 서핑과 자료 탐색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글을 쓸 때 소재 검색이나 자료 찾기를 할 때처럼. 눈이 침침해지면 영양제를 먹어가면서. 노안이 찾아온 눈을 애석하면서. 

 사물을 검색하고 드로잉 느낌을 찾고, 비슷하게 그려보고 또다시 찾고 다시 그려보고. 이왕 시작한 일을 끝까지 가겠다며 의지를 활활 태웠다. 어떻게든 엉성해도 마무리를 하겠다는 것이 내 목표가 되었다.

형태감을 만들고 또 그리고, 지우고 다시 그리고를 반복하다 채색까지 이르렀을 때, 나는 그동안 해 본 모든 것을 뛰어넘는 성취감을 느꼈다. 전해 안 해본 분야에서 조금씩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쾌락이었으니까. 그림책 만들기를 10명으로 시작했지만 단 세명만이 마감에 맞추어 완성을 했고, 다행히 나는 그중 한 명이었다. 

 나는 <엄마의 두부집>이라는 그림책을 쓰고 그렸다. 40년 넘게 두부집을 해 오신 엄마께 드리는 헌정 그림책으로. 엄마의 두부집에는 항상 책을 올려두는 곳이 있는데, 거기에 내 최근 출간 책과 함께 선물로 놓아 드렸다. 그렇게 한 권을 완성하고 보니 그림이라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라졌다. 



















스멀스멀 또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을 즈음, 다시 그림책 만들기 2기 수업을 시작하였다. 이번 나의 그림책 주인공은 돌고래였다. 고민을 하던 중 지인이 그림 전시회를 하신다고 하였다. 거창하게 하는 전시회는 아니어서 공들여 그리면 한 점 정도는 자리를 채워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욕심이 생겼다.  내 속의 마음을 친한 그림 작가에게 말했는데 자연스럽게 전달을 해 주었고, 내가 용기를 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그림을 내고 싶나요?"

라는 카톡을 받고 두근두근 떨렸다. 나는 조금 망설이다 나의 마음이 가는 대로 대답을 하였다.

"해 보고 싶어요!"

"그래요."

나의 무엇을 보고 그런 결정을 내려주셨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다만 그런 기회를 주신 것이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을 그릴까 고민을 하던 중 내 두 번째 그림책 속의 주인공인 돌고래를 연습할 겸 제대로 그려보기로 하였다. 

 며칠 전 서일페에서 득템 한 까렌다쉬도 개시할 겸, 어떤 색감이 나올지 기대를 하면서. 고래에 대한 이미지는 참으로 많았는데 다 맘에 들지 않았다. 나는 서점을 기웃거리며 고래에 대한 설명이 나온 책은 모조리 사고, 여러 번 찬찬히 따라 그려 보았다. 처음엔 뚱 돌고래가, 꼬리가 이상한 돌고래가, 눈이 무서운 돌고래가, 지느러미가 이상한 돌고래가 그려지더니 여러 번 그릴수록 형태감이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아, 재밌다!"


글이 주는 희열과는 또 다른 그림이라는 세계에 퐁당 빠지기 시작했다. 겹겹이 내가 생각한 색깔을 올려보면 하얗던 몸체가 생명력을 받아 꿈틀대는 것처럼 보였다.  바다를 칠하자 돌고래가 펄떡펄떡 움직이며 비상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바닷물은 푸르게 빛나기 시작했고 햇살이 한없이 부서지는 여운을 최대한 표현하려고 애를 쓰니 공들인 티가 보이기 시작했다. 

 고래 한 마리와 바다가 전부인데 3일을 꽉 채워서 겨우 한 점을 완성했다. 꾸역꾸역 들고 전시회를 갔다. 내 그림이 판매될 거라는 기대는 없었고 전시회에 참여한 것으로 만족했다. 마음을 다 비우면 오히려 일이 되는 법이라더니.

"저기 있는 고래 그림 살래요."

맙소사! 내 그림을 사려는 사람이 지갑을 열고 있었다. 나는 당황스럽고 감격스러워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아주 태연하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해서 내 고래 그림은 솔드 아웃이 되었다. 우야호!


온라인 쇼핑몰을 한참 째려보다가 중독처럼 아크릴 도구를 잔뜩 주문했다. 캔버스에, 붓에, 나이프까지. 이젤은 집에 둘 데도 없고 어깨도 아프니까 워워 참자 했다. 아무래도 늦은 바람이 무서운 가보다. 사부작사부작 그림 주변을 맴돌 것 같고, 글을 쓰는 일주일 중 하루는 그림 데이로 정하기로 했다. 도전은 마음 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행해야 하고, 버텨야 한다. 끝까지.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도록 기꺼이 이끌어 주고 받아준 사람들. 많이 감사하고 나를 믿고 베풀어준 따뜻한 마음을 찬찬히 갚으며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50이 무슨 큰 고비도 아닌데 왜 자꾸 그전에 새로운 것을 시작해 보고 싶은지 아직도 막연히 나이를 확 뛰어넘는다는 기준을 버리지 못하나 보다. 솔직히 두려움이 앞서나 보다. 그래도 하루하루 이렇게 또 새로운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서 저장해 두자. 막연함도 불안함도 늙는다는 것도 다 이길 수 있겠지. 50 따위 아무것도 아닌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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