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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Jan 23. 2022

무모한 도전이라도 좋다.

이런 거 50전에 해 보는 거지!

글을 많이, 자주 생업으로 쓰는 분과 나는 달랐다. 남편의 월급으로 살림을 하고, 나는 아이들을 키우는 게 우선이었다. 동화 창작 교실을 끄적끄적 다니면서, 앞서가는 사람들을 보며 속상하고, 좌절도 많이 했다. 물론 지금도 내가 딱히 뭐가 된 건 아니다. 똑같을 뿐이지만 마음은 조금 다르다. 쓸데없이 마음이 편하고, 글 쓸 때는 겁나 홀려서 몇 시간을 뚝딱 쓴다.



아이들이 어릴 때, 잠이 겨우 들고나면 컴퓨터를 안고 아이들 방으로 가, 혼자 글 쓰는 시간이 좋았었다. 쓰다 보면 어느덧 새벽 5시가 되기도 하고, 뭐에 홀려서 막 쓰고 나면 그저 마음이 뿌듯했었다. 결과보다 과정이 좋았던 거다. 누군가 내게 그런 말을 했다. 다 내려놓아야 글이 되는 거라고. 나는 다 내려놓기까지 너무너무 오랜 세월이 걸렸다. 그러니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 중 조급한 분이 있다면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편집자 생활부터 따지면 책을 놓지 못한 세월이, 글에 미련을 둔 세월이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쓴다고 다 글이 될 수 있었을까. 개인적인 글에 지나치고 말 것을 나는 뭐에 빠져서 목디스크 말기가 되도록 써댔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울어재끼고 진이 털리는 마당에 글이 써질 리가 없었다. 뻔한 논리를 알면서도 나는 괴로웠었고 고뇌에 빠졌었다. 결과물도 없이 똑같음의 연속, 지쳐가던 나는 전혀 다른 활동으로 눈을 돌렸다. 바로 합창단. 머리를 안 써도 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니 화음이 울려 퍼질 때 난 그 자체로도 힐링이었다. 동화창작교실은 등록을 하고, 그땐 비싼 수강료를 숙제도 안 하고 다 날렸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끈은 놓지 않았는데, 내가 가장 잘한 일이다. 이제야 숨 돌릴 만해지고, 아이들도 글 쓰는 엄마를 인정하기까지 나는 딱 한 가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말고는 할 말이 없으니까.


코로나 덕에 실컷 쉰 것도 있었다. 마음의 갈피도 느꼈다. 시간은 충분했다. 마음이 따라가는 일을 하면 된다는 것이 정답. 그래 또 글이었다. 사실은 뮤지컬을 배워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마포 어느 곳에서 아마추어를 키워서 공연도 올리는 뮤지컬 장소가 있다고 했다. 기웃대 보고 싶었지만 나잇살과 무너지는 몸매 앞에서 운동 후로 일단 보류했다. 갱년기가 온 것인지, 안 온 것인지. 늘어나는 뱃살은 증명해주지만. 큰 아이가 중학생 되기 전에 딱 한 작품만 마무리하고 싶었다.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갔다. 나는 어떤 동화를 쓰고 싶지? 한 달여의 시간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이사 와서의 정착기도 쓰고 싶고, 마음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었다. 최근에는 기획 그림책으로 비빔밥 그림책 원고를 전주에서 냈고, 인제 한계산성을 담은 이야기로 책을 냈는데, 순수 창작물을 쓰고 싶었다.

  


사실 이런 마음은 오래전부터였다. 하지만 들끓었다가 다시 가라앉았다가 벌써 몇 년째 요동치고 있었다. 우연히 역사물을 접하다가 어느 인물에 관심이 갔다. 생각해 보면 내가 동화작가가 되고 싶은 꿈은 바로 역사동화가 시작이었다. 마지막 왕자. 어찌나 단숨에 홀려서 읽었는지 아직도 생생한 작품, 딱 그런 동화를 쓰고 싶은 마음이 시작이었다. 참 꿈도 야무졌지. 하지만 꿈은 크게 갖으라고 누군가 그랬으니까 나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최근 역사 관련 일을 하면서 이제는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이 솟구쳤다. 구체적인 살을 붙여서 차분히 써 보기로 했다.  십 년 전에 읽었던 동화 이론서를 다 끄집어내고, 다시 읽었다. 그래, 정해졌으면 바로 자료조사였다. 나는 조선시대 자료, 논문까지 다 구해서 척척 쌓아 놓았다. 읽지 않아도 혼자 뿌듯한 건 병이었다. 방대한 양은 나를 질리게 했고, 생각보다 읽는 속도도 느렸다. 그 인물을 중심으로 쓰겠다 전체 기획안을 들고 동화창작 교실에 당당하게 찾아갔다. 소재가 나쁘지 않다고 했다. 그게 머라고 벌써 다 쓴 것처럼 들떴다. 다음엔 목차를 쓰고,  줄거리를 써 가는 날. 나는 무참히 깨졌다. 그럼 그렇지. 난 또 블랙홀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줄거리가 너무 내가 생각한 인물을 위해 작의적이라는 것.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지만 나는 휘청 칼에 스친 것 같았다. 내가 시작한 이 얘기의 끝을 나는 전혀 모른다. 하지만 글에 진심인 철든 내가 어디까지 깨지고 또 일어나는지를 남겨두고 싶다. 혹시 글 때문에 뽀사지게 머리 아프신 분들의 위로도 듣고 싶다. 그리고 내 글도 그런 분에게 온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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