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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Dec 12. 2021

예고 없이 탕!

귓가에 새가 둥지를 틀었다

묵지근한 몸으로 일어난 아침, 예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뭔가 이상하긴 한데, 아이들의 밥 달라는 소리와 옷 달라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시계가 벌써 8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다행히 어제 남은 밥이 있어서 뚝딱 순두부찌개를 끓였다. 냉동실에 남았던 우삼겹을 슬라이스로 채 썰어 넣고, 호박, 양파 숭덩숭덩 넣고, 파 대충 쪽쪽 잘라 넣고 양념장 하나를 주르륵 붓고 팔팔 끓였다. 식구들의 아침을 챙기는 일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일 중 하나다. 저녁은 조금 적게 먹어도 된다, 하지만 아침은 제대로가 내 소신이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늘 든든한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한다. 집에 있는 엄마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니까.


 모두 잘 다녀오라고 아침 인사를 하고 줌 하는 큰 아이가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거실이 휑했다. 레몬나무가 힘없이 마른 잎을 떨구고 있었다. 나는 물 한 컵을 졸졸 받아서 쫄쫄 쫄 화분에 따라 주었다. 레몬나무의 숨이 들려왔다. 그래, 이제 내 소리를 들을 차례다.


난 나에게 나직하게 속삭여 보았다. 내 왼쪽 귀에서 사실은 아까부터 새소리가 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러니까 바람소리보다 섬세하고, 새가 바람을 타고 소리를 내는 것 같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신기한 것은 내가 하는 모든 말을 새가 다 따라 하면서 종종거리고 있었다. 허참, 이 새가 언제 나한테 둥지를 틀었지? 새는 하루 종일 부지런했다. 내 말을 옮기기도 했지만 주변에서 나는 모든 소리들을 반복해서 들려주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아도 소리 배달부와 함께 하루를 살아야 했다.

모든 의문이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최근에 맞았던 백신 후유증인가? 아니면 내가 요즘 너무 무리를 했었나? 일을 너무 벌렸지. 내 주제에. 깜냥도 안되면서 괜히 잠도 많이 못 자고. 별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코로나 동안 아이들과 함께 2년을 집에서 거의 보내면서 피곤이 극에 달했는지도 몰랐다. 그 와중에 조금씩 글을 쓰고, 강의를 하고, 행사를 다니고 일도 병행을 안 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내 몸은 그토록 쉬고 싶다고 꺽꺽 몸부림을 쳤는지도 몰랐다.


커피를 졸졸 내리는 동안 새가 커피 내리는 소리를 따라 했다. 손을 씻는 동안도 물소리가 내 귀에서 다시 들려왔다. 티브이를 켜니 너무나 많은 소리들이 한꺼번에 덩어리처럼 나를 옥죄었다. 당장 티브이를 껐다. 가장 소리를 덜 내는 일을 해야 했는데 잘 떠오르지 않다가 최근에 열심히 빠져 읽던 정명 공주 이야기를 다시 펴 들었다. 선조가 죽고 광해군이 가까스로 왕이 되었지만 영창에게 언제 어떻게 자리를 빼앗길지 모를 두려움과 불안으로 하루가 편한 날이 없던 광해. 그리고 앞날을 다 꿰뚫듯 마음에 여유가 넘치고 자애롭던 정명 공주. 갑자기 요즘 푹 빠져버린 이 시대의 이야기에서 나는 정명 공주에게 안겨 따뜻한 위로를 받았다. 예나 지금이나 자리에 오른 사람도 나 같은 평범한 사람도 앞날에 대한 불안은 같았으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예전 언젠가도 그랬다. 이상한 증상이 몸에 감지되면 난, 누구보다도 차분해진다.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그 증상이 사라져야 엄마에게 말하곤 하였었다. 젊었을 때도 그런 걱정은 내가 스스로 질 일이라 생각하며 그런 것까지 엄마 아빠한테 걱정을 드리는 딸이 되고 싶지 않았었다. 그건 결혼하고서도 비슷하다. 남편에게 큰 거 아니고는 잘 말을 안 하려고 하는 편이다. 사실 남편은 나보다 섬세하고 촉이 좋은지 금방 눈치채곤 하지만. 나는 차분히 나를 돌아보았다. 그냥 늘 하던 생각들을 다 던지고, 정말 나의 마음과 만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는 조용히 내 이름을 불렀다.

내 마음은 나에게

"너 지쳐있는 거 다 알고 있어. 혼자 있을 때도 너무 강하지 않아도 돼."

라고 말하고 있었다.

"쉴 때는 다 잊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돼, 그런다고 네가 세상에 지는 게 아니야."라고.

울컥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흐느낄 때 새도 더 슬피 울어 주었다.

나는 내가 아직 가장 하고 싶은 목표를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무언가를 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지치고 몸도 나가떨어지고 싶어 한다는 것만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그래, 나 이제 쉬어야겠다.



먼저 병원을 안 갈 수는 없는 일 같았다. 그건 사실 아침 눈을 뜨고 새둥지를 감지했을 때부터 벌써 알았었다. 무슨 큰 진단을 받을까 봐 두렵기도 했고, 병원은 아빠를 보낸 아픔이 남아있는 아직 나에게 두려움이 가득한 공간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친해져야 하는 공간이지만 난 노화와 병을 받아들일 마음도 되지 않은 철 안 든 어른이니까. 발길이 쉽게 나서지 않아서 광해를 핑계로 미적거렸다. 그렇게 하루를 광해군과 보내고 다섯 시 즈음 억지로 집을 나섰다. 추운지 더운지 감도 없어진 둔해진 몸으로, 바깥바람은 생각보다 개운하고 달콤했다. 근처 이비인후과에서 의사를 딱 맞닥뜨린 순간, 나는 벌벌 떨리기 시작하고 내 증상을 설명했다. 의사는 당장 청력 검사를 권했고 나는 작고 좁은 공간에 혼자 갇힌 채 청력 검사를 하러 들어갔다. 아무리 잘 들어보려고 해도 먹먹하고 끝을 알 수 없던 잠시 동안의 몸부림을 끝내고 결과는 극도의 스트레스와 피곤 누적으로 귀에 바이러스가 침투했다는 말씀이었다.

 


최근에 내 지인이 갑작스러운 항암과 방사선 치료를 하게 되어 일 년이 따라 무거웠었다. 지인의 몸과 건강이 염려되어 나를 전혀 돌보지 못한 일 년 동안 내 몸도 나에게 여러 번 외쳤나 보다. 돌아오는 길에서 나는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그저 공허하게 하늘만 오래오래 보다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아이들과 남편 엄마, 지인들에게 줄줄이 나의 근황을 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나 스스로 다 끌어안고 살려던 삶도 이제는 울타리인 가족들에게 기대고 엄마에게도 징징대고 지인들에게 위로도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인들은 엄청난 정보들과 경험담, 자신들의 이야기도 들려주었고, 남편은 걱정이 되어 조기퇴근을 하고 달려와 주었다. 아직 나를 사랑하는 법에 서툰 나는 이렇게 조금씩 나를 사랑해 보기로 했다.

 둥지를 튼 새가 봄이 되면 날아가 주려나. 더 좋은 곳이 생겨서 갑자기 말도 없이 떠나가 준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잠시라도 나를 찾아와 종종거리는 새와 주변의 소리를 다시 새겨들으며 또 일상을 살아보아야겠다. 왜 진작 나는 나의 작은 아픔이라도 누구와 나눌 생각을 하지 못 했을까. 참 한심 반푼 어치 같다.


남편과 아이들과 내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서로 위로를 해 주며 함께 먹는 곱도리탕 맛이 기가 막히다. 사실 저녁을 안 하고 사 와서 더 맛있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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