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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Jun 20. 2022

브런치가 나를 살렸고

쓰다 보니 곧 50, 출간 작가가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는 나를 먼저 기준으로 둔 적이 없었다. 늘 누군가를 먼저 배려해야 하고 내가 조금 안 내켜도 먼저 희생하고, 그렇다고 싫다고 말도 거의 못 하고. 그렇게 굳어지다가 그게 내가 되어 버렸다. 주입식 교육의 탓인 걸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이제 와 부모님을 탓할 마음은 전혀 없다. 난 그냥, 천성이 내가 그냥 몸이 조금 힘들어도 맘이 편한 대로 살아왔던 것 같다. 누구를 위해 도울 수 있다면 그게 또 내 역할이리라 믿으며, 그게 그 자체로 힘을 줄 수 있다면 난 마음을 다해 그들을 위한 판을 벌이고 또 수습을 하며 꾸역꾸역 살아온 것이다.


나는 무슨 잔다르크도 아니면서. 내가 뭘 어쩔 수도 없으면서 구원을 해줄 능력도 없으면서. 도움이 필요하면 득달같이 달려가 뭐라도 도움이 되려고 그리 노력을 했을까. 그리고 그랬던 시간들이 때로는 오해로, 실수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에게 남았을 때 감당할 단단한 마음도 없었는데 왜 그러고 살았을까. 그렇다고 그 시간을 부정하고 잘못했다 여기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게 나이기 때문에 나는 앞으로도 쭉 그렇게 살 것이 뻔하다. 나는 여리고 거칠지 못하고 어설프게 착한 사람인 걸. 이제는 알겠다. 


여러 집단에 속했었다. 출판사에 몸담았을 때도 항상 나를 보는 여러 시선들을 느꼈던 것 같다. 그렇다고 이슈를 몰고 다닐 만큼 이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는데 내 기획력이 번뜩여서였는지. 아님 일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였던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엄마들만이 있는 커다란 사회에 속하게 되었을 때 나는 너무 솔직하고 진솔하게 대하다 큰 코를 다친 적이 있었다. 그때 알았다. 내가 진심으로 대할 상대는 따로 있다는 것을. 열명 중 적어도 두세 명은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싫어할 수 있다는 그 극명한 진리를 더 빨리 알지 못한 나를 탓하기로 했다. 나는 순수하게 접근하고 내 속을 털어놓으면 그 상대도 나를 열고 나에게 다가올 줄 알았었다. 그러긴 개뿔! 아빠가 없는 세상에서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마저도 삐걱삐걱의 연속이었다.


급하게 넘길 원고가 코앞인데 이상하게 브런치를 찾았다. 그동안 출간 원고를 준비하느라 브런치를 완전히 잊고 살았었다. 막상 내가 터놓고 싶은 내 이야기는 브런치에서 쓰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당장 넘겨야 하는 원고를 아침부터 쓰는데 머리가 띵 했다. 어제 남편과 마신 소맥은 너무 알량하게 마신 터라 누구한테 숙취라고도 못 할 지경이었는데 뭔 일인가 싶었다. 


여러 번 출간의 기회가 물 건너가고 출간은 운 좋은 실력 좋은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다. 아이를 늦게 나았고, 혼자 늦된 결혼생활이 행복하지만 함께 한 문우들에 비해 더디고 더딘 속도에 나는 지쳐갔고,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어서 다 내려놓기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내가 글 속에 제대로 몰입할 수 없었다.  그런 스스로를 너무 늦게 발견했고. 내 속의 것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몸만 둥둥 떠 다니던 내 모습은 어땠을까. 엉성했겠다 싶다. 그런 채우지 못한 마음을 나는 주변의 이웃에게. 친구에게, 선배에게 마음을 쓰는 것으로 채우고 살았던 건 아닌지. 아니, 그것도 잘 모르겠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는 방황의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근 십 년이니 어쩌면 무슨 그런 오버가 있냐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그랬다. 나에게 너무 많은 부분을 채워주던 아빠의 죽음을 그 어느 것으로도 털어낼 수 없었다.  몸만 왔다 갔다 하던 아카데미 시절, 글에 집중할 수 없고, 무엇을 써야 하는지 막막하게 까맣던 머릿속을 생각하면 지금도 참 안타깝다. 그렇게 꾸역꾸역 버텼던 나 자신이. 그냥 좀 내려놓았어도 됐을 시간들인데 그때 써지지도 않던 글을 새벽까지 부여잡고 끙끙대며 흘렸던 눈물만 한 바가지가 될 것인데.



글은 억지로 앉아있어야 쓴다는 말을 믿었었다. 어느 누구는 하루에 아홉 시간을 버텨야 글을 쓸 수 있고 말했었다. 이론서에 가득했던 동화 작가가 되는 법은 나를 이론에만 가두었다. 내 몸을 꽁꽁 묶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진짜 언젠가는 나 같이 힘들게 시작하고 버티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꿀팁이 가득한 작법서에 대한 책을 내고 싶다. 나는 시골도 없고, 그렇다고 누구처럼 절박한 결핍이 있지 않았다. 사랑을 누구보다 듬뿍 받고 자랐다. 음악과 문학을 사랑했다. 그런 내가 그렇게나 평범한 내가 지금은 미친 듯이 글을 쏟아내고 있는 게 나도 참 신기하다. 그 계기는 그저 아빠의 죽음. 그게 다라는 것도 참 재미없고 식상하다. 


그런데 정말 사실이었다. 내가 처음 발행한 브런치의 글을 읽어준 독자들은 나에게 이런 댓글을 남겼고 물어왔다. 그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기억하고 글로 쓸 수가 있냐는 것이었다. 내가 그런 걸 다 마음에 차곡차곡 두었기에 난 단 하루도 내 마음이 편하게 못 살고 시간을 허비했는데. 결국 10편의 이야기로 아빠의 이야기를 털어내고 스터디 카페를 나온 건 한겨울의 새벽이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새벽의 알싸한 공기 탓인지. 그러면서 머리가 맑아졌고, 그 뒤로는 쓰고 싶은 게 엄청나게 폭발했고, 쓰는 게 즐겁고 재밌었고 낙이 되었다. 


그 쓰기 주변을 겉돌던 십 년의 세월이 나에겐 헛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는 글이 좋고, 쓰는 일이 재밌다. 자꾸 쓰고 싶은 게 떠오르고 나는 글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믿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런 상태가 되고 나니, 출간이라는 게 수순인 것을 알 것 같다. 글에 진심인 사람이어야 출간할 자격이 있는 걸 테니까. 출간을 하고 보니 나를 스쳐간 사람들과 시간, 여러 일들이 영화처럼 지나간다. 그중에서 그 과정을 응원해주고 내가 사는 최선의 하루에 박수를 쳐준 사람들이 아직 내 주변에 많다. 그들은 나의 출간을 누구보다 기뻐하고 눈물을 흘려주는 감사한 인연들이다. 



출간 소식을 아빠에게 가장 먼저 전했을 때,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랜 시간, 잘 해냈구나. 장한 내 둘째.

나는 아빠에게 대답했다.

이제 시직이니, 더 큰 작가가 될게요. 아빠의 자랑스러운 둘째니까.


나는 지금껏 그랬듯 소신대로 살고 보듬으며 살고 또 의리를 지키며 꿋꿋이 살 것이다. 내 주변의 좋은 사람들과 행복을 나누며 또 내가 퍼트릴 수 있는 선한 기운을 나누며, 그런 소박한 꿈을 갖고 하루하루를 살고 싶다. 어설프게 착해도 그런 사람들과 섞여서 서로 웃으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을 것이다. 뭐 어때. 내 인생인데. 그러면서 좋은 글도 많이 쓰고 싶다. 


모든 것의 시작은 브런치였다. 그래서 너무 감사한 곳이고, 내가 다시 태어난 곳이다. 한 번에 작가로 받아준 것도 너무 감사했는데, 너무 더디게 채우는 글 서랍이 많이 미안할 뿐이다. 정처 없이 두서없이 몇 자 쏟아놓고 나니 또 써야 할 원고가 떠오른다. 이제 다시 쓰던 제주 원고를 마무리해야겠다. 행복하다. 브런치. 꼭 네 잎 클로버처럼 나에게 다가온 너를 오래오래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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