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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 Nov 28. 2021

완전한 소유가 있을까?

50, 아직도 사랑을 모르겠다.

한때 나도 집착녀였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 스스로를 칭칭 동여맸었다. 그를 하루에도 여덟 번 씩이나 보게 만들었다. 최근 금쪽 상담소를 즐겨 보면서 엄마와 아빠의 갈등을 보고 자란 내 마음속에 담긴 마음 중 내적 불안이 있었겠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다. 아빠와 엄마는 오래오래 행복했는데, 왜 나는 그 몇 번의 부부싸움도 편하게 받아들이지 못했을까. 난 그저 동화 속 행복한 왕과 왕비처럼 우리 엄마 아빠는 늘 행복만 쏟아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러다 믿었던 아빠가 엄마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을 보게 되면서 세상에 대한 믿음은 사라졌었다.

 그가 나와 헤어지고 또 다른 누구를 만나는 게 싫었었다. 온전히 나만 바라 보고, 나만 생각해 주길 바랐었다. 그렇게 집착이 전부였던 지독한 가면을 나는 사랑이라고 믿었었다. 그 가면은 오래가지 못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자식(나한테 좋은 기억보다 쓰린 상처의 아이콘이니 자식이라 하고 싶다)의 바람 사건은 내가 만들어낸 정당한 그와 헤어져야 할 이유에 불과했다. 그가 바람이 난 것은 당연했으니까. 적당히 매달려야 질리지 않는데, 난 왜 그렇게 집착했었지.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것이래도 정도라는 게 있는 거라는데 내가 적당한 거리두기를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질리던 마음에 온기와 밀당의 노하우로 그를 쥐락펴락했던 그의 바람녀는 참 대단한 연애의 고수였나 보다.


 

요즘 너를 닮은 사람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너무 많은 생각이 들었다. 희주의 우아한 스타일과 모든 것을 가진 여유가 넘치는 포스는 정말 멋지다. 보는 내내 나도 저렇게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 그림을 배우는 아내에게 아낌없는 지원과 커다란 작업실, 없는 게 없는 도구들을 입 떡 벌어지게 세팅해줄 남편은 몇이나 될까. 아이들 학원비 대기도 바쁜 시국에 참, 부럽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그런데 더 기가 찼던 건, 그렇게 행복에 겨운 그녀는 알고 보니 결혼 동안에도 몸과 마음을 준 상대가 따로 있었던 것. 결혼 전 멋진 모델남과 연애를 하던 내가 아는 누구는 키작남이지만 능력 있는 그와 결혼하여 뉴욕을 누비며 살고, 핫했던 젊은 시절을 묻고 살아간다. 전혀 다른 현모양처의 길을 걷는다. 사실 나도 그렇다. 건실한 남편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추며 맥주를 마시는 양도 점점 줄어들고, 도덕교과서 같은 삶을 살려고 노력한다. 앞치마를 메고 늘 가족을 위한 식단을 고민하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으며 내 안의 가끔 끓어오르는 나를 짓눌러 가면서 말이다. 그게 정상이지, 희주가 이런 과감한 행동을 하게 된 건 현성이 바빠서만은 아니겠지. 희주를 만나면 도대체 왜?라고 묻고 싶다. 그냥 몸이 끌려서라는 뻔한 대답만 아니길 바라본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드라마의 결말을 나는 전혀 모른다. 예고편을 유심히 보지 않는 편이라 희주가 얼마나 인생에서 지옥불을 경험하게 될까 궁금해하며 드라마의 매력에 푹 빠져 있다. 희주는 모든 걸 잃고 파멸하는 게 맞다. 자신의 이기적인 마음과 본능 때문에 모두를 속이고, 배신하고 그러고도 끝까지 자기의 모든 것을 부여잡고 털 끝 하나라도 다치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의 과오를 알면서도 다 감싸 주는 남편 현성과 해원에게 누나 대신 용서를 구하는 선우까지 어쨌든 희주를 든든하게 감싸주는 방패막은 널렸다. 희주에게 모성애라는 것이 있을까? 자신의 복잡한 삶을 돌보느라 전혀 다른 것에는 집중이 될 것 같지가 않다. 사춘기 리사와의 교감도 늘 많이 답답해 보인다.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도 잘 모르는 것 같은. 결핍도 사랑도 배운 적이 없는 희주인 걸까? 쇼윈도 부부도 아니고 또 아닌 것도 아닌 그런 부부의 모습을 유지하면서 희주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었을까? 한때 아일랜드는 아스라이 연기처럼 잊히기를 바라며 우재라는 사람을 기억에서 도려낸 그녀는 얼마나 독한 사람인가.

 

                                 우재의 무모함이 싫었지만, 또 우재의 무모함이 좋았다




아일랜드에서 희주와 우재의 일상은 소박하지만 애정이 뚝뚝 흐르는 동화 같은 장면들 뿐이다. 소박한 식탁에서도 서로에게 먹여주거나, 비 오는 풍경을 배경으로 로맨틱한 입맞춤을 나눈다. 아름다운 바람과 들판을 뒤로 서로를 끌어안고 노을을 바라본다. 늘 바람을 따라 함께 들리던 풍경 소리는 그 여유로움과 추억이 가득한 시간을 떠올리게 해 준다. 모든 것을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는 철부지 같은. 진지하고 몰입하는 사랑임에 틀림없다. 앞뒤 계산도 다 필요 없는, 라면만 먹어도 행복한 그들이었겠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에게 상처가 되고 뼈를 깎는 고통 따위에는 귀도 눈고 닫혀버린 그들이었다. 이렇게 나와 너에게만 집중하는 사랑이라니. 이런 게 가능하구나. 물론 드라마니까 그럴 수 있겠지만 희주의 아름답게 나풀거리는 알록달록한 치마만큼이나 한가롭고 화려했던 비밀의 3년. 드라마는 우재가 그 모든 것을 기억해 내면서 심장을 두드리는 스릴러 물로 바뀌고 있다. 심장을 조여 오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과 결말을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의 연속을 기다려 본다. 추격자 같은 쫄깃쫄깃한 영화처럼.  

 

  

 3년의 사랑과 추억이 담겨있는 아일랜드 들판 사진을 그릴 때, 희주는 우재와 끝나지 않은 사랑을 나눈 것 같다.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인물들과 그 틈바구니에서 사랑에 올인하는 우재는 어떤 모습으로 남을까. 그의 모습이 정답이라고 하기엔 집착하는 수준이 도를 넘는 것 같아 불안하다. 결국 우재는 박제가 되어 희주의 작업실에 걸릴 수도 있겠다. 결국 썩지도 더 사라지지도 않는 우재를 박제처럼 마음에 박고 희주도 지옥불로 뛰어들게 될 것 같다. 결국 그것이 둘이 원한 사랑의 끝이었으리라. 리사와 호수는 희주의 인생에서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까. 현성의 집착의 끝은 과연 무엇으로 맺을까. 내 집착의 끝은 배신과 상처, 그리고 처절하게 듣던 슬픈 발라드와 잠들지 못한 수많은 밤이었다.

 모델 같은 우재 대신 허허실실 웃으며 배가 넉넉히 나온, 빵빵하고 종 부리듯 명령하듯 하는 시댁 대신 그저 평범한 시댁과 함께 사는 나는, 나를 닮은 남편과 아이들을 보면서 오늘도 소박하게 하루를 살아간다. 같이 산다고 완전히 소유한다고 믿었던 마음보다 그 안에서의 온전한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도 필요함을 느낀다. 내 시간과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비밀은 시간에게 지나보다. 희주의 가장 아름답고 은밀했던 3년을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결국엔 나에게 부메랑이 되어 날아오는 것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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