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닌가 보다.

달큰했던 돼지갈비도, 칼칼했던 육개장도

by 이작가

아빠는 털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같이 일하던 동료들의 배신도, 인생의 실패자가 된 기분도 그 복잡한 어떤 것들은 내내 아빠를 괴롭혔나보다. 그러니 그 모든 것이 아빠의 심장을 조이고 답답하게 만들었으리라. 누워있는 것도 늘 마음이 편하지 않으셨을테지.

집안의 가장이 엄마로 바뀌고 엄마의 공백은 아빠가 늘 채워주곤 했었다. 늘 기운이 없어 한 아빠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빠는 한 번도 내 앞에서 웃음을 잃어 보신 적이 없었다. 적어도 둘째 딸 앞에서는, 조잘조잘 이야기가 끝이 없고, 허허 웃음도 넉넉하게 지으시던 시간을 함께 쌓아준 친구 같은 사람이었다.



엄마는 한결같이 초라해질 아빠를 걱정하시곤 했었다. 그래서 반드시 아빠 지갑은 한 번도 비어두게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내막까지야 자세히 몰랐지만 자존심이 누구보다도 강한 아빠를 알기에 아쉬운 마음은 들게 하기 싫으셨던 것 같다. 엄마가 두둑한 만원짜리를 수십 장 아빠에게 주는 날, 어느 때보다 차가웠던 아빠가 떠오른다. 아빠는 저 돈 따위 나한테 별거 아니라는 듯, 냉담했었다. 하지만 엄마가 집 밖을 나가고 나면 어린 아이처럼 그동안 참고 있던 미소를 한 번에 지었었다.

아빠의 용돈은 주로 담배값과 사우나, 차비 등으로 대부분 나갔다. 한정된 돈에서 요목조목 살림을 꾸려나가시기 바쁘셨겠지. 내가 남편의 월급으로 요목조목 살림하듯이. 그러다 일주일에 한번씩 아빠 지갑이 무장해제가 되는 날이 있었는데 바로 내가 아빠와 함께 아점 먹는 일요일이었다. 아빠는 만원짜리를 보란 듯이 촤르르 세며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우리 딸, 뭐 먹으러 갈래? 아빠 돈 많아."

내가 현관 문을 열자마자 아빠는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시며 늘 그렇게 묻곤 하셨었다.

사실은 아빠가 나보다 더 신이 나 보였었지만 가끔 아이 같은 순수함은 우리 아빠만의 트레이드마크기도 했다. 우리 아빠는 예술을 했어야 한다. 그런 순수함에 감수성이 어우려져 어떤 것도 만들어 내셨을 것 같다. 직업으로 하셨던 건축은 뭔가 딱딱하다. 현장을 지휘하는 일도, 자재를 따지는 일도. 뭔가 아빠랑은 거리가 멀다.

"청평!"

청평은 아빠와 나의 암호이다. 돼지갈비 집 이름인데, 여러 군데 많고 많은 집 중 아빠랑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돼지갈비집이었다. 두툼하게 썰어 달큰한 간장양념장에 재어 낸 돼지갈비 한 접시면 우리는 소주 두 병은 너끈히 비울 수 있었다. 거기다 살짝 아쉬운 밥 배는 매칼한 육개장에 든든하게 먹고 나면 환상적인 점심 식단 메뉴가 되었다.

돼지갈비집으로 들어갈 때부터 아빠의 어깨는 춤을 추고 있다. 직원들에게 편한 이웃을 만난 듯 친절하게 인사를 건내고 늘 앉는 자리에 앉으셨다. 고기 잘라주는 청년들의 등을 토닥이고, 눈을 찡긋하면서 입꼬리로 한껏 웃음을 건내셨다.

언니도, 동생도 나보다 결혼을 빨리 하고, 달랑 남아 있는 내가 유일하게 아빠의 텅빈 일요일을 함께 채울 수 있던 그 몇 년의 짧은 시간들. 나는 7년 동안 매주 일요일 아빠와 오롯이 둘이서 아점을 즐기곤 하였다. 딸과 점심을 먹는 시간, 아빠는 가장 행복해 했다. 소주를 시킬 때의 목소리도 쩌렁쩌렁 신나하셨다. 평생을 종교적 신념 때문에 소고기만을 먹는 아내 때문에 돼지고기를 먹는 것 자체가 좋으셨던 것도 있겠지만.

돼지갈비는 구워지다 얼핏 하면 다 타버리기 쉬웠는데, 아빠는 노르스름 해지기도 전에 너무 여러 번 뒤집는 것이다.

'고기가 저러다 언제 익나, 나는 빨리 먹고 가야 하는데. 오후에 약속도 있는데.'

서른을 갓 넘은 나의 주말엔 아빠와의 시간 말고도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다. 서점도 가고 싶고, 공원도 걷고 싶고, 헬스장도 가고 싶었다. 큰 마트 가서 싱글녀의 스타일에 맞게 고급스런 소스, 육류, 주류까지 장도 봐야 했고, 빨래와 그간 쌓인 집안 일도 넘쳐났다. 내가 아빠에게 오랜 시간을 쓸 수는 없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은 조급하고, 고기를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어찌나 엉성하게 구웠었는지 아직도 꽝손 같은 내 손. 아빠는 집게를 내려 놓으실 틈도 없었다. 어쩌면 후딱 아빠와 아점을 해치우고 싶은 내 마음을 읽으셨던 걸까. 그것만은 눈치 채지 못하셨길 바라고 싶다. 나에게도 그 시간은 힐링 타임인 건 분명했으니까.

불판과 집게와 씨름하는 아빠를 물끄러미 보다, 고기와 쌈장을 듬뿍 넣어 상추쌈을 싸드리곤 했었다. 소주 한 잔을 시원하게 쭉 들이키시고 내가 드리는 쌈을 드실 때의 모습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지금 내 아이들이 맛있는 요리를 먹고 나한테 엄지 척을 해 줄 때의 만족감 따위에 비길 것이 아니다. 그 순간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같은.

당면을 잔뜩 넣은 매콤한 육개장은 그 시절부터 내가 좋아하는 메뉴로 자리 잡았다. 후루룩 뜨거운 당면을 과감하게 한 입으로 넣고 혀를 돌려 식혀 가며 한 입 가득 씹는 그 맛은 찰지고 쫄깃거렸다. 그러다 부드럽게 목을 타고 넘어가는 매칼한 국물과 어우러지는 그 맛이라니. 나는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빨갛게 물들은 육개장 당면을 아빠 밥공기에도 잔뜩 덜어주었다. 아빠는 그 당면을 내 밥 공기에 다시 덜어주곤 했었고.




결혼하고 아이들과 제일 많이 가는 음식점 중 하나는 돼지 갈비집이다. 동네에는 이렇다 할 맛집과 유명 음식점도 엄청 많다. 돼지갈비집 하나만 해도 종류가 엄청 늘어나, 구워주는 집도 있고, 무한리필집도 넘쳐나고, 인테리어가 깔끔한 집, 고기 육즙이 입 안을 가득 채우는 집 등 줄을 세워도 꽤나 될 것이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것은 그 어디를 가서 먹어도 그냥 돼지 갈비 맛이다.

아빠가 갑자기 떠나고 난 후 난 아직도 아빠 없는 시간들과 공간들에 익숙해지지 않고 있다. 물론 죽음이라는 것은 내 눈에 다시는 다시 볼 수 없는,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며 몇 년이라는 시간동안 산산히 깨지고 있다.

가장 마음이 찢어질 때 중 하나는, 아빠와 즐겨먹던 음식을 먹을 때이다. 그런 내색을 남편과 아이들 앞에서는 단 한 번도 해 본 적은 없으나, 잘 먹다가도 갑자기 쌈이 목구멍에서 안 씹혀질 때가 있다. 뭔가 덩어리가 차 올라서 자꾸 쌈을 짓누르고, 달큰하거나 짭쪼름할 쌈 맛이 쓰게만 느껴진다. 물 한 모금으로 마음을 달래고 쌈을 삼켜보려 하지만 이미 그리움과 엉켜버린 쌈은 이맛도 저맛도 아닌 덩어리에 불과하다. 나는 못 넘기고 조심스럽게 휴지에 뱉어낸다. 옆에서 누구보다도 달큰한 맛에 폭 빠진 남편과 두 딸 아이를 보면서 가족이어도 전혀 다른 공간을 헤매이는 것 같아 조금 거리가 느껴지기도 한다. 나는 결국 시간만 보내고, 물만 들이키며 가족을 보다 눈물이 흐른다.

"엄마는 이 맛있는 걸 먹다가 왜 울어요?"

둘째는 나에게 우걱우걱 쌈을 씹으며 한 마디 건낸다. 볼이 터질 듯 우물거리던 딸 아이는 그 시절의 나와 비슷하다. 아빠를 초롱초롱 바라보면서 추억을 쌓고 있겠지. 청평에서 먹던 돼지갈비 맛은 앞으로도 다시는 느끼지 못 할 것이다. 이런 어쩔 수 없는 마음에도 잠시 내 얼굴에 옅은 미소가 스친다.

육개장 집도 브랜드화 되고, 아빠가 살아계셨으면 모시고 가고 싶은 집이 참 많아졌다. 까다롭지 않으시니 싼 집이든, 비싼 집이든 이 집은 이래서 맛있고, 저 집은 저래서 맛있고 음식 품평도 제법 해 주셨을 것 같다.


아빠는 이런 나를 보신다면 뭐라고 하실까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지선아, 털어 내렴. 내 딸 씩씩하잖아."

그렇게 말하실까? 아빠와의 시간 속에서 헤매는 나를 기특해 하실까? 딸이 무엇보다 힘들지 않고 마음이 편하기만을 바라실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곰곰 생각을 하다, 속으로만 삭히던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다. 한 번에 되지는 않지만 아빠를 그리워 하는 내 마음을 실컷 드러내기로 했다. 언제든 몰래 꺼내 보던 내 마음을 더 내색해 보기로 했다. 거리를 걸을 때, 음식을 먹을 때 아빠와 마음으로 함께 먹기로 했다. 새로 나오는 집이 보일 때마다 아빠와 같이 다닌다고 생각하면서 다니기로 했다. 소탈하게 즐기고 계실 모습을 상상하면서. 소주 한 잔과 둘째 딸이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셨던 미소를 떠올리면서 아빠와 함께 먹기로 했다. 음식은 맛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추억으로 먹는 것이라는 것을 아빠를 생각하는 시간동안 깨닫게 되었지만 아빠가 남겨준 추억만으로도 나는 남은 시간을 다시 조금씩, 행복하게 살아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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