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의 노래를 들을 때

아빠와 처음 추던 왈츠를 기억하며

by 이작가

맘마미아라는 영화를 큰 아이와 보러 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영화 전체를 타고 흐르는 음악을 듣고 싶어서였다. 어릴 때부터 듣던 아바의 음악이 나온다는 기사를 접하면서 얼마나 개봉날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막상 어둠 속에 브라운관이 켜지고, 첫 아바의 음악이 흘러나올 때, 나는 영화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 모든 순간이 눈물로 번지고 있었다.



나는 어려서 노래를 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아빠는 내가 노래 부르는 소리를 즐겨 들었다. 아빠의 회사 모임에도 아빠는 나를 데리고 다녔다. 가족 노래자랑 같은 것에 나가면 나는 상을 탈 정도였다. 어린 나이에 아줌마와 아저씨들이 홀딱 반해 내 노래를 들어주곤 하셨었다. 대학생 시절엔 비 내리는 영동교와 애모가 18번이었다. 첫사랑도 많이 부르고 다녔다. 중학생 때부터 도서실을 한 달 끊으면 무조건 워크맨은 들고 다녔다. 음악과 라디오 없인 공부가 안됐으니. 난 음악을 끊지 못했다. 신기하게도 한 번 들은 음악은 제목과 멜로디가 한 번에 외워졌고, 난 줄줄이 음악을 들을 때마다 가사와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다녔는데. 아바의 노래는 영어라서 가사까지 다 외웠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멜로디는 정확히 다 지금까지도 꿰고 있다.

내가 이렇게 된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있었으니 우리 아빠다. 아마 지금 저 하늘에서도 아빠는 노래를 흥얼거리고 계실 것이다.

6살즘, 나는 아빠와 아바 댄싱퀸을 틀어 놓고 아빠 발을 살짝 밟고서 왈츠를 추었다. 한 발 한 발 아빠 발을 타고 춤을 추던 기분은 살랑살랑 아직도 생생하다. 댄싱 퀸은 묘한 매력이 있다. 무조건 추억을 소환한다. 인트로의 드르륵하며 올라가는 부분만 들어도 마음이 들뜬다. 몸이 둠칫 두둠칫 움직인다. 발이 타닥타다닥 바닥을 건드린다. 손이 흔들흔들, 엉덩이는 씰룩씰룩, 이건 뭐 온몸이 알아서 움직이게 만드는 마술쇼 같은 음악이다. 물론 신나는 비트와 박자가 깔린 음악도 많지만 나는 이 감성과 이 레트로가 가장 맘에 든다. 속이 다 풀리고 기분이 좀 해소된다. 아빠와 그 옛날 처음 왈츠를 출 때처럼 설렌다. 아빠한테 배운 휘파람도 저절로 불게 된다. 누가 보면 뭐에 홀린 사람처럼 변하게 만드는 곡. 나에겐 이런 곡이다.

또 신기한 것은 딸 둘이 모두 이 곡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큰 아이가 음악이 너무 좋았다며 영화를 소장해 달라는 부탁에 나는 과감하게 돈을 썼다. 나도 언제든 아바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맘마미아 영화가 있다는 것은 큰 위안이 될 것 같았다. 둘째도 처음 접하면서 함께 영화를 보는데, 그 옛날처럼 내가 큰 아이 손을 잡고 발 왈츠를 추었다. 그랬더니 둘째도 올라탄다고 우당탕 난리를 치고, 결국 한 번씩 함께 발 왈츠를 추었다.

"할아버지랑 했던 거야. 재밌지?"

아이들은 눈이 반짝반짝 내 발에 살포시 자기들 발을 올리고 리듬을 맞추었다.


영화에서 댄싱 퀸이 나오는 부분을 돌려서 전주부터 우리 셋은 거실을 쇼무대로 만들어 버렸다. 나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마이크로, 아이들은 옆에 있던 필통을 마이크로 들고. 동작을 맞추어 가면서 엉덩이를 두쒸두쒸 하며 열창을 뽑았다. 땀이 제법 나서 물까지 마셔가며 손을 위로 뻗었다가 거실을 빙빙 돌면서 우리는 우리만의 무대를 만들었다. 단체로 춤을 추는 장면은 여러 번 보니 영화에서 튀어나온 것처럼 춤을 출 수도 있었다. 아빠가 떠올랐다. 오늘은 아빠가 우리를 보고 정말 실컷 웃고 계시리라 생각이 들었다.

댄싱퀸은 그 뒤로, 딸들에게도 최애 노래가 되어 버렸다. 오죽하면 둘째가 계단 오르기를 할 때도 배경음악으로 틀고 할 정도가 되었다. 나처럼 너무 음악에 의미를 두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는데, 끌려하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가을이 찾아오고, 아버지 기일이 다가오던, 추석 명절 차 안이었다. 시댁에서 아버지 제사 지내라고 배려를 해주신 덕에 감사한 마음으로 차를 탔다. 딸들은 뒷자리에, 남편은 운전석에서 친정인 방배동으로 향하였다. 생각보다 밀리던 차 안, 딸들은 우리에게 음악을 틀어달라고 했다. 최신 발라드를 틀어줄까, 핫한 비티에스를 틀어줄까 물어보는데 이구동성으로 댄싱퀸을 틀어달라고 하였다. 남편은 댄싱퀸을 차 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리도록 틀어주었고, 한 곡을 거의 퍼펙트 하게 불러주고 있었다.

나는 창을 열고 아이들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며 잠시 눈을 감았다. 어느새 6살 아빠와 처음 왈츠를 추던 날로 돌아가, 살짝살짝 아빠 발을 밟으며 까르르 웃고 있었다. 그 순간, 꾹꾹 누르던 마음이 올라왔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눈물이 터지면 아빠 보러 가는데 안 이쁠 것 같아서였다.

아이들이 이렇게 큰 것도 못 보시고 가신 아버지 생각에 아쉬움도 컸지만, 살아계셨다면 손녀들과 댄싱퀸도 같이 듣고 부르며 즐거워하셨을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나는 결국 눈물이 터졌다. 오래 울지 않으려고 자꾸 다른 생각을 하려면 할수록 아빠 발 위에서 두둥실 떠 있던 느낌은 더욱 선명해졌다. 한 곡이 끝나도록 아빠랑 손을 맞잡고 세상에 다가가는 기분은 아직도 설레고 아련한 시간으로 남아있다. 아빠 발을 타고 추던 왈츠는 부드럽고 달콤했었다. 세상에서 나를 오래오래 지켜줄 것 같은 슈퍼맨 같은 아빠의 발을 타고 있는 기분은 꽤나 영웅 같았다. 왈츠를 추면서 아빠와 눈맞춤을 할 때, 뒤뚱뒤뚱 거릴까 내 손을 꼭 잡아 주던 아빠의 따뜻했던 손을 기억한다.


댄싱 퀸처럼 오래 들어온 노래가 우연히 어느 라디오에서 나오면 시간은 또 멈춘다. 아빠와 함께인 것 같아서 위로가된다. 음악은, 노래는 어느 공간도 차별하지 않는다. 사라져 버리지만 속속들이 스며들어 모든 순간을 함께 해 준다. 그래서 앞으로도 내가 함께 할 댄싱퀸의 모든 순간, 나는 아빠와 함께 있다.

앞으로 어쩌면 더 많이 댄싱퀸을 좋아하고 듣게 될 딸들의 모든 시간 속에서 엄마와의 발 왈츠는 또 다른 추억으로 남아주겠지? 지금 내가 아빠와의 시간이 소중한 추억인 것처럼.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추억 속에만 남아있는 시간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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