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유난히도 눈부셨었지.

아빠와 함께 예전처럼 둘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by 이작가

오랜 기간 입원을 유지해 오던 아빠는 병원에서 최후통첩을 받게 되었다. 이제 요양병원으로 옮겨야 한다며 엄마의 목소리는 오히려 담담하셨다. 난 갓난아이를 안고 텅 빈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아파트가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한꺼번에 여러 가지의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단 최선을 다해 아빠가 잘 해내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뿐이었다. 다만 그동안 수도 없이 넘어간 위급 상황에 이제는 발 빠르게 대처할 수가 없게 되었고, 잠시 호전되는 듯 보였던 며칠이 지나고, 다시 뇌경색이 더 해져 상태는 더욱 안 좋아지셨다. 병원에서도 이제는 준비를 하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아빠를 요양병원까지 모시고 갈 사람이 필요했다. 응급차는 구했지만 정작 아빠를 모시고 가줄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나는 당연히 내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아이를 맡길 데가 없었다. 남편은 곧잘 시간을 내주기도 했지만 그날따라 남편과 시간이 맞지 않았다. 가까스로 전화를 돌려 친척집에 잠시 맡기기로 했다. 아빠와의 오랜만에 나누는 시간이니 나는 한껏 꾸미고 싶었다. 그동안 얼마나 조잘거리는 내 목소리가 그리우셨을까 생각하며 나는 서둘러 채비를 했다. 아이를 키우며 머리는 떡이 지고, 거칠거칠한 내 얼굴과 여기저기 군살이 붙어가는, 찌든 내 모습을 오늘만큼은 숨기고 싶었다.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고, 한껏 나들이를 하는 기분을 내어 보기로 했다. 툭 걸쳐 입은 잠바가 얇았는지 틈으로 바람이 솔솔 새어 들어왔다. 햇살은 그 언제처럼, 따사롭고 눈이 부셨다.

이미 병원은 아빠를 옮길 준비가 끝나 있었다. 나는 아빠가 응급차로 옮겨지는 과정과 조심해야 할 상황을 들으며 꼼꼼히 확인했다.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하여 만반의 준비를 하고 심각하게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서워지기도 했다. 환자의 이동은 엄청난 스트레스임과 동시에 몸의 밸런스를 다 깨어버릴 수도 있는 위급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것에 떨려왔다. 제발 무사히 요양병원까지 도착하도록 바라고 또 바랐다.

드디어 아빠와 내가 탄 응급차가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삐뽀삐뽀 소리는 우리의 길을 함께 해 주었다. 아빠는 이 밝고 따사로운 세상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계절에 따라 바뀌는 알록달록한 꽃들과 싱그러운 나무들, 초록으로 뒤덮인 산을 좋아하던 우리 아빠는 상쾌한 자연의 공기가 얼마나 맡고 싶었을까.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며 덧없다고 느끼시는 건 아니겠지. 둘째와 즐겨먹던 소주의 맛과 향기, 그 모든 것을 아빠가 기억할 수 있을까. 그 시간들은 아빠에게 무엇으로 남아있을까. 답답하고 힘든 마음을 풀어내고 있는 것일까. 눈을 껌벅일 때 나에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수도 없이 묻고 싶었던 것들을, 나는 아빠에게 치열하게 마음속으로 묻고 또 물었다

대답이 없는 아빠를 바라보며 아빠 손을 꼭 잡았다. 거칠어진 아빠 손에 챙겨 온 핸드크림을 잔뜩 발랐다. 반짝반짝 윤기가 돌고, 손이 빛났다. 오랫동안 못 느껴본 아빠의 온기가 그리웠다. 나는 잠시 조금 기대며 아빠를 차근차근 하나하나 눈에 담았다. 부리부리한 눈과 오뚝한 코, 영화배우보다 더 멋있어 보인다고 했던 날렵한 턱선, 면도를 해서 깔끔한 인중, 정성 들여 엄마도 아빠를 꾸며 놓은 듯 보였다. 얇아진 다리와 팔은 담요로 덮여 있었어도 시간의 무게가 느껴졌고, 휑하니 뚫려있는 아빠의 목에 뚜렷이 보이는 가래를 뽑아내는 구멍은 오늘따라 더욱 쳐다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나의 아빠임이 분명했다. 창문에 커튼을 쳤는데도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아빠를 포근하게 감싸는 듯 보였다. 나도 함께 안아주는 것 같았다. 차는 달리고 달려 곧 요양병원에 도착했다. 아빠는 무사히 병원까지 잘 도착했다. 내 마음을 다 안다는 듯이 허공에 살짝 미소도 지으셨다. 평온해 보이는 아빠와는 달리 나는 후들후들 다리가 떨려왔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특유의 병원 냄새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빠가 있을 곳은 환자들이 여럿 모여있는 넓은 병실이었다. 가장 끝자리가 아빠의 자리였다. 간병인은 환자가 많은 데에 비해 두 명뿐이었다. 엄청 피곤한 모습으로 이리저리로 서성댔다. 아빠를 옮기고 옆에 앉아 있는 동안 생의 마무리를 준비 중인 환자를 여럿 보게 되었다. 살이 떨리고 불안한 기운이 나를 잡아먹을 듯 몰려왔다.


밤사이 잠을 너무 못 잔 탓이었을까. 나는 갑자기 와락 속이 뒤집힐 것 같은 증상에 화장실로 향했다. 토악질을 해대고 나와 다시 아빠에게 갔을 때, 아빠는 이미 잠이 들어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으며 한참을 버티다 결국 면회시간 막바지에 쫓기듯 나왔다. 병원 밖은 여전히 따사로웠다. 햇살이 포근했지만 나는 아직 진정되지 않는 속 때문에 잠시 병원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진정하려고 해도 가라앉지 않았다. 불덩어리가 가슴속에서 뿜어져 나오겠다고 용을 쓰고 있었다. 나는 못 나오게 막으려고 버티다 지고 말았다. 다시 토악질이 나왔다. 급히 뛰어가 쓰레기통을 찾아 봉지에 머리를 쳐 넣었다. 다 게워낸 줄 알았는데 끝도 없이 노란 물까지 다 뱉고 나서야 조금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어둑어둑 저녁 공기가 병원을 휘감았다.



그 날 이후로 아빠는 오래 버티지는 못하셨다. 그날이 곧 오리라는 것을 나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고, 아빠는 여느 환자들처럼 마지막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이를 어떻게든 맡기고 아빠를 보러 달려갔다. 얼마 남았는지 모를 아빠와의 마지막 시간은 헛되게 놓치고 싶지 않았다. 늘 그렇듯 병원을 들어갈 때는 생각이 복잡해져 왔다. 하지만 잠시라도 아빠를 보고 오면 마음이 놓였다. 가래를 힘겹게 뽑아내면서도 버티고 계신 아빠가 다행스러웠고, 감사했다. 보러 갈 곳이 있고, 그곳엔 아빠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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