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어쩌지 못해도 해야 하는 것들은 반드시 있다.
가까스로 아픈 아빠를 두고 나는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아빠가 없는 결혼식장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나였기에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아빠는 누워서도 내 걱정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한참을 밀어내다 휘청거리다 결국 나는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 신혼살림도 무엇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저 누워있는 아빠를 두고 나 혼자 다른 세상으로 도망치는 기분도 들었다. 식장에 들어설 때, 난 눈물을 씹어 삼켜야 했다. 고모부의 손을 잡고. 걸음이 잘 걸어지지 않아서 중간에 멈추었을 때 남편이 다가와 내 손을 잡아주었다. 아빠의 빈자리를 사무치게 느끼며 나는 온전히 나의 길을 가기 위해 노력했다. 그날.
드디어 둘째가 시집을 간다고 엄마는 며칠 전부터 분주했다. 아픈 아빠를 챙기시는 것도 모자라 둘째 결혼까지 겹치어 엄마는 정신이 하나도 없으셨다. 나는 거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엄마는 멍하니 앉아만 있는 나를 보며 서두르라고 재촉했다.
아빠와 손 잡고 걷기 연습을 하던 때를 떠올렸다. 그날이 바로 오늘인데. 아빠는 병원에 아무것도 모르고 누워만 계신 것이 생각할수록 마음 저려왔다. 어릴 때 발 왈츠를 추던 순간도 떠올랐다. 그때 나는 아빠 발 위의 세상에서 든든한 아빠를 믿고 어디든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결혼이라는 큰 세상에 나가는 것을 아빠는 알고 계실까. 알고 계신다면 얼마나 아빠 마음이 안타까울까. 손 꼭 잡고 잘할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끄덕 해 주고 싶으실 텐데. 거기까지 생각하니 차라리 아무 생각이 없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야 오히려 내 마음이 편했다.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간이 왔다.
나는 새벽 공기와 함께 바깥세상으로 나갔다. 봄기운이 새벽에도 느껴질 만큼 포근했다. 며칠 추워서 겨울 같더니 봄은 봄이었다. 아빠와 걷던 길을 지나 아빠와 바라보던 나무를 지나 약속한 장소로 걷는데, 아빠가 쉬곤 하던 길목이 보였다. 바로 몇 달 전만 해도 나는 아빠와 저 식당에서 음식을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고, 수다를 나누며 추억을 만들었는데.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 시간은, 추억으로만 남아있었다. 소름이 끼쳐왔다. 그리고 현실이 다시 느껴졌다. 아 맞다. 나 오늘 결혼한다.
쓰러지시던 날, 나는 아빠 앞에서 설레고 들떠서 결혼식장을 뛰어 들어갈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었다. 아빠는 조금 서운하셨는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 아빠만 세상에서 믿는다고 할 때는 언제고!"
"아빠야 늘 세상 최고지!"
아빠한테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요일 단 몇 시간 나는 아빠에게 시간을 쓴다고 생각했고, 내 딴에 착한 딸이라고 생색도 냈었다. 씁쓸함이 밀려왔다.
준비는 뭐가 그리 많았는지. 내 정신은 집중을 하려고 해도 허공에 부유만 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시간은 다가오고,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부 입장은 결혼식의 꽃이라며 사회자가 분위기를 띄우고, 나는 떨리는 마음과 함께 그 자리에 섰다. 내 옆에는 늘 아빠와는 친구 사이로, 나에게는 고모부의 자리를 지켜주시던 고모부가 서 있었다. 나 혼자 들어갈까도 생각했었지만 아빠는 무엇을 원하실까 곰곰 생각해보니 홀로 쓸쓸하게 보내고 싶지는 않으실 것 같았다. 잔잔히 신부 입장곡이 홀에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화려한 조명은 한 데로 모여, 나를 비추었다. 나는 그날의 주인공처럼, 한걸음, 한걸음 앞으로 걸어 나갔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울지 않을 수 있다고 믿으며. 결혼식날엔 우는 거 아니라고 엄마도 여러 차례 말씀을 하셨었기에 나는 최대한 멀쩡하게 걸어가기로 정신줄을 다잡았다. 걸을수록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잠시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 사이 내 눈에서는 주르르륵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눈치를 챈 남편은 조금 더 멀리까지 와서 나를 데리고 주례가 서 있는 곳까지 가 주었다. 겨우겨우 입장을 마치고, 부모님께 인사하는 시간이 왔다.
고운 화장으로, 힘이 하나도 없는 채로 자리에 앉아계시는 엄마와, 그 옆을 묵묵히 지키고 계신 고모부를 보는 순간, 나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입술을 깨물어 보았지만 도저히 내가 참을 수 있는 한계치를 이미 넘은 것 같았다. 드레스까지 젖어들 만큼 끝도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오래된 친구들은 나와 함께 속으로 울어주고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서도 나는 멍했다. 축하받는 날인데, 내 얼굴은 온통 찌푸린 사진들 뿐이었다. 눈물로 얼룩지거나, 생각에 젖어있는 사진들이 많았다.
결혼식을 마치고, 나는 남편과 함께 아빠 병원으로 갔다. 예쁜 신부 화장을 그대로 한 채.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였다. 아빠는 가물가물 뜬 눈으로 나를 보셨다. 입꼬리가 아주 살짝 움직일락 말락 하셨다. 내 맘대로 아빠는 다 아시는 것 같다고 위안했다.
"아빠, 나 오늘 결혼했어."
아빠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보았다. 아무 느낌도 감정도 없이 잡고 있는 아빠의 손에 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남편이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아버님, 걱정 마세요. 저희 잘 살겠습니다. 제가 잘해줄게요."
남편은 장인어른을 보며 다짐을 남겼다.
"얼른 일어나세요."
나와 남편은 아빠를 보고 동시에 외쳤다. 우리는 이제 하나가 된 것 같았다. 이제 나에게 편이 생겼으니 아빠도 금방 일어나 줄 것 같았다. 아빠가 맘에 들어한 사람과 잘 살겠노라고 나도 마음속으로 아빠에게 다짐을 하며 병원을 나왔다.
세상 가장 행복할 것이라 믿었던 내 결혼식은 그렇게 끝이 났다. 눈물과 공허함, 쓸쓸함이 가득한 봄이 우리를 지나가고 있었다. 늦어진 결혼과 함께 나는 슬슬 육아의 세계로 끌려가고 있었다. 아빠를 보러 갈 수도, 갈 시간도 없는 빡빡한 현실은 나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아빠와 멀어지는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아빠의 병실은 간병인과 엄마가 도맡아 하기 시작했다. 아빠의 차도는 거의 없었지만 엄마는 해볼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고 있었다. 좋다는 약과 주사는 안 써본 게 없을 정도였다. 그렇게 아빠는 3년 가까이 한 병원에서 버티고 버텨갔다. 결혼 전까지 아빠와 매주 보냈던 시간들은 순간순간 나에게 힘이 되었고, 살아갈 이유가 되었다. 풋풋하고 행복만 하기에는 이미 내 마음이 갈퀴 갈퀴 찢기어 회복될 시간이 필요했다. 따뜻한 남편의 말과 웃음이 치료제가 되긴 했지만, 나 스스로 누워있는 아빠를 받아들일 시간이 절실했다. 시간이 갈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