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갈수록 더 또렷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첫사랑에 실패하고, 그 상처는 나를 십 년이나 가두었었다. 이유는 만나던 사람에게 부잣집 다른 여자가 생겼기 때문이었다. 이 얼마나 유치한 아침드라마인가. 대학 시절, 나는 그 현실을 받아들이기 너무 어렸고, 나를 배신해 버린 것들을 곱씹으며 경멸했다. 박진영의 너의 뒤에서를 천 번도 넘게 돌려 들으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어렸을 때부터 드라마에는 꼭 바람피운 남자의 얘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일부러 자극적인 소재를 만드는 것을 보며 드라마 구조에 관심을 보이고 결국엔 벌을 받거나 나쁜 짓이 탄로 나는 것을 보고 속은 후련하다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저런 건 드라마에서만 있는 일이지.라고 자신하며. 내 생각이 틀렸다. 그런 넘은 세상에 많다. 만나던 사람이 나를 뻥 차 버리고, 공개적으로 나만 모르게 다른 여자를 만나 온 나쁜 엑스 자식이라는 것을 깨달은 어느 날, 나는 아빠에게 달려갔었다.
"아빠, 남자를 못 믿겠어. 우리 집 강아지만도 못해."
"세상 남자 다 믿지 마. 아빠만 믿어."
나는 우스갯소리로 응답해 주는 아빠를 보며 위로를 받았다. 여자 마음을 할퀴어 놓을 수가 있냐고 나는 아빠에게 엄청나게 남자들을 싸잡아는하고 싶은 욕을 연설처럼 퍼부었다. 아빠는 묵묵히 들어주다가 같이 흥분하다가 같이 웃고 풀어주었다. 또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면서. 아빠처럼 믿음직스럽고 따뜻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내가 남자는 쳐다도 안 보겠다 생각했었다.
그 날을 시작으로 나는 남자의 근처는 잘 안 갔다. 싫었고 싫어서. 다가오는 것도 싫고 말 거는 것도 싫었다. 뭔가 병적에 가까웠다고 해야 맞을 수도 있겠다. 이십 대 때부터 삼십이 넘어가는 동안, 이래저래 마음을 표현해 준 사람들은 있었지만 끌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철통 같이 닫힌 내 마음을 열기엔 난 아직도 뜨거운 첫사랑의 상처로 몸이 여기저기 상처투성이라 작은 것에도 조심스러웠다.
어느 공부 모임에서 알게 된 남동생은 몇 번씩 나에게 대시 아닌 대시를 했었다. 그러는 동안 언니와 동생은 짝을 찾고 나는 마음을 줄 상대를 못 찾으며 세월을 허허롭게 낚고 있었다.
그런데, 동창들 다 결혼으로 바빠지고, 삼십이라는 나잇대에 접어드니 일에만 집중하기에 뭔가 공허했다. 그리고 나이와 경험이 쌓이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조금씩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진심이 느껴지고, 나를 위하는 마음을 다시 보게 되었다. 그때 다가온 한 사람, 너무 안 지 오래된 데다, 그렇게 많이 수다를 떨었던 사이, 일거수일투족을 모르는 게 없을 것 같은 한 남자 동생이 데이트 신청을 해 왔다. 뻘쭘하게 무슨 우리 사이에 데이트 신청, 나는 어색하고 웃겨서 푸하핫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 너랑 진지하게 만나보고 싶어. 결혼을 전제로. 그리고 이게 마지막 대시일 거야."
이십 대에는 연하라는 말도 엉성하게 느껴져서 남자로 안보였다. 세월이 한 십 년 지나고 알던 동생을 차분히 보니 인품도, 직업도, 외모도 크게 빠지는 것 같지 않았다. 거기다 종교도 우리 집과 맞아떨어졌다. 그런 와중에 무엇보다 이년이나 나이가 많은 누나한테 저돌적인 호칭, 너라는 말은 너라고 부를게라고 하는 어느 노래 가사처럼 마음에 콕 와서 박혔다. 마지막 대시라는 말은 내 마음에 소용돌이를 만들었다. 출렁출렁 다시 마음에 물살을 돌게 하고, 어디든 가고 싶게 만들었다. 못 이기는 척, 마음을 받아보기로 했다.
그 순간, 가장 먼저 아빠가 떠올랐다. 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드디어 마음을 나누고 싶은 사람이 나타났다고 말씀드렸다.
한 며칠이 지나고, 아빠는 그 친구의 얼굴을 보자고 하였고, 나는 상견례처럼 아빠와 저녁을 함께 했다. 아빠는 첫 순간, 절대 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아주 건조한 표정으로 조금은 차갑게 그를 대했다. 나는 아빠의 팔짱을 여느 때처럼 끼며 장난치듯 굴었지만, 아빠는 찬찬히 내가 데리고 간 남자의 모습을 분석하느라 바빴다. 아빠는 헌병대를 나오셨다고 했다. 마치 헌병대에서 누구보다 날카로웠을 아빠의 표정과 누군가를 취조 하는 듯한 따가운 눈초리로 그를 훑어내렸던 순간을 기억한다. 겉으로는 차가우시나, 가끔 웃어도 주고, 대화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나는 아빠와 몰래 찡긋찡긋 암호를 주고받았다. 내심 마음에 드시나 보다 딸로서 느낄 수 있는 직감이 왔다. 마음에 안도가 왔다.
아빠는 흔쾌히 허락하셨다. 엄마는 조건에, 종교까지 맞으니 다행이라고 좋아하셨다. 그리고 양가 식구들끼리 자리를 만들었다. 내 결혼식 날짜는 일사천리로 잡혔다. 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시작을 할 터였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고, 희망이 꿈틀꿈틀 솟았다.
나는 아빠와 벌써부터 웨딩마치 때 손잡고 들어가는 것을 연습하기로 했다. 거실에 카펫을 세로로 다시 깔고 길을 삼아 우리는 연습을 하며 깔깔 웃었다.
"아빠가 더 떠는 거 아니야?"
"아빠는 안 떨어. 내 딸이 옆에 있는데."
아빠와 나는 몇 번씩이고 걸어 들어가는 연습을 했다. 아빠의 손은 언제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을까. 그 순간 당연했으니까. 이렇게 좋은 내 아빠라는 사람은 오래오래 곁을 지켜줄 줄 알았으니까.
아빠가 떠나고 나는 여러 번 잊기도, 선명하게 기억하기도 했다. 그때 아빠 손을 잡고 연습하던 때를. 하지만 미련 같은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덩어리가 커진다. 더 못 해 본 것들과, 그래도 해 봐서 다행인 것들과 사무치게 아쉬운 것들. 이 모든 것은 덩어리로 남는다. 어느 순간은 덩어리들이 나를 짓누르고 더 커다랗게 뭉쳐져서 나에게 굴러오기도 한다. 차라리 눌려 깔려버리면 마음이 편할 때도 있다. 털어내기엔 더 선명해지는 순간들. 그렇게 시간은 흘러가고 있었고, 아빠는 남몰래 아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