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변해가던 당신의 모습

대화를 나눈 것일까. 잔소리만 쏟아낸 것일까.

by 이작가

평소처럼 아빠와 아점을 먹은 일요일이었다. 뽀얀 설렁탕 국물에 몇 점 들어있는 실한 고기, 부드러운 소면에 달달한 깍두기, 소주 한 병을 나눠 마시고 두런두런 이야기 꽃을 피웠다. 배를 땅땅 두드리며 음식점 문을 열고 나왔다. 햇살이 거리를 잔뜩 비추던 그때, 순간, 아빠는 조금 기력이 없어 보였다. 식당에서 집까지 가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는데 그 날 따라 유독 아빠의 발걸음이 느렸다. 그러다가 걸음을 멈추더니 딸 한 번, 길 한 번, 그렇게 보기 시작했다. 아빠는 여러 번, 내가 아프다고 말을 했던 것 같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 모든 순간순간은 아빠 혼자 견뎌내던 힘든 시간이었다.




아빠의 그런 행동에 의문을 품기보다 짜증이 앞섰다. 일주일 내내 전집을 만드는 출판사 마감 때로 정신없이 새벽 퇴근을 하고도 아빠와의 데이트를 위해 시간을 냈던 터라서, 조금 힘도 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혼자 일요일을 멍하니 식사하실 모습을 생각하면 이상하게 가슴이 아파서 운전대를 안 잡을 수가 없었다. 다녀와서 오후에는 쉬겠다는 마음으로. 강변북로를 달리고 달려 일산에서 집까지 최고속으로 쏘듯 도착해서 아빠와 부랴부랴 아점을 먹은 후. 미적미적 거리는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한 숨을 푹 쉬며 아빠를 보았다. 아빠는 그 사이 이마에 식은땀이 흥건했다. 가방에 갖고 있던 손수건을 꺼내 아빠 이마를 닦아 주었다.

"잠깐 앉았다 가자."

"여기 앉을 데가 어딨다고 그래요?"

아빠는 짜증 섞인 말투로 말하는 내 손을 끌어 잡더니 결국 식당 앞 길거리에 앉히고 말았다. 길을 가는 사람들은 아빠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기도 했다. 이게 뭐야. 그지 꼴 같았다.

"아빠 창피해. 얼른 일어나요. 좀."

"잠깐이라니까."

왜 안 하시던 행동과 말을 하시는 걸까. 나는 그렇게 아빠와 보낸 시간이 많은데도, 그것이 몸이 아픈 증상일 거라고는 굳게 부정했던 것 같다. 아빠가 어디 아프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중 하나였으니까. 나는 마음에 자꾸 날이 서고, 거친 말이 나오기 직전이었다.

그때, 아빠가 억지로 일어나려고 주춤거렸다. 아빠의 팔을 이번엔 내가 거들고, 일으켜 보려고 하는데 다시 아빠가 풀썩 주저앉았다. 참았던 마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아빠, 진짜 왜 그래? 그게 뭐가 어렵다고!"

나는 소리를 버럭 질러놓고도 짜증과 화가 밀려와 옆에서 길바닥을 툭툭 걷어찼다. 도저히 아빠가 이해되지 않았던 철없던 내 모습은 시간을 되돌린다면 다시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한 모습이다. 나는 튀어나오는 대로 모든 말을 아빠에게 쏟아부었다. 아빠는 힘든 시간 중에 옆에 있어주던 둘째 딸의 날카로운 언어에 얼마나 마음이 다치고 아프셨을까. 그래 보았자 잠시 앉아 있었던 시간 십여분밖에 안되던 시간 동안 나는 무얼 그렇게 아빠에게 쏟아붓고 잔소리처럼 나무라고 몰아부쳤는지.

십여분이 흐르고, 아빠가 스스로 일어났고 나는 아빠 뒤를 쫓아 걸었다. 아빠는 어지러운 듯, 술도 많이 안 드셨는데 비틀비틀 걸으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내 아빠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금 흐트러져 보였다. 그때가 시작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빠에게 찾아온 위기의 순간은 나에게 여러 번 신호를 보냈었다. 그리고 나는 눈치를 챘어야 했었다.

한 달 요즘 지나고, 아빠와 청평을 들러 아점을 먹은 후, 우리는 또 비슷하게 길거리에 앉아서 잠시 쉬고 있었다. 이제는 밥을 먹고 식당 앞에서 쉬는 것은 예삿일이 되어 버려서 나도 무덤덤해지고 있었다.

"햇살이 참 좋지?"

"아빠, 지금 햇살 얘기할 때야? 빨리 걸어서 집에 가야지."

"아빠는 밥 먹는 시간도 좋은데, 이렇게 우리 딸이랑 잠시 쉬고 있는 것도 좋네."

"참, 그러면 카페를 가든가! 여기 널린 게 다 카페 구만."

"그냥 길이 좋아. 그냥."

하지만 내가 본 아빠는 길이 좋아서 앉아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서, 아니면 어지러운 머리를 쉬게 하려고, 후들거리는 다리가 아프대서 등 여러 가지의 이유로 쉴 수밖에 없는 필수 불가결한 상황 때문에 쉬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또 십여분을 쉬고는 다시 걸어서 집까지 오던 중에 아빠는 차 트렁크에 뭐를 실어 놓았다고 엄마가 꼭 주라고 했다는 말씀을 하셨다. 차 쪽까지 가면서 엄마가 해 놓았을 반찬 생각에 집에 가서 금방 밥해서 반찬이랑 먹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아빠는 차키로 열고, 반찬통을 잔뜩 바리바리 꺼내 주고, 반찬통을 커다란 봉투에 옮겨 담는 것도 함께 도와주었다. 이제 당연히 트렁크를 닫아야 할 때, 나는 트렁큰 안쪽으로 아빠 손가락이 들어있는 것을 보았다. 아빠가 트렁크를 닫아버리면 손가락이 크게 다치게 될 상황이었다. 설마 아빠는 손가락을 빼겠지. 모르시지는 않겠지. 아냐. 말해야 해.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아빠를 보던 때. 아빠는 힘차게 트렁크 문을 닫아버렸다.

"으악!"

나의 비명 때문에 아빠의 비명은 공기 중에 묻혀 버렸다. 트렁크 문을 얼른 열어 아빠의 끼인 손가락을 보았을 때 이미 파로 범벅이 된 손가락이 너무 끔찍해서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갑자기 울렁울렁 속이 뒤집히고, 너무 놀란 마음에 아빠를 잡을 수도 없이 충격을 받았던 그때. 아빠는 내 옆에서 한 마디를 덤덤하게 내뱉었었다.

"이게 언제 들어가 있었지?"

"아빠, 빨리 병원 가자."

나는 놀란 마음이 울음으로 바뀌며 아빠를 잡고 병원을 가자고 재촉을 했다.

"괜찮아. 별로 안 아파."

라고 하시며 나를 달래시고는 무덤덤하게 집 쪽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셨다. 나는 호들갑을 떨다 떨다 이기지 못하는 아빠를 원망하고, 고집불통이라느니 온갖 얘기를 다 해댔다. 엄마한테 전화를 하고, 아빠가 다치셨다고 알렸다. 아빠는 아무렇지도 않으니 나더러 오피스텔로 가라고 하셨다.

병원에는 한사코 안 가겠다는 아빠와 집으로 들어갔다. 허겁지겁 상처에 바르는 약을 찾고, 급한 대로 알코올 솜과 밴드를 찾아냈다. 아빠의 다친 손가락을 보는 것도 힘든데, 떨면서 소독하고 겨우겨우 약 바르고, 밴드까지 붙이고 나니 나도 머리가 어질어질 해졌다. 오히려 아빠는 계속 안 아프다는 말씀을 하셨고, 피곤하시다며 잠만 좀 자겠다고 조용히 방으로 들어가셨다. 잠에 드신 모습을 확인하고, 집 문을 닫고 나왔다.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았다. 당연히 아빠가 뺄 줄 알았던 손가락은 왜 트렁크에서 나오지 못했을까. 답을 찾을 수 없었던 내 마음은 답답해져만 갔다. 트렁크 사고가 있은 후 그런 어이없는 사고는 다시 일어나면 안 된다고 나는 아빠에게 잔소리처럼 말했다. 또 여러 번의 아점을 먹으면서 레퍼토리처럼. 나는 아빠와 대화를 나눈 것일까. 잔소리를 해댄 것일까. 아빠는 딸이 해 주는 말을 모두 기분 좋게 들어주었을까. 듣기 힘드셨을까. 그저 부드러운 말투로 나긋나긋한 웃음을 지으며 속삭이듯 아빠에게 사랑을 표현해도 모자랐을 그 짧은 시간들. 확인하고 싶어도, 묻고 싶어도 목소리조차 들을 수 없는 모든 순간들에 나는 갇혀 있다.





keyword
이전 01화내 것이 아니길 바라던 시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