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햇살 한 줄기가 없었다. 며칠 째 아빠는 이불 신세였다. 새벽녘 아는 아저씨들이 아빠를 부축해 왔다는 말을 엄마에게서 들었을 때, 언젠가 보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부상자 장면이 떠올랐었다. 입 안에 피비린내가 돌았다. 나는 걱정 반과 호기심 반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가물가물 눈을 뜨지 못하고 사시나무 떨 듯, 어떤 무언가에 강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빛이 조금이라도 보이면 괴성을 지르고는 했다. 하루 종일 정신병자처럼 떨고만 있는 아빠를 보며 감기몸살이 저렇게 심하게도 올 수 있나 혼자 생각했다. 그날을 시작으로 아빠는 시름시름 앓아갔다.
우리 집은 다른 집 같았다. 엄마의 한숨은 날로 늘어갔고, 답답한 공기는 나를 더욱 짓눌렀다. 학교에서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와도 아무도 나를 보고 웃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엄마는 누워있는 아빠를 두고 혼자만 바빠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나갔다가 밤에 들어오기 일쑤였고, 그동안 큰 욕심부리지 않았던 우리의 소박했던 일상은 모두 틀어지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오자마자 또 다른 일과가 시작됐다. 아빠 약과, 물, 죽을 챙기느라 바빴다. 엄마는 우리가 먹을 대충의 것들을 만들어 놓고는 홀연히 사라져 밤에 들어오기 바빴으므로. 나는 그런 엄마를 당연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직 한참 어린 나에게 무슨 수로 아빠 뒷바라지를 하라는 건지. 갑자기 아픈 것도 황당한데, 딸이라고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내 생각은 하나도 해 주지 않는 것 같았다. 속상한 마음에 엄마가 주섬주섬 나가는 아침이면 일부러 돌아보지도 않았다. 애꿎은 흰쌀밥만 젓가락으로 계속 후벼 팠다. 굳게 닫혀가는 건 내 마음이었다.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작은 가게를 차렸어. 두부 집이야."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난 그저 아빠도, 엄마도 없는 아이라는 생각뿐이었다. 이렇게 앞으로도 쭉.
삑삑 삑삑 삑삑!
열 시만 되면 엄마는 현관문 키를 눌렀다. 검은 봉투에 두부 두 모를 항상 들고서. 엄마가 집에 와도 반기는 이는 없었다. 엄마도 내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겉옷은 소파에 툭 걸쳐놓고, 싱크대로 가기 바빴다. 투박하고 거칠거칠한 하얀 두부를 꺼내어 냄비에 물을 콸콸 틀어 담고, 가스 불에 냄비를 올렸다. 물이 팔팔 끓으면 두부를 퐁당 던져 놓고, 잠시 멍해졌다가 두부를 꺼내고 접시 위에 담아 놓았다. 하얀 두부와 고춧가루 양념장, 이것은 항상 같은 우리 집 반찬이었다. 나는 두부 반찬에 손도 대지 않았다. 아빠는 하루에 딱 한 번 두부를 먹는 시간에는 조금 기운을 차리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두부는 죄가 없지만 두부가 싫었다.
하루 종일 어둡고 갑갑한 곳이 집이라니 끔찍할 뿐이었다. 얼마 전까지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우리 집은 어느 산속에 있는 작은 절처럼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어항에 물고기들만 뻐끔거릴 뿐, 나 조차도 살아있는 것 같지 않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저녁 식사 후, 엄마가 솜씨를 뽐내며 잘라주던 과일들, 치즈 케이크를 먹던 시간들은 이제 없었다. 아기도 아닌데, 아침마다 아빠에게 넥타이를 매 주던 엄마, 환하게 웃으며 나를 번쩍 안아 인사해주던 아빠가 너무 그리웠다.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아빠가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바뀌지 않는 건 커텐을 조금만 치려고 해도 아빠가 이상하게 싫어하셨다. 그러면서 시시콜콜한 부탁에 일도 많아졌다.
"엄마 가게에 가 보지 않을래?"
아침부터 푹푹 찌는 더위에 창문이라는 창문은 다 열고 숨을 고를 즘이었다. 아빠는 불쑥 물었고, 나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싫어."
"그래도 가보긴 해야지."
이렇게 끈적끈적한 날에 두부 집이라니.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아빠는 주섬주섬 잠바를 꺼내 입고 나에게 따르라 무언의 말을 보냈다.
'아픈 바라지는 내가 다 하고 있는데 아빠는 뭐가 그리 당당하지?'
투덜투덜 대다가 나는 마음을 고쳐먹고 입고 있던 운동복 차림대로 아빠와 현관문을 나섰다.
훅 찌는 장마철 더위가 눅눅했다. 내 콧김만으로도 이미 땀범벅이 되는 것 같았다. 아빠를 모시고서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꾸역꾸역 낯선 동네에 도착했다. 버스를 타자마자 눈을 감고 한 번도 뜨지 않았다. 잠들었나 건드려보면 아빠는 한 마디 했다. 빛이 싫어서 였던 것 같다.
"다 오면 알려줘."
버스에서 내려 저 멀리로 아주 작게 두부 집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향해 걸었다. 아빠와 나는 허름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밖도 더운데 안도 덥기는 마찬가지였다. 선풍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지만 더운 바람만이 온 가게에 가득했다. 세 개의 테이블. 그게 전부였다. 우리는 가장 구석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드르륵! 한 아저씨가 성큼성큼 들어와 테이블에 앉았다.
"두부 먹으러 왔소이다! 산에서 내려와 두부 한 모면 최고지! 물냉면도 한 그릇 같이 주소."
"어머, 또 오셨네요." 엄마는 손님을 알아본 것 같았다.
또다시 문이 드르륵 열렸다. 등산복을 입은 손님 둘이 들어오더니, 지팡이를 모퉁이에 기대어 놓고 앉았다. 앉자마자 얼굴에 흐르는 땀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았다. 작은 가게가 금세 꽉 찼다. 엄마는 두부를 꺼내느라, 양념장 야채를 써느라, 면을 삶느라 정신없이 바빠졌다. 준비가 다 된 대로 먼저 우리 테이블에 두부와 양념장을 놓아주고 또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매일 집에서 보던 바로 그 그림이었다. 두부도 양념장도 다를 게 없었다. 아빠는 늘 그렇듯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뜨끈한 두부를 한 점 크게 입에 넣었다. 나도 처음으로 두부를 먹어보았다. 두부가 다 거기서 거기지 라고 생각하며.
입 안에 고소함이 감돌았다. 뜨끈한 두부는 내 마음까지 따뜻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양념장에 콕 찍어 한 입을 제대로 먹었을 때는 너무 맛이 있어서 눈물이 날 뻔했다.
아빠는 구부정하게 앉아 투박한 두부 한 모를 맛있게도 드셨다. 내가 해 드리는 죽은 싫어하시면서, 엄마의 두부는 까탈을 부리는 적이 없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속상하고 마음이 찢어졌다. 순간, 심장 깊숙한 곳에서 울컥한 덩어리가 올라왔다. 나와 아빠가 집에서 보내는 동안 나는 세상에서 가장 힘들다고 생각했었다. 엄마도 또한, 누구보다도 치열한 하루를 살고 있었고.그리고 아빠도. 늘 이불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뒹굴어 가며. 약에 의존하고 모든 것을 떨쳐내지 못하는 채로.
방황은 잊을 만하면 나를 찾아와 휘청거리게 만들었었다. 그만큼 철도, 이해심도 부족했던 시절들. 왜 모든 시절은 지나간 뒤에 보이는 것일까. 엄마도 아빠도, 모두 내 것이 아니길 바랐던 시간들은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아빠는 그때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어둠을 찾으셨다. 나의 마음 속에 채워지지 못한 빛은 늘 허전함이 쌓이고 쌓여 어둠에 묻히곤 했다.
지금에 와서는 왜 아빠가 어둠이 편했는지 알 것 같다. 발작처럼 일으키던 심장병 때문에 한 줄기 빛마저 아빠를 짓누르던 힘겨웠던 대상임에 분명했다. 결국 그 심장병은 아빠를 잡아 삼켜버렸다.
결혼을 하고 새로 산 집에는 하루종일 빛이 가득하다. 두 딸 아이는 늘 밝은 집이 좋다고 잔소리처럼 말한다. 아이들이 학교를 간 틈에는 원없이 우리 집을 비추는 햇빛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커피의 그윽한 향보다 쏟아지는 빛이 나에게 더 힐링이 되곤 한다. 따뜻한 빛 명당에 일부러 작은 테이블을 놓고 커피 잔을 올려 놓았다. 아빠가 그렇게나 싫어하던 빛, 내가 그렇게나 갈망하던 빛, 아빠가 없는 이 현실에서 쏟아지는 빛은 아빠에 대한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어둠이 편했던, 어둠이 친구였던 아빠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