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함께 웃고, 저녁엔 함께 울다.

설레었고, 기대가 넘쳤던 하루의 끝에는

by 이작가

다를 게 없던 날이었다. 나는 일산에서 아빠 집까지 정주행으로 달렸다. 제법 쌀쌀해진 바람이 코끝을 스치는데 가슴이 뻥 뚫릴 정도로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늘 그랬듯 신나는 음악을 틀고 액셀을 밟았다. 무슨 메뉴를 먹을까 즐거운 고민에 빠지면서, 곧 날이 풀리면 신혼집 가구를 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설레었고, 기대가 넘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후에는 엄마의 두부집에서 가족 모임이 있었다. 나는 결혼할 사람과 함께 참석할 예정이었다. 모든 게 완벽했다.


"날도 쌀쌀한데 아빠, 뜨끈하게 육개장 먹을까? 나는 고기는 패스할래."

"그래, 저녁에 두부집도 가니까. 점심에 고기는 먹지 말자."

아빠와 나는 합이 잘 맞아서 메뉴도 척척 잘 맞았다. 어느 드라마 제목처럼 환상의 궁합 같은.

빨간 육개장에 밥공기 한 그릇을 몽땅 말았다. 당면을 후후 불어 커다랗게 한 숟갈을 입에 넣으며 날씨에 너무 잘 맞는 음식이라고 극찬을 했었다.

"아빠, 오늘 오후 일정이 어떻게 돼?"

"잠깐 쉬고, 사우나 갔다가 두부집 가려고."

"그럼 아빠, 난 콩나물국만 끓여놓고 두부집으로 갈게요, 그 사람이랑."

아빠는 환하게 웃었다. 식당서 나올 때 잠시 휘청하던 일은 없어져서 날이 추운데 길거리에 앉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나는 아빠 팔짱을 끼고, 집으로 가면서 초라해져 가는 가을 나무를 바라보았다. 아빠의 팔짱을 더욱 꼭 끼고 쓸쓸해 보이는 가을 골목을 함께 걸었다. 아빠는 딱히 다른 말은 없었다. 그냥 내 팔짱을 잘 받아주었다. 조잘조잘 끝도 없는 내 수다를 조용히 들어주었다.

"대리비 해."

늘 일요일 낮술을 마시고 대리 운전을 부르는 딸이 맘에 걸리셨을까. 아빠와 기분 좋게 마신 소주 몇 잔이라 대리비도 아깝지 않았는데. 대리비에 보태라며 주신 만 원짜리 세 장을 지갑에 넣었다.

"이따 만나!"

나는 운전석에서 아빠와 인사를 나누었다.

오피스텔에 와서는 이것저것 분주했다. 콩나물을 다듬는 데만 한 시간이 걸려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나물이나 국을 어떻게 앞으로 끓이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니 준비하고 뭐하고 조금 빠듯할 즈음이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두부집 모임 한 시간 전 즘. 엄마였다. 바쁘실 텐데 웬일이시지 생각하며 전화를 받았다.

"엄마, 왜?"

"아빠가 쓰러졌어. 택시 안에서. 지금 병원에 계시대."

엄마의 목소리는 하울링이 되어 내 오피스텔 속속들이 퍼졌다. 나는 가뜩이나 어지러웠다가 잠시 현기증이 찾아왔다. 콩나물이 쌓여있던 스텐 통을 놓치면서 순식간에 부엌 바닥이 지저분해졌다. 널브러져 있는 콩나물을 단 한 개도 집을 수가 없었다. 꿈같아서 잠시 차분해져 보려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엄마의 전화와 이 모든 것은 현실이었다. 끓고 있던 물에 가스불을 껐다. 콩나물을 한쪽으로 대충 미루어 두었다. 다녀와서 치우면 될 것 같아서였다. 아까 입고 나갔던 겉옷을 걸치고 아빠가 넣어준 삼만 원이 든 지갑을 가지고 무작정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밖은 야경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웠다. 가족들이 늦은 일요일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였다. 세상은 한가롭고 평화로웠다. 병원으로 향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아서 밖을 한참 바라보았다. 예비신랑에게 병원을 알려주고, 오래된 동화작가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혼자서는 너무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 불쑥 떠오른 사람. 언니는 나를 인생의 연륜으로 단단히 안아주고, 덤덤하게 위로를 해 주었다. 조금은 차분해진 마음으로 병원으로 향했다. 입구에서부터 다리가 너무 떨려왔지만 낮에 내 앞에서 삼만 원을 웃으며 건네주던 아빠의 모습은 나에게 확신을 주었다. 별 거 아닐 거라고. 그러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응급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도.

"아빠!"

침대에 누워서 반쯤 눈을 뜨고 계신 아빠를 본 순간, 이미 풀려버린 초점과 넋 나간 표정과 나를 보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차가운 표정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 기대와 바람은 모두 헛된 것이라는 것을 직감으로 느꼈다.

"엄마. 아빠 왜 이래?"

"못 알아보셔. 말도 못 하시고. 움직이지도 못하신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야? 갑자기 왜? 나랑 육개장도 먹었단 말이야!"

"사우나 다녀오시고 택시 안에서 이렇게 되셨대."

아빠의 병명은 뇌경색이었다. 너무 정도가 세게 와서 인지와 운동, 언어가 모두 마비된 상태라고 했다. 이럴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다 못 알아보아도 그렇게 사랑하던 둘째 딸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아빠와 눈을 마주치고, 말을 걸어도 아빠는 무표정, 다른 사람처럼 누워있을 뿐이었다.

우리는 결정을 해야 했다. 결혼 후 뉴욕으로 가 살고 있는 큰 언니와 밤새도록 통화를 나누었다. 어디로든 병원을 정해서 옮겨야 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마음이 아프다고 울적해할 틈도 없었다. 현실은 차갑고 냉정했다. 아빠의 수술을 감행할 경우, 생명은 보장할 수 없다는 병원 측의 말을 들었을 때, 엄마는 한사코 수술은 안된다고 하셨다. 병원으로 아빠 소식을 들은 친척들, 친구들이 찾아왔다. 모임에서 만났을 친척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엄마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딸들의 도리인 것 같았다. 엄마는 아빠가 나으시면 재활을 위한 한방치료와 양방치료를 모두 할 수 있는 곳으로 정하기를 원했다. 아침이 될 동안, 우리는 중환자 보호자실로 자리를 옮겼다. 차가운 방바닥에 널려있던 이불들, 아무렇게나 깔려있는 매트들. 쪽잠을 청하고 있는 몇 명의 사람들. 그 안에 우리는 어설프게 끼어들었다. 이제는 갑자기 중환자 보호자가 되었기 때문에.

답답하고 어두운 보호자실에 있는 동안 이상하게 속이 울렁거렸다. 앉아도 보고 누워도 보았지만 어쩌지 못하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나를 덮쳤다. 멍하니 어딘 가를 보고 있던 아빠의 초점 잃은 눈동자가 자꾸 떠올랐다. 나를 또렷이 바라보며 소탈하게 소주잔을 부딪히던 아빠는 이제 세상에 다시없을까 봐 무서웠다. 아빠는 병원을 옮기고 본격적으로 치료를 시작했지만 딱히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엄마와 교대로, 동생과 또 번갈아 가며 아빠에게 매달렸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 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안타까워도 하고, 넋 나간 사람처럼 구는 나를 보며 속상해하기도 했다.


'내가 지금 결혼을 할 때는 아니야.'

나는 매일매일을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너무나 지쳐있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나 아빠 일어날 때까지 결혼 안 할래요. 아빠랑 손 잡고 들어갈 거야."

엄마는 나를 지그시 바라보다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아빠는 엄마가 돌볼게. 너는 너대로 자리를 잡는 게 엄마도, 아빠도 바라는 거야."

아빠에게 달려가서 다시 묻고 싶었다. 아빠 옆에 있으면 안 되냐고. 난 이렇게 아빠를 두고는 결혼할 수가 없다고. 내 손 잡아주기로 하지 않았냐고. 연습도 정말 많이 해놓고 왜 누워만 있냐고. 이러는 법이 어디 있냐고.

누워있는 아빠에게 수도 없이 외쳤다. 하지만 침묵만이 허공에 돌뿐이었다. 그렇게 끔찍한 하루는 끝이 났다. 유난히 초겨울 바람이 쓸쓸하게 불던 날, 이별이 시작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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