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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흑곰 Mar 01. 2019

원래 그렇다뇨?

이유도 모르는 원래

원래 [元來/原來] : 사물이 전해져 내려오는 내력의 맨 처음부터



왜곡된 '원래'의 모습


2010년에 직장을 옮겼다. 연혁이 짧은 기업에 속했지만 그 성장세가 무서워 다양한 분야의 다양한 인재들이 단기간에 채용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경력을 보유한 분들과 함께 일하게 되었다. 배울 것이 많거나 회사의 일을 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되려 분열과 대립의 관계로 인한 부서 간의 갈등과 골이 깊어지는 양상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 있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내뱉는 단어는 바로 '원래'와 '당연히'였다.

개인적으로 그 말이 참 듣기 거북했다. 그들의 주장은 기존의 회사에서는 통했을지 모르겠으나 여긴 그곳과 같지 않다.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서로 변화를 인지하고 가장 좋은 방법을 찾자고 모인 곳에서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이 제일 훌륭하고 맞으니 내 말을 따르라는 식의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마치 본인들이 주장하는 것이 불변의 법칙인 듯 말이다. 의견의 간극은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그들과의 관계적인 간격 또한 쉽사리 좁혀지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가 세워둔 울타리의 높이를 조절하지는 않은 채, 자꾸만 타인들을 그들의 울타리 안으로만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유 없는 원래'가 초래했던 모습


사실 내 스스로도 그들을 탓할 자격은 없다. 내가 '원래'라는 단어를 이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이기 전까지, 나 또한 그들과 매 한 가지의 사람이었을 테니 말이다. 근본도 모른 채 아는'척', 해본'척', 먹어본'척', 다녀본'척'으로 스스로를 포장하며  나도 모르게 그 단어를 남발하고 다녔을 테니 말이다. 

 


'원래'의 재정의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람들이 '원래' 그렇다고 여기는 일반적인 생각이나 행동들에 대해서 이유를 알고 싶어 졌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입장이 다를 텐데 세상은 그런 것은 무시한 채 이래야 해, 저래야 해라는 강요와 압박을 주었기 때문이다. 내 사정도 모르는 이들이 내뱉는 주장과 생각의 이유를 모른 채 무작정 따르고 싶지 않아서였다. 과연 그것이 옳거나 혹은 합리적인 것일까에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확인한 바로는 사람들이 으레 말하는 일반적인 '원래'에는 항상 이유가 빠져 있었다. 


원래 남자가(여자가) 어쩌고 저쩌고.

원래 니 나이에는 어쩌고 저쩌고.

원래 그 일은 어쩌고 저쩌고.

원래 우리 부서는 어쩌고 저쩌고.

등등의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합리적이고 그럴싸한 이유를 들어본 적이 몇 번이나 되는가?


정리해 보자면 '원래'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정작 알지 못하는 것은 '이유'이다. 

상대를 설득하거나 이해를 시키려면 이유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통념과 관습과 문화에 의해 자연스럽게 갖게 된 생각들을 마치 '이유'인 양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남들도 다 그렇다.'는 불분명한 이유를 갖다 붙여 '남들처럼 하고 싶지 않은'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있다.

그래서 나에게 '원래'는 사전적 의미와 달리 이런 느낌이다.


이유가 불분명하고 합리적이지 않은 강요 



내 경험상 (아마도 많은 사람들의 경험상) '원래'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들은 보통 계급 피라미드의 상위 그룹에 속해있거나, 관계적 우위에 있거나, 연장자에 속한다. (꼭 나이가 든 사람들만을 칭하는 것이 아니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자면, 고인물 또는 꼰대라는 단어가 어울릴 것이다.  


(이런 모습만이 꼰대의 이미지는 아니다. 출처:구글)




삶, 빼기 이유 없는 원래


우리는 언젠가 그 위치에 서게 되거나 이미 서있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이유 없는 원래'의 압박을 견디며 살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자신도 모르게 '이유 없는 원래'로 누군가에게 압박을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이 단어를 내 삶에서 빼버렸다. 대신에 보통, 대개와 같은 보다 완곡한 뉘앙스의 단어로 바꾸어 쓰려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오래전부터 그래 왔으니 당신도 그래야 해.'와 같이 강요하고 압박하는 느낌과 달리 '이런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있으니 너도 참고해.'와 같이 선택권과 기회를 제공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우리 삶은 다양하다. 생각도 다양하다. 

존중받을 필요가 있는 타인의 가치관과 결정권을 허락 없이 침범하기 않기 위해서 입으로 나오는 '원래'뿐만 아니라, 머릿속에 더하기 부호가 붙어 있는 '이유 없는 원래'도 빼기 부호로 바꿔보아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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