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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흑곰 Feb 24. 2019

오른손은 거들 뿐.

My Own Way

농구


중학생 시절 한창 농구 붐이 일었다. 당시 농구를 소재로 한 드라마가 대한민국을 흔들어 놓은 것이 컸다.

원래 운동을 좋아하던 나였기에 그 붐은 내 삶에 하나의 활력소였다. 나름 실력도 있어 클럽에도 잠시 몸담았었다. 그 와중에 다른 학교들과 시합의 기회도 있었다. 여러 시합에서 많은 팀들과 겨뤘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선수 하나가 있다.


(남자들을 코트로 줄소환 한 그 드라마.  출처: 구글)


왼손잡이


그 친구는 흔히 볼 수 없는 왼손잡이였다.

체격도 좋고 키도 컸으며 워낙에 실력이 출중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기에 충분했다. 20년도 넘은 일이지만 그 선수의 아름답기까지 했던 부드러운 몸놀림과 탱크같이 저돌적인 모습들은 농구를 위해 태어난 사람 같았다. 코트를 비추는 스포트라이트는 없었지만 그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야말로 엄청난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훌륭한 선수가 될 재목이라 추켜세웠다. 그가 속한 팀과의 시합에서 우리는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그 친구의 영향이 컸다. 대단하다는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친구였다. 시합이 끝나고 상대팀 감독의 얘기를 듣고 나는 더 크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오른손은 거들뿐


원래 그 선수는 오른손잡이였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체격과 신체 조건으로 남들의 눈에 띄어 농구 선수가 되기를 추천받았다. 그렇게 선수의 길을 걸어가게 된 친구였다. 지금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그 친구는 불운하게도 사고로 오른팔을 크게 다쳤다. 재활을 했지만 쉽사리 기존과 같은 기량을 발휘할 수 없었다. 아쉽지만 코치와 감독은 그에게 선수로서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권유했다. 더 늦기 전에 다른 진로를 찾으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아쉽게 좋은 재목을 놓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다시 코트에 돌아왔을 때 그는 왼손잡이가 되어 있었다. 그의 오른손은 왼손을 거들고 있었다. 그는 마치 원래 왼손잡이 선수였던 것처럼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코트를 누볐고, 그래선지 그를 던 사람들은 더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학교 대항전에서 탈락하기도 했고 다음에 선수로 선발되지 못했던 터라 아쉽게도 나는 그 친구를 다시 볼 기회는 없었다. 그렇게 그 친구는 내게 짧지만 강력한 임팩트를 주고 기억에서 멀어져 갔다.


(이 주인공을 보았던 느낌이었달까.     출처:구글)


또 한 번의 기회, 하지만...


대학시절 운동에 한 번 더 미쳐있었다. 공부는 뒷전인 채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다들 높은 취업 장벽을 뚫으려 책과 씨름하는 동안, 나는 4학년이 되어서도 운동에 미쳐 살았다. 다른 사람들은 아마도 나를 제정신이 아닌 사람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어떻게 되겠지. 나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한데.'라는 생각에 도무지 책상 앞에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런 와중에 예상치 못하게 한 기업에서 제안이 왔다. 자기네 회사하청 업체로 취직을 시켜 주겠으니 같이 운동을 하잔다. 며칠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며 고민에 휩싸였다. 보다 안정적인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에 지원하느냐, 아니면 당장은 불안하지만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대신 계속해서 운동을 해 나가느냐의 기로에 섰다.

현실 감각이 전혀 없던 나는 어떤 선택이 가장 좋을 것인지에 대해 결정할 수 없어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나는 그 조언을 받아들이고는 당분간 운동장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당분간은 10년도 넘게 계속되고 있다.


선배들을 전혀 원망하지는 않지만 그런 생각은 해 본다. 그때 내가 어쩔 수 없는 현실적인 선택보다 내 행복을 더 크게 갈망했더라면, 어차피 미래는 불투명한데  막연한 두려움보다는 내 행복을 우선시 여겼더라면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중학생 시절 만났던 그 선수처럼 다른 사람이 말하는 삶이 아닌 나만의 길을 가며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

어쩌면 나는 사람들이 말하는 '부정적 현실' 앞에 너무 쉽게 굴복해 버렸던 것은 아닐까? 내 앞에 던져진 '기회'라는 상자를 열어 보지도 않고 너무 쉽게 위험한 것이라 단정 짓고 외면해 버린 것은 아닐까?






삶, 더하기 My Own Way


유독 그 친구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부모님의 설득과 회유에 너무나도 쉽게 꿈을 접어버린 나와 달리, 자신의 꿈을 향해 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지금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단단한 내면을 가진, 포기를 모르는 삶을 살고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그는 '포기'라는 단어를 아예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가 끝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그저 하나의 과정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핑계와 포기와 부정적인 현실 앞에 굴복하거나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꿈을 향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을 그의 일화를 너무나도 쉽게 잊으며 살아왔다. 그 시절 그가 남긴 교훈을 잘 새겼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정작 삶에 더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쉽게 빼기 부호를 붙여 버린 채 엉뚱한 더하기에 눈이 멀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도 모두가 말하는 Way 가 아닌 My Own Way를 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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