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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흑곰 Mar 02. 2019

나를 싫어했던 그 사람

관계의 가지치기


가지치기


나무는 가지치기를 해 주어야 잘 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불필요한 잔가지들이 이리저리 자라나면서 정작 자라야 할 소중한 열매들이 영양분을 엉뚱한 데 뺏겨 제대로 영글지 못한다. 그래서 농부들은 될성부르지 않은 가지들을 과감히 잘라낸다. 잠시 보기 흉해도, 아파 보여도 괘념치 않는다. 정말 자라나야 할 가지들을 지키기 위해서다. 




내 영양분을 빼앗아간 잔가지


대학시절 나와 오랜 시간 같이 지내던 선배들을 통해서 알게 된 그는 나를 정신적으로 몹시 괴롭게 했었다. 그는 그 당시의 나로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기준을 들이대며 "그래서 넌 우리와 함께 할 자격이 부족해."라는 불분명한 경계를 긋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선배들과 격 없이 지냈다. 나는 전에 없던 소외감과 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그와의 관계 개선에 쏟아부었다. 그다지 사람을 편하게 대하는 성격도 아니었고, 당최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었지만 어떻게든 내 진심을 알리고 그와의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그로 인해 내가 가졌던 기존의 관계를 망치거나 멀어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더 크게 웃으며 인사하고, 친근하게 대하고, 어떻게든 술자리를 만들고 비위도 맞추었다. 하지만 나의 그런 노력에도 그는 나를 계속해서 경계선 밖으로 밀어내었다. 무언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앞에선 웃고 있었지만 사실 나는 그로 인해 무척이나 힘들었다. 


그는 끝내 내게 마음의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사회로 진출했고 나도 취직과 결혼 후에는 그와 만난 적이 없다. 

그렇게 그는 내 머릿속에서 점점 잊히고, 상처 난 내 마음도 서서히 아물어 갔다. 


이제와 생각하면 그는 내 인생에서 미리 쳐내었어야 하는 잔가지에 불과했다. 내 정상적인 관계의 가지에서 스멀스멀 자라나 영양분을 빼앗아 나를 힘들게 했던, 그런 잔가지에 불과했다. 내 마음이 상처 받지 않고 올곧게 자랄 수 있는 영양분을 굳이 그에게 나누지 않았어도 되었다. 그만큼 아파했으면 적당한 시점에 매몰차게 정리했어야 한다. 사실 기억나지 않지만 내가 자라오며 나를 거쳐갔던 많은 사람들 중에도 그저 잔가지에 불과했던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았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은 다 아물어버린 상처 때문에 너무나도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했을 것이다. 진작에 관계의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나는 적당히 영양가 있는 관계의 가지를 유지하면서 덜 상처 받고 살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불필요한 가지에게서 받은 상처의 결과물.  출처: 구글)




삶, 더하기 관계의 가지치기


맞다. 나는 잘 드는 전지가위를 진작에 마련해서 관계의 가지를 과감히 쳐내었어야 했다. 세상의 주인공인 내 자신이 양분을 먹고 잘 자라나도록 내 스스로를 먼저 지켰어야 했다. 나를 지탱해주는 든든한 가지들이 열매를 잘 맺도록 그들도 지켰어야 했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이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지?'가 아닌, '이만큼 했으면 이 사람은 아니구나.'라는 생각으로 과감히 가위질을 했어야 한다. 


그래서 권하고 싶다. 우리 주위에 더 이상 더하기가 아닌 과감한 빼기 부호를 붙여놓고 전지가위를 데어야 하는 가지가 있지는 않은지 잘 생각해보라고. 자신의 양분을 몰래 빨아먹는 불필요한 잔가지 때문에 자신을 망치지 말라고. 빼기 부호를 억지로 더하기 부호로 만드는 노력 대신에, 평생을 같이 할 가지들에게 정성을 쏟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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