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의 이정표에 얽매이지 않기
"무엇이 고민이세요?"
"저는 22살인데 아직 꿈이 없거든요. 주위에서 하도 꿈이 없는 게 걱정거리라고 말해서 고민이에요. 막상 저는 괜찮은데 말이죠."
"맞습니다. 그 나이에 꿈이 없다는 게 뭐 잘못된 건가요? 없을 수도 있죠. 꿈은 찾아가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정확한 멘트까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한 유명인이 진행하는 TV 프로그램에서 접했던 대화이다.
20대 초반의 방청객은 주위 사람들의 머릿속에 전제되어 있는 '특정 나이가 되어도 꿈이 없으면 이상하다. 그래서 너는 꿈이 없는데 그것이 고민이겠다.'라는 고민을 던졌고, 사회자는 그에 대한 편견을 깨 주는 아름다운 대답을 날렸고, 박수를 받았다.
사실 나이에 대한 편견은 이 대화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나이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은 으레 특정 나이가 되면 무언가를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다수가 그렇게 세뇌당해왔고, 지금도 다수가 누군가를 세뇌하고 있다.
"그 나이 먹도록 뭐했어."
"이제 나이도 찼는데 결혼해야지?"
"그 정도 나이 되었으니 이제 슬슬 다른 걸 준비해야지?"
"~할 나이는 지났잖아?"
"나잇값 좀 해."
"니 나이에..."
와 같이 일상에서 종종 듣곤 하는 말들로 말이다. 그래서 그 무언가를 하지 못하면 조바심을 갖거나 두려워한다. 대표적인 것이 20세가 되면 대학을 다녀야 하고, 30대 즈음에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세상이 정해놓은 '나이의 이정표'를 따르지 못하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라 여기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 결과,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밀기도 한다.
그 안에서 우리 스스로를 옥죄도록 만드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몇 년 전 누군가 나에게 꿈이 뭐냐는 물음을 가볍게 던진 적이 있는데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이 나이에 그런 게 어딨냐며 웃으면 넘겼지만 내심 '부끄러운 감정'은 남아 있었다. 며칠 고민해 보았지만 나는 꿈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때 나는 내가 '한심하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그렇게 스스로를 괴롭히고 타박해보아도 꿈을 떠올리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 왜 이렇게 살아왔을까 후회도 했더랬다. 그렇게 나 자신을 들들 볶아도 없던 꿈이 갑자기 생길 리 만무할 텐데 나는 쓸데없이 내 감정을 고문하고 있었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나이에 걸맞은 무언가를 갖추고 있어야 해.'라는 편견이 들어앉아 있었다.
그때는 몰랐다. 꿈이란 거, 그거 없어도 괜찮은 거란 걸. 서서히 찾아가도 된다는 걸.
'나이의 이정표'라는 틀에 갇혀 내 감정까지 컴컴한 지하실로 처박아 두지 않아도 된다는 걸.
마흔이 된 나 자신은 아직 덜 성숙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부끄럽다는 뜻이 아니다. 나이를 먹어도 사람은 늘 덜 성숙한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실제로 내 자신이 그렇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성숙함이라는 것이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채워지는 것인가? 성숙해지려 노력해야 성숙해지는 것이고, 스스로가 아닌 주위 사람들이 그렇게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선지 나잇값을 못한다는 말이 과연 성립될 수 있는 말인지가 궁금하다.
그것은 누가 어떤 목적으로 누구를 위해 세워놓은 것이란 말인가?
(기준조차 불분명한) 나이가 차서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이야 어찌 되었든 결혼을 하고 싶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디까지가 적당 인지도 모르지만) 적당한 나이가 되었으니 꿈을 가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꾸다 보면 보이는 것이 꿈 아닌가? 20세를 넘겼으니 대학을 '꼭' 가야 하는 것이 아닌 60세가 되어서도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하며 그것이 부끄러운 것으로 여겨지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넌 아직 어려서 잘 몰라."
"넌 그것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아."
"니 나이에 어울리지 않아."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무슨 이유로 그렇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
왜 나이라는 것으로 할 수 있음과 없음을 구분지어야 하는가?
무작정 그것이 정답인 양 따라야 하고, 따르지 않으면 잘못되었다는 인식은 구 시대적인 발상이다.
나이의 이정표 따위는 애당초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관습과 현실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는 나머지 별다른 의심 없이 그런 생각을 수용했고, 같은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과연 누구를 위해서 그 이정표를 따라야 하는가? 나 자신을 위해서? 아니면 이정표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 어쩌면 우리는 세상이 정해 놓은, 사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나이의 이정표'를 억지로 찾으라 하고, 찾으려 하는 것은 아닐까?
삶은 자신의 것이다. 누구도 그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 그리고 요구를 따라야 할 책임도 없다.
나이의 이정표는 더 이상 더하기 부호가 아닌 빼기 부호가 붙어야 마땅한 것이다.
사람들과 같고 다르고를 말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각자의 소중한 이정표를 짊어지고 각자의 길을 걸어가자.
그것이 진정한 우리 모두의 삶의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