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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흑곰 Feb 19. 2019

나는 왜 스펙을 쌓은걸까?

목적 없는 스펙의 노예가 되지 않기

목적 없는 도전, 그리고...


운이 좋지 않았을까? 대입시험에서 썩 좋은 성적을 받지 못했다. 게다가 복수 지원이 가능했던 시절임에도 불구하고 가정 형편상 원서는 국립대학 두 곳에만 쓸 수 있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졸지에 나는 인생의 길 위에 갑자기 나타난 커다란 바위를 마주해야 했다. 뒤돌아갈 곳도, 앞으로 나갈 곳도 없었다. 12년 동안 상위권의 성적과 착실한 생활로 모범생이었던 내게 찾아온 첫 번째 시련이었다.


부모님은 군대에 다녀오길 원하셨다. 하지만 나는 기를 쓰고 재수를 택했다. 대학은 누구나 당연히 가야 하는 곳이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군대를 가기에는 그동안의 내 성적과 노력이 이대로 묻히기에 억울하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사실, 나는 할 수 있는 것이 공부 말고는 없었다. 12년 동안의 학교 생활이 내게 준 아름다운 결과물이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하는 생각은 무작정 남들이 다 가는 대학을 나도 가야 한다는 것과 대학 진학을 위해 쌓아 놓은 것들을 아깝다고 여기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생각이 내 자존심만 쓸데없이 키운 나머지 다른 시야를 갖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만들었다. 차라리 내가 '공부 좀 는' 기계 혹은 잠재력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지 않았더라면, 또 아예 학업에 소질이 없었더라면 나는 분명히 다른 길을 택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feat. 야구선수)


어찌 되었든 주위의 친구들과 달리 한 번의 도전을 더 해서야 나는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결과는 어떻게든 얻었지만 사실 나는 그 대학을, 그 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우습게도 그건 돈 때문이었다. 내가 대학을 가야 하는 목적도, 목표도 특별히 분명하지 않았지만 내 성적으로 어떤 대학의 어떤과를 지원해야 장학금을 받는지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내가 높은 연봉을 받는 곳으로 취직할 수 있느냐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내 진로가, 내 꿈이 그 선택에는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목적이 되어야 했을까?, 출처: 구글)


늪, 그리고...


빨리 졸업하고 싶었다.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스펙을 쌓아서 높은 몸값을 치러주는 곳에 하루빨리 취직하고 싶었다. 그런데 갖추어야 할 것이 많았다. 좋은 학점은 기본이고, 좋은 영어성적도 갖추어야 했다. 봉사 활동도 해야 했다. 딱히 관심 없던 일본어도 공부해야 했다. 그런 것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또 다른 무언가를 계속해서 갖추어나가야 했다. 시간은 부족해지고, 요구 조건은 다양해졌다. 싫었지만 그래야 취직을 할 수 있다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사회가 나를 비롯한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주는 이유 없는 압박이었지만 그다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고, 자연스레 스스로를 그 안으로 밀어 넣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졸업 전에 지인의 소개로 지원하게 된 회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하지만  만족감은 그다지 오래가지 않았다. 우연히 접하게 된 현장직 근로자들의 급여 정보에 나는 엄청난 좌절감과 허탈함, 괴리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애써 '그들은 그들만의 괴로움이 있을 거야.' 라며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그건 그냥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내 발버둥에 불과했다.


나는 그때, 스펙의 힘이 그다지 위대하지 않은 시대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얼른 받아들여야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더라면 지금과 달리 후회 없는 10여 년을 보냈거나, 힘들었겠지만 지금 더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소중한 과정을 거쳤을지 모른다. 하지만 나를 묶어둔 것은 힘들게 얻은 기회가 저 멀리 달아날까 봐 원치 않는 현실 앞에서 과감하게 탈출하지 못하는 두려움이었다.


불평은 계속되었지만, 애써 외면하려 합리화시켰고 어떻게든 몸값을 부풀려 다른 곳으로 떠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것이 족쇄를 푸는 방법이라 크게 착각하고 있었다. 직장생활은 당연히 그렇다는 전제를 두고 그 안에 나 자신을 가둘 생각밖에 하지 못했다. 대학 졸업장과 갖가지 스펙이 선물해 준 취직이라는 결과물이 나를 영원히 속박시키는 족쇄인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한 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이유는 당연히 돈이었다.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믿었다. 몇 년 동안 나름 만족하며 삶을 꾸려왔다.  여기까지는 감사할 일이다. 졸업장이 내 통장에 돈을 채워주었고 빚도 갚게 만들어주고 아이도 키울 수 있게 해 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만큼 나를 더 튼튼한 족쇄로 묶어두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안정적인 삶을 살며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다. 갑자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앞이 깜깜했다. 나 자신을 벼랑 위에 세워 보았다. 떨어지지 않으려면, 만약에 떨어진다면 어떻게 이 상황을 타계해야 할까라는 자문에 아무런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변화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나는 오로지 회사에만 전적으로 내 삶을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원치 않는 일을 원치 않는 방법으로 해야 하고, 원치 않는 능력을 갖추기를 강요받았다. 스펙을 갖추기 위해 들였던 노력은 그저 내가 살아온 하나의 이정표에 불과했으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곳을 떠날까 수없이 고민했다. 다른 어떤 누구도 내게 힌트 같은 것을 주지 못한다는 가슴 아픈 깨달음도 얻었다. 오로지 내 인생이고 내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함을 절실히 깨달았다. 남들과 다른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되도록 이곳을 빨리 떠나야겠다는 믿음이었다.


뚜렷한 목적 없이 남들처럼 쌓아 올린 스펙은 내게 10년 정도의 약효를 유지해 주었지만 남은 인생을 살아갈 방도까지 제시해 주는 마법의 주머니는 아니었다. 마흔이 되어서야 그것을 깨달았다. 늦었다고 생각지 않는다. 인생에 그런 것은 없다고 믿는다. 그것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실천에 옮겨야겠다는, 인생의 빼기에서 비롯된 새로운 더하기를 찾아야겠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변화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삶, 빼기 목적 없는 스펙


그래서 나는 이런 물음을 던져보고 싶다.

우리는 왜 무작정 대학에 가려하는가? 왜 그것이 당연한 듯 등 떠밀려야 하는가?

왜 그것이 불문율이 되어야 하는가? 그것이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방법인가?

혹시 갖가지 '스펙'이라는 더하기가 우리에게 주는 것보다 앗아가는 것이 더 많지는 않은가?

그것이 과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아이 세대들에게 반드시 인생의 더하기로 인식되어야 하는가?


무분별하게 더하기 부호가 붙어 있는 갖가지 '목적 없는 스펙'은, 어쩌면 아주 당연하게 인생의 빼기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당연히 스스로의 자율적인 삶을 사는 과정에서 '필수가 아닌 선택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네 인생이 조금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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