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써니진 Oct 29. 2020

대코로나시대의 하루 5

질투심은 떠나간 입맛도 돌아오게 한다!


<엄마 길들이기 방법 - by 수현, 도현>


1) 밥을 안 먹는다. 

엄마는 좀 당황하겠지만 쿨하게 넘어간다. 그래, 어른도 밥을 거르는데 먹기 싫을 수도 있지. 


2) 계속 안 먹는다. 

엄마는 걱정을 시작한다. 왜 안 먹지? 어디 아픈가? 체온을 잰다. 뱃소리를 들어본다. 똥을 점검한다. 


3) 또 게속 안 먹는다. 

하루가 지나면 엄마는 으름장을 놓는다. 

이제 밥 안 먹으면 간식 하나도 안 줄 거야! 너희 식습관을 잡아야겠어! 

시간 되어야 맘마 줄 거야! 버럭버럭 


4) 그래도 계속 안 먹는다. 

이틀이 지나면 엄마는 어쩔줄 모른다. 요리책을 뒤진다. 새로운 메뉴를 해준다. 

계속 안 먹으면 병원에 데리고 가서 주사꼬를 할 거라고 협박한다. 


5) 계속 계속 안 먹는다. 

삼일이 지나면 엄마는 병원에 데려간다. 의사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엄마는 링겔을 맞힐지도 모른다. 좀 아프지만 버틴다. 

엄마는 약국에서 맛있는 까까를 사준다. 그건 먹는다. 

맛있는 영양제도 사준다. 그것도 먹어준다. 

이제 엄마는 음식을 들고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계속 못 들은 척 한다. 사정한다. 그래도 안 먹는다. 

엄마는 하루종일 식탁에 음식을 펼쳐놓고 아무때나 먹으라고 한다. 가끔씩 먹어준다. 

엄마는 탈수를 걱정한다. 마트에서 달콤한 요구르트를 잔뜩 사온다. 그건 먹어준다. 


6) 그렇게 이주일쯤 버틴다. 

엄마는 지쳤다. 끼니 때가 되면 얼굴에 근심걱정이 내려앉는게 보인다. 불쌍하다. 

슬쩍 입을 벌려준다. 엄마 얼굴에 화색이 돈다. 

한 입 먹자 엄마가 나를 들고 춤을 춘다. 또 한 입 먹으니까 업고 춤을 춘다. 

한그릇을 먹으니까 달라는 걸 다 준다. 사과도 바나나도 요구르트도 치즈도 전부 내거다. 

밥을 먹고 똥을 싸자 똥냄새가 좋다고 기특하다고 폭풍 칭찬을 한다. 


이제 엄마는 내가 원하는 건 뭐든 해 준다. 밥만 먹으면 된다. 

나는 단지 밥시간에 입을 벌리는 것만으로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럽고 똥냄새도 좋은 아기가 된다. 

<엄마 조련 끝>



어떤 아기는 밥을 잘 먹고 어떤 기는 안 먹습니다. 

똑같은 아기라도 어떤 떄는 잘 먹고 어떤 떄는 안 먹습니다. 

안 먹을 때는, 아무리 맛있는 걸 줘도 안 먹고 잘 먹을 때는 맨밥만 줘도 잘 먹습니다. 

왜 이 차이가 갈릴까, 답은 없습니다. 다만 크면 입짧은 아이도 대부분 나아진다고는 합니다. 


제 경우 큰놈, 현욱이는 밥을 잘 먹었습니다. 한번도 못 먹어서 속 썩인 적이 없네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효자네요... 

수현이도 두돌 전엔 아주 잘 먹었습니다. 오히려 도현이가 입이 짧아 걱정이었지요. 

둘이 같이 걸어가면 연년생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수현이가 형이라고) 

2돌 전까지 먹은 것의 차이로 키 차이가 꽤 생겼거든요. 


그런데 최근에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식욕이 역전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도현이가 잘 먹게 된 건 아니고요, 

갑자기 수현이가 단식 투쟁이라도 하듯 안 먹게 되었습니다.


이럴 떄도 있고 저럴 때도 있으니 한끼 안 먹은 걸로 너무 발 동동 구르지 말고 

쿨하게 지켜보라고들 하지요. 그게 답인 걸 압니다. 하지만, 

안 먹는 게 한 끼 두 끼가 아니라 하루 이틀, 일주 이주가 되면 쿨해지기 힘듭니다. 

크면 어차피 다 나아진다고는 하나, 

일단 아이가 너무 심하게 안 먹으면 몸무게가 줄어듭니다. 들었을 때 무게가 다르고요,

실제로 체중도 줄어듭니다. 키성장도 멈추고요. 

안 먹는게 심하면 탈수 증상이 옵니다. 강제로 먹일 수 없으니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안 먹으니 컨디션이 안 좋아 하루종일 찡찡대는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무엇보다 면역력이 떨어져서 쉽게 아프고 쉽게 감염되게 됩니다.

도현이의 경우 예방접종을 매번 충실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폐구균으로 입원했습니다. 

의사 말로는 여름이라 면역력이 떨어져서 그렇다는데... 여름이라도 잘 먹으면 그 정도가 되진 않았겠죠. 

안 먹으면 건강이 상합니다.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수현이는 최근 한달 정도는 너무 심하게 안 먹어서

매일 끼니가 다가올 때마다 마음에 돌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는데, 

제일 안 먹던 일주일 가량의 구간동안은 달콤한 음식 - 아이스크림이나 요구르트까지 거부했습니다. 

하루 종일 먹은 것은 우유 세모금 정도... 네 세잔이 아니라 세모금이었습니다. 

너무 안 먹어서 우유라도 마시라고 잔뜩 주면 한모금 마시고 거부하고... 이런 식이었죠. 

그 때는 얘가 왜 단 것까지 안 먹지? 미각이 이상한가? 혹시 코로나인가? 의심해서 

선별진료소로 가는 걸 진지하게 고민했었는데, 

다행히 밥 잘 먹으라고 잔뜩 사먹인 영양제가 효과가 있었는지 (잘크톤과 아연을 먹였습니다) 

요즘은 좀 나아졌습니다. 


왜 갑자기 안 먹게 되었을까요? 엄마는 여러가지로 원인을 생각해봅니다. 

밥이 입맛에 안 맞아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 것도, 고기도 안 먹을 때도 있습니다. 

기가 허해서? 몸의 온도가 떨어져서? 계절변화에 적응을 못해서? 열기 또는 한기에 약한 체질이어서?

비위가 약해서? 알레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그럴 수 있습니다. 

저도 어릴 때 각종 원인으로 속이 뒤집히거나 식욕이 떨어졌습니다. 

제 기질을 이어받았다면 정신적 스트레스가 식욕에 바로 반영될 수도 있겠지요. 


한약을 먹여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약재들이 아이들에 부작용이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없습니다. 

제 체질이 그렇거든요. 홍삼이 면역력에 좋다지만, 저는 홍삼만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그냥 체질이 그래요. 홍삼 뿐만 아니라 인삼, 산삼도 먹기만 하면 속이 뒤집혀요. 

예전, 몸이 약하다고 엄마가 어디서 구해온 귀한 산삼을 한입 씹어먹었다가 다 토하고 며칠을 아무것도

못 먹고 앓은 적도 있어요. 

현욱이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상 감기를 앓아도 면역력에 그렇게 좋다는 홍삼을 못 먹고 있죠. 


그래서 결국 답은... 없습니다. 

다행히 형제간 경쟁심으로 인해 한놈이 잘 먹으면 다른 놈도 한입 두입이라도 받아먹는 정도가 

쌍둥이를 키울 때의 위안이랄까요. 그것도 효과가 크진 않지만...


먹이는 것. 

그저 열심히 맛있게 요리해서 바치면 되는 걸로 생각했었죠. 

키워보기 전에는. 

이게 제일 힘듭니다. 진짜. 

이게 제일. 


안 되는 걸 되게 하라는 말, 정말 싫어하는데 

육아는 안 되는 걸 되게 해야만 합니다. 어떻게든. 

안 먹겠다는 아이를 어떻게 강제로 먹이냐 싶지만, 

그래도 먹여야 되니까요. 어떻게든.

아이는 내가 아니니까 아이를 내 마음대로 움직이게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방치할 수만은 없습니다. 

어떻게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이끌어야 되죠. 어떻게든. 

그래서 스트레스가 큽니다.

답도 없고 끝도 안 보이는 길.

그러나 어떻게든 가야만 하는 길.

안 되는 걸 되게 해야만 하는 길.


그런고로 아기님들. 

오늘은 제발 잘 먹어줍시다.

엄마 사랑하죠? 응? 제발??

매거진의 이전글 대코로나시대의 하루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