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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Aug 13. 2024

순복 언니

이별, 아름다운 임종

하얀 겨울에 새빨갛게 피어나 화려함을 뽐내다가 꽃송이째 뚝 떨어져 버리는 동백은 장렬하게 싸우다가 목숨을 바치는 전사를 닮았다.

순복 언니는 고부 사이가 너무 좋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합이 그렇게 맞을 수가 없었다. 둥글둥글하고 넉넉한 모습도 시어머니와 닮았고, 말없이 위아래 챙기면서 품어주는 성품 또한 시어머니와 닮았다.


처녀 적부터 눈여겨보던 시어머니는 애쓰고 애써서 순복 언니를 맏며느리로 맞아들였다. 시집오면서부터 순복 언니는 보험회사에 다니면서 넉넉하지 못한 살림을 도왔다. 타고난 성실함과 어김없는 신용으로 많은 고객을 확보하여 능력을 인정받았다. 아들, 딸 남매를 낳아 열심히 키웠고 남편에게도 깍듯하였다.


시어머니는 없는 집안에 들어와서 고생하는 며느리가 미안하여 손자를 키우며 살림을 열심히 도왔다. 순복 언니는 아무리 힘든 상황이라도 시어머니와 함께라면 괜찮을 정도로 시어머니를 믿고 의지하였다.


간간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야단칠 때가 있었다. 퍼주기만 하는 며느리가 안쓰러워 너 먹을 것 먼저 챙기라고, 대소 간 돌보는 것도 너 먼저 살고 난 다음에 하는 것이라고 할 때였다. 순복 언니는 시어머니에게 야단을 들을 만큼 시댁의 형제들을 돌보며 우애 있게 살았다.


순복 언니는 결혼 전 시어머니를 알면서부터 시어머니가 나가던 교회를 출석하기 시작하였다. 결혼하여 시어머니와 나란히 교회에 앉아 있으면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며느리 칭찬을 하면서 부러워하였다. 시어머니는 그 칭찬으로 배불렀고 신이 나서 며느리를 더욱 앞세워 다녔다.

그렇지만 세월은 야속하였다. 그렇게 사이좋던 고부도 헤어져야 할 때가 왔다. 연로하신 시어머니가 치매로 요양원으로 옮겨가시게 된 것이다. 순복 언니는 수시로 요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를  찾아 외로운 노후를 위로하였고, 어머니를 대신하여 형제들과의 우애를 돈독하게 해 나갔다.

초겨울로 접어드는 일요일 아침이었다. 순복 언니는 평소처럼 교회에 가기 위해 집 앞에서 교회 버스를 탔다. 옆에 탄 성도와 반갑게 인사하고 안부를 주고받았다. 전날인 토요일에 많은 양의 김장을 하여 대소 간에 나눠주고 났더니 몸이 좀 피곤하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어느 때부턴가 순복 언니의 대꾸가 없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돌아보니 순복 언니가 앉은 채로 절반쯤 쓰러져 있는 게 아닌가. 깜짝 놀란 사람들이 119를 불러 급하게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뇌 수술을 받았다. 그렇지만 순복 언니는 다음 날인 월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57세의 나이였다.


갑작스러운 비보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하였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장성한 아들 딸도, 순복 언니의 든든함에 의지하던 남편도 생각지도 못하게 펼쳐진 상황이 믿기지 않은 듯 울음조차 없었다. 황급하게 모여든 친정의 자매들만 하염없이 울고 또 울고 있었다. 불쌍한 언니라고, 가여운 동생이라고,


모두 부러워하던 순복 언니의 복 많은 시어머니는 며느리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치매였기도 했지만 차마 며느리가 먼저 떠났다는 것을 알릴 수 없었다. 순복 언니는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시어머니에게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황망하게 세상을 떠났다.


사흘 만에 믿기지 않는 장례가 끝나고 세상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놀랍고 안타까웠지만 순복 언니의 갑작스러운 부재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기둥 같던 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세상에서 사라져도 세상은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로 현실 같지 않은 현실이었다.

순복 언니의 선 굵었던  삶을 생각하면 한겨울에 피어나는 동백을 떠올리게 된다. 한겨울에 피었다 한순간에 떨어지는 붉은 동백처럼 장렬하게 전사하였다는 말이 맞을까. 곤한 몸 쉴 곳 찾아 영원한 안식처로 떠났을까. 순복 언니가 이제라도 편안하고 달콤한 휴식을 누리기를 비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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