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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Sep 03. 2024

수정이

가슴 아픈 사람이 있다.  삶도 가슴 아프고 죽음도 가슴 아픈 사람이 있다.  

수정이가 죽었다. 45살의 나이로 결혼도 안 한 처녀로 죽었다. 그의 임종은 조용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수정이는 고단했던 삶을 끝내는데 세상의 어떤 이별의식도 원치 않았는지 모른다. 그저 피곤하고 힘들었던 삶을 멈추고 싶었을지 모른다. 죽어 천국으로 가서야 비로소 안도의 숨을 쉬고 있을지 모른다.

천국은 고통도 없고 질병도 없고 질시도 없고 아픔도 없는 곳일 것이다. 이지러지거나 모나거나 부족한 데가 없이 완전하고 완벽한 곳일 것이다. 모든 사람이 완전체로 처음 빚어진 그대로 노닐 것이다. 그곳에서 수정이는 마음껏 뛰고 노래하고 웃으면서 즐거울 것이다.

수정이는 날 때부터 병약했다. 감기를 달고 살았고 시간이 지나도 몸에 살이 붙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 찾아간 병원에서는 아기가 선천적으로 심장에 구멍이 있다고 했다. 수술할 수 있는 나이를 기다려 어린 나이에 심장 수술을 했다. 그렇지만 수정이는 활기를 되찾지 못했고 항상 골골거렸다. 학교에 들어가서도 잘 적응하지 못했다. 주의력이 산만해서 선생님들의 눈총과 질타를 받았다. 친구들과 그런대로 어울렸지만 평범하게 지내지는 못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학교생활은 어리고 병약한 수정이에게 감당하기 힘든 버거운 날들이었다.

정상적이지 못한 가정환경은 수정이의 정신을 야금야금 무너지게 하였다. 재혼으로 만난 부모님은 두 분 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들이셨으나 재혼 가정이 갖는 어려움을 극복하지는 못했다. 나이 차이가 많은 배다른 오빠들 틈에서 딸 하나인 수정이는 매번 반복되는 가정불화와 오빠들의 거친 언행과 살벌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였다. 밝고 명랑한 아이였지만 점점 말이 없어지고 현실에서 이탈한 부적응자가 되어갔다. 결정적으로 고등학교 때 친구와 가출을 감행한 이후 수정이는 정신과를 드나들며 약을 먹어야 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둘만 남은 수정이는 점점 더 사회와 격리되어 갔다. 한밤중에 거리를 쏘다니다가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기도 하고, 자기를 욕한다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고래고래 싸우기도 하고, 몇 날 며칠을 집에서 움직이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어머니께는 깍듯이 인사하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기도 하는 섬세함이 언뜻언뜻 보여 가슴을 아프게 했다. 곱게 자랐으면 저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미안함이 항상 엄마를 마음 아프게 했다.


코로나가 거의 끝나 갈 무렵, 수정이는 이 주일 정도를 감기로 고생했다. 한사코 가지 않으려는 것을 간신히 달래서 간 병원에서 수정이는 자기의 병이 감기라고 주장하면서 의사의 진료를 거부했다. 겨우 처방받아 사 온 감기약만 먹으면서 집에 들어박혔다. 아무리 밥을 먹으라고 해도 싫다고 했고 병원에 입원을 하자고 해도 완강하게 거부하면서 두유만 찾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어머니는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는 딸을 보았다. 헐떡거리는 딸을 눕혀놓고 따뜻한 물수건으로 온몸을 닦아 주고 속옷과 겉옷을 갈아입혔다. 길게 자란 손톱과 발톱을 잘라주고 머리를 말려 주었다. 딸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듯 소파에 누웠다. 그런 딸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어머니도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였다.

밖에서 들리는 딸의 기침소리 때문에 깊은 잠을 자지 못했던 어머니는 그날은 기침소리가 없는 딸을 기특하다 생각하면서 부족했던 잠에 빠져들었다. 한잠을 잔 어머니가 새벽에 눈을 떠서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그대로 누워있는 딸의 모습을 보고는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불을 켜고 살펴보니 딸의 몸이 이미 굳어가고 있었다. 숨을 쉬지 않았고 입술과 손톱 밑의 색깔도 변해 있었다. 놀란 어머니가 119에 신고하자 출동한 구급 대원들은 이미 손쓸 수 없다고 하면서 장례식장으로  안내하였다. 경황없는 장례를 치르고 딸의 몸은 한 줌 가루가 되었다. 어머니는 가루가 된 딸의 몸을 돌아가신 아버지와 할아버지, 할머니의 무덤 사이에 뿌렸다. 아무것도 몰랐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어른들 틈에서 예쁨 받고 편히 쉬라는 뜻이었다.  


병도 많고 정신적 장애까지 있는 딸이 어머니는 늘 걱정이었다. 자신이 죽고 나면 자활 능력이 없는 딸이 어떻게 살아갈까 가 어머니의 숙제였다. 모자란 딸을 두고는 눈을 감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마음을 알았다는 듯 딸이 먼저 떠난 것이었다. 마음으로는 한없이 슬펐지만 어머니는 자신의 손으로 딸을 보낼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은 이 땅에서의 숙제를 다 했으므로 언제 세상을 떠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집에 들어가면 안녕히 다녀오셨느냐고 허리 숙여 인사하던  딸의 음성이 쟁쟁하여 힘들다는 어머니는 딸에게 갈 날만 기다린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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