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by 선희 마리아
부모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특정 종류의 아이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대신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많은 종류의 아이가 번성할 수 있도록 사랑과 안전, 안정성의 보장과 함께 보호받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다.

발달심리학자 앨리슨 고프닉의 『정원사 부모와 목수 부모』 중. 고프닉은 재료를 딱 맞게 조립해 최종 제품을 만드는 목수보다 식물이 잘 자랄 환경만 만들어주고 지켜보는 정원사 부모가 되라고 조언한다.

중앙일보 아침의 문장, 2024.9.25(수), 28면

조부모는 3세대이다. 부모가 1세대, 자녀가 2세대, 조부모가 3세대이다.

1세대인 부모는 한 가정을 창설한 창시자이자 주체이다.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책임자이다. 2세대인 자녀는 부모의 보호 아래 잘 양육되고 잘 성장해야 하는 피보호자이다. 3세대인 조부모는 도움을 청하면 시간을 할애하고 손을 넣어주는 조력자이다.

우리가 1세대인 부모일 때는 3세대인 조부모가 가정의 중심이었다. 자녀들의 양육이나 교육보다 효도가 더 강조되었고 중요 덕목이었다. 부모 앞에서 자녀를 예뻐하거나 사랑하는 것은 눈치 보이고 조심스러운 일이었다. 집안의 대소사를 결정하는데도 어른의 의견이 가장 중요하였다.

그런 시절을 살면서, 또 부모라는 자각이 부족하여 내 아이를 키울 때는 아이의 가능성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부모의 눈치가 먼저여서 어떤 때는 만만한 자식에게 화풀이를 하고 귀찮아하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가장 중요한 자식 농사를 짓는 농부의 중요성을 몰랐었다. 그때 결혼과 가정의 의미와 우선순위를 배웠더라면, 그때 부모 교육을 받고 부모가 되었더라면, 시행착오와 잘못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내가 3세대가 되는 사이에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자녀가 가정의 중심이 되고 더 나아가 상전이 되었다. 부모는 보호자, 교육자에서 자녀들을 뒷바라지하고 자녀들을 위해 사는 종이 되어가는 것 같다. 3세대인 조부모는 가족의 범주에도 들지 못하는 타인과 비슷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자식 농사라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 자식을 키우는 일이 농사와 같은 원리라는 것이다. 농사를 짓는 것은 수확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좋은 수확을 거두기 위해서는 좋은 토양, 좋은 씨앗, 좋은 돌봄이 필요하다.

좋은 수확을 기대하려면 부모 된 내가 먼저 좋은 토양이 되어야 한다. 살아보니, 사람의 일생이 좋은 사람,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과정이었다. 좋은 부모란 자녀의 목표를 설정해 주고 내가 원하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자녀라는 씨앗 속에 숨겨져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가능성을 발아시키고 확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었다.

지금 당장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한 톨의 씨앗이지만 그 씨앗 속에 담긴 무한대의 성장 가능성과 개성, 그리고 다른 씨앗들과 햇빛과 양분을 나누어 가지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도록 좋은 심성을 갖도록 가르쳐야 하는 역할이 농부 된 부모가 해야 할 일이었다. 한 알의 밀알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 꽃을 피울 때를 기대할 줄 알았어야 했고, 지켜볼 줄 알았어야 했고, 기다릴 줄 알았어야 했다.

특별한 아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고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도록 사랑과 안전, 안정된 공간을 제공하여 보호받도록 하는 것이 부모가 해야 할 일이었다.

양육자, 교육자로서의 부모 역할이 끝나버린 지금, 과연 내 아이들의 숨은 잠재력을 잘 발휘하고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려 사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했던 정원사 부모였는가를 생각해 본다. 이제 자녀들을 양육하는 부모 된 내 아이들이 아이들이 잘 성장하도록 좋은 분위기, 좋은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좋은 정원사 부모가 되기를 기대한다.

3세대인 조부모가 되어 조력자, 관찰자의 입장으로 2세대인 손자녀들을 보니, 무한대의 가능성이 보인다. 그들의 잠재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좋은 환경, 좋은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이 글이 마음 아프게 파고드는 것은 뒤늦은 후회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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