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진이의 어린 시절은 행복하였다.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언니, 오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막내였고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순종적인 성격이어서 어른들의 예쁨을 받았다. 아버지는 항상 집에서 책을 읽으시는 점잖고 예의 바른 분이셨고 종교는 없었지만 바르고 정직하게 사는 것을 강조하셨다. 그런 집안에서 희진이는 풍파 없이 다복하게 자랐다.
결혼할 나이가 되자 희진이는 어른들이 정해주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밖으로 나도는 성격이 아니어서 남자를 만날 기회도 없었다. 위로 상당한 차이가 있는 오빠의 친구들이 집에 드나들면서 놀고 가고는 했다. 희진이는 오빠 친구들에게 때가 되면 밥과 음식을 챙겨 대접하는 것이 즐거웠다. 오빠 친구들에게 칭찬받는 것이 희진이의 기쁨이고 즐거움이 되었다.
오빠의 여러 친구들 중에서 유난히 희진이에게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희진이의 마음속에 그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 사람은 점점 더 자주 집에 왔고 둘은 밖에서도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둘 사이를 알게 된 오빠도 친구가 성격도 순하고 집안도 큰 장사를 해서 넉넉하다고 하였다. 두 사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가까워져 결혼을 하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보니 시댁은 시어머니가 모든 것을 주도하고 있었다. 시댁은 경제적으로 넉넉하였고 남자는 시어머니를 돕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따로 살림을 내준 시어머니는 희진이가 시댁에 드나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편하고 자유롭게 살라고 하면서 시댁 일을 알기를 원하지 않았고 남자만 어머니를 도와 함께 일한다고 하면서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고 시댁에서 기거한다고 하였다. 희진이는 남자의 모든 것을 믿었고 순종하였다.
세 딸이 연이어 태어나자 시어머니는 아들 노래를 불렀다. 세 딸을 날아 기르면서 희진이는 시댁이 겉으로는 가게를 차려 장사를 하지만 실상은 집에 당을 차려놓고 굿을 해주는 무당집인 것을 알게 되었다. 시어머니는 상당히 영험한 무당이었고 찾아오는 단골손님들의 굿만으로도 큰돈을 벌고 있었다. 남자는 그런 시어머니를 뒷바라지하느라 며칠씩 집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희진이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유교적 가풍이 있는 집에서 자랐는데 무당집의 며느리가 되는 것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었다. 희진이는 어떻게 할까를 날마다 고민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어머니는 모든 것을 알게 된 희진이에게 신내림 받기를 원하였다. 가업을 이으라는 것이었다. 희진이는 자신이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집안은 싸늘해져 갔고 무서운 시어머니는 세 손녀딸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들을 낳아야 한다고 압박하였다. 남자는 둘 사이에서 어떤 중재도 없이 방관하였다.
희진이는 아들을 낳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하였다. 점집을 찾아가 점을 치기도 하였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점을 칠 때마다 아들을 둔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렇지만 아들을 낳으면 남편과의 사이가 멀어진다는 이야기를 꼭 덧붙였다. 몇 군데 돌아본 점집에서의 이야기가 똑같았다. 희진이와 남자는 사이가 좋았다. 희진이는 한 번도 남자에게 큰 소리를 내지 않았고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런 소리들을 그냥 흘려 들었다.
몇 년이 지나 희진이는 아들을 낳았다. 그런데 남편이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시댁에서 지낸다고 하였다. 알고 보니 아들을 임신할 무렵부터 남편에게 여자가 생겼던 것이었다. 그리고 희진이가 아들을 낳을 무렵 두 사람은 먼 곳으로 도망하여 살림을 차렸다. 희진이가 임신하여 배가 불렀을 때 우연히 시내에서 남편을 만났을 때 옆에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였던 것을 희진이는 알게 되었다. 남편은 아들을 낳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이 백일이 되었을 때 희진이는 아들을 업고 남편을 찾아 나섰다.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고 남편이 살고 있다는 곳을 찾아 갔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외진 시골마을을 찾아가서 이런 사람들이 살고 있느냐고 동네 어귀에서 만난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그 사람들이 산다는 집을 가르쳐 주어 찾아갔을 때 두 사람은 거기에 있었다. 희진이는 남편에게 백일 된 아들을 보여주면서 집으로 돌아갈 것을 간청하였다. 남편은 아무 말 없이 희진이를 따뜻한 방으로 들어오게 하고 쉬게 하였다. 그리고 옷을 차려입고 희진이를 앞세우고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을 잘 지내는 듯하던 남편에게 여자가 찾아와서 밖으로 불러내었다. 또다시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시어머니는 이미 그 여자를 알고 있었고 그 여자를 감싸고 있었다.
어느 날, 희진이는 시어머니와 남편, 여자가 있는 시댁에 찾아가 백일이 지난 아들을 내려놓고 집을 나왔다. 시어머니는 욕을 하며 희진이를 저주하였다. 그 소리를 고스란히 들으면서 희진이는 그곳을 떠나 도시로 올라왔다. 친정에도 알리지 못하고 혼자 숨어 살던 희진이는 아는 언니를 통해 큰 회사의 구내식당 주방에서 일하게 되었다. 성실하고 손끝이 야무졌던 희진이의 음식 솜씨는 회사 사람들을 즐겁게 하였고 조신한 희진이의 처사는 회사 사람들에게 큰 신뢰를 얻게 하였다. 회사에서는 바쁘게 일하느라 아무 생각이 없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희진이는 밤마다 두고 온 세 딸과 젖먹이 아들을 생각하며 울었다. 그렇지만 무당 일을 하러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시댁에서는 희진이를 세 딸과 젖먹이 아들까지 버린 나쁜 며느리로 소문을 냈다. 겉으로 보이는 사실이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 시어머니는 그전에도 예뻐하지 않았던 세 손녀딸들에게 희진이를 자식을 버린 못된 엄마라고 욕을 하며 세뇌시켰다. 아이들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어느 날 새벽, 희진이는 눈물로 밤을 새우다가 집 곁의 교회에서 들리는 종소리를 들었다. 새벽 예배를 알리는 종소리였다. 그전부터 새벽마다 들리는 종소리를 듣고 교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왠지 가면 안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망설였는데 그날 새벽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교회에 들어섰다. 처음 들어 선 교회에서 희진이는 친정을 찾은 듯한 평안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그 새벽, 희진이는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 놓았던 모든 슬픔을 쏟아놓았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은 흘러내렸고 마음속의 설움이 실타래처럼 풀려나왔다. 그렇게 희진이는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새벽기도는 죄 사함을 구하는 평생의 의식이 되었다. 희진이는 자식을 버린 나쁜 엄마, 못된 엄마의 죄를 씻게 해달라고 날마다 울었고 자식들을 다시 보게 해달라고 날마다 기도하였다.
세월이 흘러 세 딸들이 중학교에 가고 사춘기가 되자 엄마를 찾아왔다. 딸들은 자기들을 버린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미워했고 엄마는 죄인이 되어 딸들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찾아오는 딸들을 밀어낼 수 없었고 그동안 엄마 없이 할머니 밑에서 보냈던 고통을 호소하는 딸들의 상처를 어떻게 감싸 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흐트러지지 않게 단정하게 처신하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딸들에게 최선의 위로라고 생각하면서 어떤 소리, 어떤 소문도 없이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곤 하였다.
어려운 세월이 흘러 딸들이 시집가고 아들도 장성하여 결혼을 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희진이는 그렇게 가고 싶고 보고 싶었던 자식들의 결혼식에 가지 않았다. 자식들은 엄마에게 결혼식에 와달라고 간청하였지만 제대로 키우지 못한 엄마가 무슨 자격으로 결혼식에 나서겠냐고 하면서 키워 준 엄마를 모시고 하는 게 맞다고 달랬다. 아들의 결혼식 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을 보내면서 희진이는 자신이 살아온 기나긴 세월을 뒤돌아 보았다. 이상하게도 남편에게는 미운 마음이 없었다. 자신들의 어그러진 만남이 안타깝고 아쉬울 뿐이었다. 딸들에게도 아빠 흉을 보지 않았고 아빠를 미워하지 말고 이해하라고 당부하였다. 처음에는 미움과 원망으로 가득했던 딸들도 시간이 가자 엄마의 반듯하고 바른생활을 보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들으면서 자신들의 엄마를 다시 찾은 것을 기뻐하고 그동안 잘 살아내었던 엄마에게 존경한다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희진이는 그 말을 들으면서 비록 자신의 삶이 어디서부턴가 어긋났지만 중심을 잡고 바르게 살아온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긴 세월 동안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고 자포자기하지 않고 인내하였던 것이 정말로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비록 자신의 삶은 기구하였지만 대신 세 딸과 아들을 얻은 것이 그것에 대한 충분한 대가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