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말씀 묵상하는 사람들
심한 감기로 기침에 시달리다 지각까지 하게 됐다.
목을 간질거리며 기침을 유발하는 그 무언가를 원망하며 항아리깨지는 기침에 가슴이 울려대고 기침할 때의 반동으로 옆구리까지 뻐근할 정도이지만 출근을 미루기 어려웠다. 5월 1일부터 대통령 선거하던 9일까지 퐁당퐁당하는 휴일과 근무일의 반복된 직후여서 내 사정을 이해시키기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여튼, 일한 것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지난 십여일동안 반 이상은 출근하지 않았던 건 확실하다. 쌓여있는 일이 태산이었다.
태산을 오르고 험곡에 가는 부담감으로 출근한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3장이었다.
어제 2장에서 모세가 히브리 백성의 고통을 보고 의로움(?)이 발동하려 그들을 괴롭게 하던 애굽사람을 돌로 쳐죽인후에 두려워 도망갔던 것으로 끝이 났었다.
오늘은 모세가 그 유명한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영화같은 장면과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야하는 상황이었다.
애굽으로 돌아가 내 백성을 데리고 가겠다고 하라는 하나님의 강력하고도 다소 황당한(?) 요청에 모세도 당황했던 것 같다.
누가 시킨 일이냐? 누가 너더러 그렇게 하라고 하더냐? 라고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요?? 라고 다시 되묻는 모세도 아주 강심장은 아니었나보다 싶었다.
그분은 어떤 분인지, 하나님에 대해 묻게 되면 대답하라고 일러주신 그 한 마디가 오늘은 내 마음을 때린다.
스스로 계신 분이 이 일에 주관자라는 답은 사실 어떠한 상황에도 만병통치약같은 해답인 것이다. 그 어떤 것도 스스로 있는 것이 없는데 스스로 있는 자, 스스로 계신 분께서 원하신다는 것만큼 명쾌한 답이 있을까 싶다.
왜 이스라엘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하셨을까? 왜 감당하기 어려워보이는 고난의 길에 밀어넣으셨을까? 그리고 그 고통속에서 신음하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셨다 하시는 걸까?
'고난도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을 만큼 힘들 때는 이스라엘의 고난행군이 남일 같지 않다 느껴졌다.
그런데 오늘 출애굽기 3장속에서 말씀하시는 '스스로 있는 자'를 묵상하며, 머리로 이해되는 것을 떠나 하나님의 뜻임을 알고 그저 따르고 신뢰하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지친 하루를 지날 때에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인도하심에 대해 의심하지 않고 맡겨보는 것, 나를 맡기고, 나의 일을 맡기고, 나의 관계를 맡기고 나의 삶을 맡기는 것. 그럴 때 나의 계획을 넘어 하나님의 계획과 뜻대로 인도하신다는 것. 오늘도 신실하고 변함없는 하나님, 그 분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