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함께 읽는 성경]
사무엘상 19장 말씀을 함께 읽었다.
다윗과 요나단
친구여서 가깝고, 그러나 친밀한 그 이상인 그 둘의 관계는 읽을 때마다 신기하고 새롭다.
우리 친구 아이가?
친구간의 두터운 우정이야기라고 생각하기에는 훨씬 더 돈독하고 끈끈해보인다. 부모, 자식간의 관계보다 더 앞설 수 있는 관계라고 생각이 된다.
요나단은...???
1. 살 길을 가르쳐주는 친구
내 부친 사울이 너를 죽이기를 꾀하시느니라.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아침에 조심하여 은밀한 곳에 숨어 있으라. <삼상 19:2>
2. 아버지에게 직언하는 아들
4. 요나단이 그 아비 사울에게 다윗을 포장하여 가로되 원컨대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치 마옵소서 그는 왕께 득죄하지 아니하였고 그가 왕께 행한 일은 심히 선함이니이다.
5.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왕이 이를 보고 기뻐하셨거늘 어찌 무고히 다윗을 죽여 무죄한 피를 흘려 범죄하려 하시나이까 <삼상19:4-5>
두 가지 모두 아버지인 왕의 뜻을 거역하게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절대권력에 맞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더군다나 '이렇게 하시면 안됩니다' 하는 직언을 하다니;;; 대단한 용기가 아닐 수 없다.
다윗과 요나단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참 두터워요.
이렇게까지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있을까? 나도 누군가에게 저런 믿음을 주었나?
생명을 거는 신뢰, 큰 감동
아버지의 말씀을 거역할 정도로, 다시 말해 자기 생명을 내어놓고 다윗을 살려야 한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친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강력했던건가?
어쩌면 다윗이 블레셋을 쫓기 위해 생명을 걸었던 것이 요나단에게는 큰 감동을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 우리는 언제 생명을 걸 수 있나??
내 평생의 소명이자 내 할 본분이라고 깨달았을 때이지 않을까?
<행 20:24>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다윗과 요나단이 서로의 생명을 걸고 지켜주고 자기 역할과 본분을 다했던 것처럼,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자신의 사명을 기꺼이 감당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어떠한가?
우리가 은혜 받을만 해서도 아니고 구원받기에 마땅하지도 않으나, 거저 주시고 선물처럼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떠올랐다.
감사 감사, 무한 감사
하나님, 오늘 하루도 주님께 맡깁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주님께 나의 삶을 맡깁니다. 자신의 생명을 던지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던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혜가 결코 작지 않은 것임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에게 은혜를 기억하는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소서. 그 기억이 우리를 지탱하게 하시고 오늘도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깨닫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