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으켜 세우는 삶
'잘(?) 다니던' 이라고 하기에는 때때로 버겁고 이해안되는 상황들을 버티느라 힘들었으니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약같은 월급의 중독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뿌리치고 나온것이 벌써 4개월이 지났다.
내 생각같아서는 2개월 정도의 휴식기를 갖은 후 나를 기다리는 새로운 직장에 입성하리라 했지만, 그 기대는 와장창 무너졌고 그것을 인정해야 하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재취업이 쉽지 않으리라는 걱정과 염려는 한번도 해 본적이 없었고 일단은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한달은 그렇게 쉬었는데, 두달 째 되면서는 슬슬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고, 아는 분이 아주 멀리 지방으로 일자리를 주선해주시고 하루, 이틀만에 거취를 결정해야 한다는 종용에 더 깊이 생각할 틈도 없이 고사하고 말았었다.
나 스스로 나의 일의 영역을 서울이라는 작은 도시안에 국한시키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제안받은 자리는 일을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생활 본거지를 움직여야 하는 일까지 고민할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정중히 거절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금새 올것 같은 또 다른 기회에 대한 갈망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까지만 해도 휴식기(또는 취업준비기)가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내 생일이 있던 그 달 오월에 나는 중요한 공채에 지원하게 됐고, 기대처럼 기분좋게 1차 합격으로 시작했다. 사실 잘 몰랐지만, 시에서 관리하고 정년도 보장되는 등 공무원급(?)의 처우가 예상되는 그 기관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도전했다는 것을 필기고사를 보러가서 알게 되었다.
관련 분야 상식과 정책을 꼼꼼히 준비하고 두 가지 질문에도 정성스럽게 자신있게 쓰고 나왔는데, 보기좋게 떨어지고 말았다. 생일 반나절을 들여 인지대를 구입하고 접수하느라 바쁘게 다녔건만.. 결과를 받아들고선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응시번호가 66번이었어. 재수없다는...'
실패한 순간, 결과에 전혀 상관없이 말도 안되는 연관성으로 내 문제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고 선 그으려고 하는 내 모습에 순간 실소가 터져나왔다.
'썬, 말도 안되는 소리 하지도 마. (그렇지만, ......)'
애초에 내가 생각했던 계획이 어그러질 것 같은 불안감과 그래도 아직 자존심일지 자신감일지 하는 것이 건재하다는 것을 스스로 보이고 싶었던 탓일 수도 있었다.
66번인 최**(나)는 떨어지고, 77번인 최**는 합격했으니, 그 정도의 자기 위안이나 최면은 걸고 싶은 건 약한 자의 일말의 버틸 힘이었지 않았나 변명을 늘어놓아 본다.
그 이후에도, 나를 어여쁘게(!) 보아주신 지인들께서 또 다른 자리에 주선해주셨고 공교롭게 다른 영역의 두 가지 job offer가 겹쳐서 기도하며 고민하게 되었다.
시작하는 일이라 힘들겠지만, 아직은 청소년을 만나는 일에 좀 더 주력해보고 싶다는 판단이 들어 새롭게 법인을 만들고 set-up하는 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생각보다 길어지는 단계와 기다림에 지쳐가며 거의 한달을 이렇게, 저렇게 검증받고 시작하기로 이사장 미팅까지 순조롭게 마치는 듯 했으나 마지막 단계에서 걸림돌이 있었다. 근무조건!
"이것 밖에 못줍니다. 받아들이든지, 아니든지..."
시작하는 단체라 하더라도 터무니없는 조건에 말문이 막혔지만, 여태껏 일을 안할 조건을 찾으며 한달을 보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루 밤을 꼬박 기도로 보내며 지혜를 구했다. 탄력근무로 주간 근무시간을 조정하며 일단 일을 시작보기로 굳게 마음 먹고 다시 돌린 역제안은 답을 주겠다고 한 날짜를 넘겨 고작 네 줄 단문으로 돌아왔다.
'좋은 인재와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쉽네요.'
좋은 인재인데 왜 놓쳐? 아쉬울 일을 왜 만들지?
그 뒤로도 문장이 더 있었으나 거절을 위한 보기좋은 핑계로 들렸다. 아이들에게 평균이상의 삶을 되찾아 주고 싶다는 그 분의 포부는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었다. 함께 길을 걷자고 제안한다면 적어도 한 걸음은 내딛어 볼 수 있도록 믿음을 주어야 하는데, 내 안에 생긴 동기부여마저 신기루처럼 허물어버렸다.
본인이 이미 넘치게 누리고 있는 평균 이상의 삶은 누군가에게는 제시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못느끼는 허상이자 뜬구름이었나보다 싶었다.
"난 자동차 타고 갈테니까, 넌 걷든지 뛰든지 알아서 가. 그리고 거기 목적지에서 만나."
이후 얼마동안은 진이 빠져서인지 사람이 싫고,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내놓고 신뢰하기가 두려웠다. 마침 날씨도 더웠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을 만큼 무더웠고, 뉴스에서는 연일 기록적인 폭염이라고 난리였고, 국민안전처에서는 폭염주의보와 경보메시지를 심심치 않게 보내왔다.
8월이 되었고, 길고 긴 더위는 언제까지 계속될 지 그 끝이 기약도 없다.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모르고, 기상청도 모른다. 최근 3~4주 동안 5건의 입사지원을 했고, 3군데에서 서류통과를 했고 면접을 보았으니 1차에서 6할의 승률이었던건데, 모두 최종 선발되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5번 시도하고, 5번 모두 실패했다. 2루타나 안타 정도는 친 줄 알았는데, 아웃당하고 만 기분이다.
'다음 기회에 뵙겠습니다. 지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훌륭한 분들을 모두 모시지 못해 안타깝습니다.
'채용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번에 적격자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나마, 문자로 알려주는 곳은 양반이고 그도 아니라면 합격발표에 대한 일정 안내도 없이 마냥 기다리게 하다가, 홈페이지에 채용재공지로 적격자 없음을, 그리고 내가 그 적격자가 아니었음을 아는 수도 있으니 취준생의 애타는 마음은 이 여름 더위보다 한 수 위다.
그렇지만 믿는다. 누구의 말대로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것을.
지금도 여전히 상황은 변하지 않았지만, 전처럼 상황 자체에 연연하지 않는다.
조급해하지도(나만 괴로울 뿐이라는 걸 잘 알게 되었고)
실망하지도(다시 돌이켜 부족한 나를 보게 되었고)
아쉬워하지도(결과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지나간 버스에 손 흔들고 발 동동 구르기보다는 맘 편히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게 현명하다.) 않는다.
내가 열정을 다해 일하겠다고 취업의 문을 두드릴 때마다 우리 가족도 내가 안보이는 저 뒤에 숨어서, 어쩌면 나보다 더 절실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마음으로 함께 그 문을 두드렸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거듭 거절당하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패배감에 젖어있을 때, 가족들의 마음은 더 찢어지고 아프다는 걸 아니까.
나는 우리 엄마의 자부심이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 나와 함께 계시니까...
You know better than I
You know the way
I've let go the need to know why
for You know better than 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