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일기
월요일임에도 광복절 공휴일이라
가족들과 여유롭고 한가한 오전 시간을 보냈다.
한 낮, 더위가 한창일 때가 다가오자
에어컨 없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어려워
동생과 함께 집 근처 카페로 피신했다.
시원한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일도 하다보니
가족, 연인,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이 카페로 하나, 둘 모여들었고, 이십명은 되어 보이는 큰 그룹도
무리지어 카페 한 편을 차지하고 앉았다.
사람수가 많아서인지, 무슨 특별한 모임으로
카페에 모인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카페에 들어온 이후로
조용했던 카페는 시끌벅적한 대화소리로 가득찼다.
큰 소리로 박수치며 웃고 떠드는 소리에
다른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이따금씩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고,
심지어 인지하지도 못하는 듯 했다.
대화에 매우 집중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때 갑자기 스치는 생각은,
'혹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설마 했지만, 왠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귀를 열어 대화를 들어보았더니
역시나 대화 중에 하나님, 예수님, 삼위일체,
응답 등의 단어가 흘러나온다.
마음이 좋지 않았다.
카페를 이용하는 손님의 한 사람으로써
불편하기도 했다.
사람들의 눈쌀을 찌뿌리게 만드는 저 사람들이
적어도 교인들은 아니길 바랬는데...
그들은 마치 자신들만의 성벽에 둘러싸여
누구의 이야기도 듣지 않고
누구의 시선도 신경쓰지 않은 듯 보였다.
정결과 정직, 열심을 자부하는
바리새인 같기도 하였다.
그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자유분방하게
카페 천장을 울리고 퍼져
참다참다 도저히 참기 어렵다 생각하고
몇 번이나 조용히 해 줄 것을 권면하고 싶었지만
결국 몇 명씩 무리지어 나가고
마지막 사람들이 자리를 뜰 때까지
약 2시간 가까이 그냥 참고 말았다.
그리스도인으로써 선한 양심을 가지라 하신 말씀을 쫓아야지 싶었지만,
그들이 듣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듣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했다.
나와 동생은 고작 둘이지만,
그들은 이십명쯤 되보이니 절대 다수 아닌가.
이야기할 수는 있지만,
집단의 무모한 용기(?)를 가진 그들이
시큰둥하며 듣는 둥 마는 둥할까 두려웠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같은 형제, 자매로써
다른 신념, 가치, 행동양식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권면에 대한 거절이 올까 두려움도 있었다.
며칠 전, 엄마가 경험하셨던 일을 말씀해주셨는데 오늘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엄마는 어느 아이가 신발을 신은 채로 벤치 위
여기 저기를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셨고,
한참이 지나도 함께 있는 아이의 엄마가
자제시키지 않고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것을 보신 후에 한 말씀 하셨다 한다.
"아이 엄마, 아이가 여기 의자위를 계속 뛰어다니고 있는데 사람들이 앉아야 하는 곳이잖아요. 엄마가 아이를 좀 챙겨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자, 아이 엄마는 듣기 싫은 소리를 들어
불편한 티를 내며
"야! 이리 안내려와. 내려오라잖아!"
하고, 제 아이에게 큰 소리를 냈다고 한다.
아마도 아이 엄마는 아이를 훈계하는 척하며
울 엄마에게 화풀이를 하고 있었지 싶었다.
엄마도 젊은 아이 엄마의 반응에 당황스러워
한 마디 덧붙이고 싶었지만 참으셨다 했다.
뜻하지 않는 감정싸움으로 가는 것은
원치 않으셨고, 어른으로써 가르쳐야 하고
권면해야 할 일에 대해 충분히
용기있게 이야기했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씁쓸함은 남았다 하셨다.)
나도 오늘 다른 사람들과 공간을 나눠쓰는
카페에서 그들이 보이는 비매너에 대해서
용기있게 말할 수 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말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 순간 우리의 비판과 권면 가운데
사랑이 있는지에 대해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신
고린도전서의 말씀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말할까 말까를 고민하며 갈등하기를 한참이었지만,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프로필의 종교란에 기독교 혹은 개신교라고 쓰거나, 누군가 종교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기독교라고 대답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매일을 사는 삶의 태도여야 하고,
사람들과 관계맺는 방식이자,
생면부지 모르는 사람에게도
내 가족과 우리 교인들에게 하듯
해야 하는 것이어야 한다.
오늘을 어떻게 살지 결정하는 우선순위이기도 하고 오늘과 내일을 모아 인생 전반을 살아가는
삶의 양식이어야 한다.
<롬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to show mercy)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시119:58> 내가 전심으로 주의 은혜를 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긍휼히 여기소서(Be merciful)
오늘도 순간순간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자 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비록 그 때 내가 좀 더 지혜롭고
용기있었더라면 하는 상황들을 별 수 없이
그냥 지나쳐버리고 말았지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고
하나님께 그 마음으로 간구하니
깨달는 은혜를 주셨다.
입술로만 믿는다하고 삶으로 예배하지 못하는
연약한 우리를 향해
하나님은 늘 깨닫게 하는 은혜를 넘치게 주시고,
다시 돌이켜 회복케 하시고,
다시 고쳐 사는 기회를
끊임없이 주신다는 것을 배우게 되니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르겠다.
하나님과 바르고 건강한 관계가운데 나를 세우시고, 오늘 나의 삶의 자리에서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시는
특별한 이 훈련은
오늘도 어제처럼 계속되고 있어서 더 감사하다.
하나님, 나를 향해 언제나 선하시고
신실하심을 신뢰합니다.
주님의 얼굴을 구할 때,
주의 향기로 내게 머물러 주옵소서.
<Hebrews12:7> As you endure this divine discipline, remember that God is treating you as his own childr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