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의 젊은 시절, 그 옛날이 그리워서...
점점 늙어가는 부모를 느끼는 건 썩 기분좋은 일은 아니다. 한살 한살 나이먹어가는 세월의 흐름속에 나 역시 피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희어진 머리칼, 거기다 듬성듬성해진 것이 예전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의 엄마의 굵고 탄력있는 숱많은 검은 머리와 사뭇 달라져버렸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도 자리있나 두리번거리는 걸 나이든 티 낸다며 싫어하셨는데, 요샌 함께 지하철을 타도 자리가 나면 각자 찢어 앉자 하신다.
오늘도 버스에 오르는 엄마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퇴근길 만원버스안에 꽉 차 있는 대학생들 사이에서 안경너머로 혹시나 하며 빈자리를 찾는 엄마의 바쁜 눈길이 느껴져 안쓰럽다.
함께 일하시던 아주머니께서 오늘 갑자기 엄마 핑계를 대며 그만두시지만 않았어도 다시 회사에 가는 일은 없으셨을텐데...
이른 저녁식사후에 한 시간 반 꿀잠자고 다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남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퇴근길, 버스로 다시 출근하는 일은 없었을텐데...
엄마가 안경을 쓰시게 됐어. 옛날에 엄마는 좌우 모두 1.5여서 평생 안경은 안쓰셔도 될 줄 알았는데...
남들의 퇴근길에 또 다시 출근하시기 위해 만원버스에 오르신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작아도 작아보이지 않고 특유의 당당함과 카리스마로 여장부같아보이던 엄마는 간 데 없고 그저 키 백오십도 안되는 작은 체구의 낯선 이만 있다.
육십이 되어도 사는 게 질기게 고된 엄마의 오늘을 보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대로 집으로 올라갈 수가 없었다.
무언가라도 끄적거리지 않으면 내가 너무 서글퍼질 것 같았다. 엄마의 자부심은 커녕, 기댈 어깨도 못되는 것은 아닌지 한껏 초라해진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가 않았다.
그마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 첫 번째 버스를 탄 후 세 정거장 후에 내려서 다시 두 번째 버스를 타시고 몇 정거장을 지나쳐 가시며 전화를 하셨다.
"나 350번으로 갈아탔어. 걱정하지마."
"엄마 혼자 주무시는 거에요?"
"걱정하지 마"
"엄마 혼자 주무시는 거에요?"
"어? 뭐라고?? 안들려."
".............."
"뭐라 하는지 안들려. (뚜~~~~)"
나는 엄마 목소리를 들으며 솟구쳐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어서 울컥하느라 목이 메어 그 다음 대답을 하지 못했다. 엄마 어깨위에 짊어졌던 삶의 무게가 하루 이틀도 아닐진데 괜스레 오늘은 더 무겁게만 느껴졌고, 작은 거인마냥 천근만근한 그 짐을 어깨위에 가득 싣고도 씩씩한 걸음을 당차게 걸어왔을 엄마가 감당이 되지 않을 만큼 다시 진짜 거인처럼 커보였다.
그렇게 엄마랑 나는 동문서답을 하듯 짧은 대화를 마쳤다.
그래도 여전히 마음은 홀가분하지 않아서 정류장 벤치 한쪽에 붙박이처럼 앉아있었다.
울다가, 쓰다가, 전화통화를 하다가, 다시 울다가. 지웠다, 다시 쓰다가...
"회사에 들어왔어."
딸의 걱정스런 마음을 아시는지 버스탔다, 어디쯤 가고 있다 하시던 엄마가 드디어 도착하셨다고 알리는 전화를 주셨다. 엄마가 타고 가신 버스와 같은 번호의 버스가 열 대 쯤 지나갔을 때였다.
우리집 막내는 어렸을 적에 자주 쓰던 말이 있었다.
옛날에~
이야기를 시작하려고치면 언제나 "어, 옛날에...옛날에 말이야.."하는 말을 관용어처럼 사용하며 입을 뗐다. 1년 전도 옛날이고, 바로 어제 일도 옛날이다. 지나간 과거는 무조건 옛날이 되었다.
오늘 문득 엄마의 젊고 아름다웠던 그 옛날이 무척 그리워졌다.
옛날에 엄마 참 예뻤어.
"옛날에 말이야, 엄마는 항상 당당했어. 씩씩했고.
옛날에 엄마는 눈이 좋았어. 옛날에 엄마는 힘 센 로보트같았어. 엄마는 옛날에 그랬어."
엄마, 그런데 말이야. 지금도 예뻐.
옛날에도 예뻤고 지금도 여전히 예뻐.
옛날 옛날부터 쭈욱 그랬어.
엄마가 도착했다는 전화를 받고도 삼십분을 더 머물러 있다 결국 한 시간 반만에 일어섰다. 구십분동안 벤치에 앉아서 '왔다, 섰다, 다시 가는' 버스와 '타고 오르내리는' 사람들과 '점점 짙어지는' 하늘과 '하나 둘 켜지는' 가로등과 버스정류장 광고 전광판의 불빛을 보며, 나는 내가 기억하는 엄마의 옛날, 지금 내 나이만큼의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삼십여년 세월을 다시 흘려보내보았다.
치열했지만 아름다웠고, 연약했지만 당당했던 엄마의 옛날, 그리고 오늘.
무엇보다 엄마가 옛날부터 지금까지 계속 우리 곁에 계시는 것, 그냥 계시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밤이다.
Mom, Thanks for being with me.
I love you.
엄마 어깨 위의 삶의 무게만큼이나 어떻게 해도 측량이 안되는 엄마의 사랑, 그 무게를 다시 또 느끼게 되니 고맙고 감사하다. Thanks G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