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느라 아픈 엄마

이제 다 나았다고 말해주세요.

by Sunny Day
엄마가 아프시다.


일하시는 건물 무거운 철문이 바람에 쾅하고 닫히면서 그 문에 무릎을 부딪혔다 하신다.

괜찮겠지 싶었는데 단순 타박상을 넘어서

인대가 늘어났다했다. 오렌지 정형외과에서.

조심해야하고 가급적 움직이지 말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대로 했어야 했는데

새벽 일찍부터 몸을 움직여야 먹고 살 수 있는 일을 하시는 통에 삼사일 되는 날부터는 거동하기가

더 불편하게 되셨고

결국은 일을 며칠 쉴 수 밖에 없었다.


쉬는 동안 정형외과 물리치료에, 한의원 침술까지 매일 성실하게 다니셨다.

학교 선생님이나 의사 선생님이나

다 같은 선생님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은 머리 속에 꼭꼭 새겨 지키셨다.

그래야 다시 일할 수 있으니까.

그렇지만 다음 주 복귀하여 며칠을 일하시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으셨는지

다시 열흘 정도의 휴가를 내셨다.


예전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맡은 일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에도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게

직장인으로써 평소 엄마의 지론인데다가,

그냥 자리를 지키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고

맡은 일에 있어서 그 직장을 대표하는 사람으로

일해야 한다는 요즘 보기 드문

남다른 신념을 가지고 계시는 지라

엄마의 긴(?) 휴가에

처음엔 이참에 조금이라도 쉬실 수 있겠다

잘하셨다 꼼짝말고 쉬셔라 박수쳤는데,

백조딸로 며칠을 종일 같이 있다보니

걸을 때마다 뒤뚱뒤뚱 절뚝거리는 엄마를 보며

덜컥 겁이 나기도 했다.


엄마는 강철 로보트인줄 알았다.

무쇠팔, 무쇠다리를 갖고 있어서 아무리 걷고 뛰고 일해도 전혀 지치지 않고 다음 날이면 또 움직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보다.


기억속에 엄마는 항상 에너지 넘치고 목소리도

그 성량이 대단해서 유치부 어린아이부터

백발에 쪽진머리를 하신 할머니 권사님까지

다 합쳐도 오십명 될까말까한 작은 장로교회에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릴 때면 우리 엄마 찬양 소리가 가장 크고 힘차게 교회당에 울렸다.


행여 감기라도 걸리시더라도 동네 약국에서

약 지어먹고 황도 복숭아 통조림을 드시면

금새 거뜬해지곤 하셨다.

콧등에 돋보기 안경 걸쳐쓴 백도약국 약사선생님이 도자기 약그릇에 알약 슥슥 갈아서

한 번 먹을 만큼의 양만큼 하얀 종이에 툭툭 털어

능숙하게 삼각형 고깔 모양으로 접어주셨고,

그 마법의 약은 약효가 뛰어나서

지어주신 삼일치 약을 다 먹기도 전에

항상 엄마는 말끔해지셨다.

[출처: 네이버 카페]



내가 늙느라 아픈가봐.


에어컨도 없는 우리 집에서 냉방병도 아닌데

감기몸살까지 걸려 아침, 저녁으로 가슴이 울리도록 기침을 하는 통에 목소리가 다 쉬어서는

늙는 중이라고 하시는데 울컥거리는 가슴을

간신히 누르고 더 긴 이야기로 이어지지 않도록

서둘러 마무리했다


무슨... 엄마가 쉬는 중에도
회사일에 신경쓰셔서 그렇지.




엄마는 올해 육십이 되신다.


엄마나이 앞에 육이라는 숫자가 붙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물론 내 나이 서른 여덟도 상상할 수 없었다.

서른이나 마흔은 몰라도. 스물을 지나 서른까지는 한발 한발 꼭꼭 세면서 걸어왔는데

서른이 지나면서는 여전히 내 기억 속에

정확히 내 나이를 인지하며 밝혔던 때는

서른 그때였다.

서른하고도 여덟이 되었고,

내일 모레 내일 모레하던 게 정말 내일 모레가

마흔이 되는 나이까지 왔다.

남들은 아들, 딸 주렁주렁 맺어서 밥 안 먹어도

배부르게 해드린다는데

나는 내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버거울 때 많은 딸이다.

엄마는 징그럽게 나이만 먹은 과년하기가 예저녁에 진작에 넘은 큰 딸을 예까지 데리고 오시느라

이렇게 빨리 육십을 바라보게 되셨구나 싶으니

마음 한켠이 쓸쓸해진다.


육십개의 나이테 사이사이로

숨겨진 상처와 기도의 눈물, 다시 돌이킨다 해도

이해할 수도 똑같이 따라 그릴 수도 없는

굴곡진 선이 하나씩 그려질 때마다

엄마는 많이 아프셨던 것 같다.


가벼운 감기라고 생각했던 그 때도

자식 셋 입히고 먹이는 일이 바쁘고 급하니

호사스러운 잔병치레를 할 수 없었던 거다.

고등학교 2학년 때, 극심한 스트레스로 수업 중

쓰러져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갔을 때도

걱정하는 게 맞으신가? 우리 엄마 맞나? 하는

잠깐의 서운함이 들 정도로 담담해 보이셨는데

다음날 예배가 끝나고 모두 돌아갔는지도 모른채 혼자 남겨진 텅빈 교회 맨 뒤 의자에 앉아 죄인처럼 무엇인가 잘못했다고 빌고 나지막히 내 이름을

반복하며 되뇌이다가 다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기도하시던 엄마의 모습이 왜 이제서야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다.


그 때도 엄마는 아주 굵은 나이테를

새기셨던 것 같다.


막내가 스카웃제의를 받을 정도로

잘하던 축구를 그만두었을 때도,

바로 밑의 여동생이 진학보다는 취직을 위해

인문계보다 입학 커트라인이 높은

'취업 명문'이라는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을때도,

내가 일하다 다쳐서 꼬박 누워만 있던 한달동안

'아무도 모르게 혼자 앓아야지' 하면서

밤마다 불에 타는 듯한 통증으로

깁스한 왼쪽 다리를 부여잡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기를 반복하며

긴 밤을 지나왔을 때에도,

단단하지 못한 탓인지 생각없이 흩뿌려지는 말들을 고스란히 주어담아 상처받았다고 절절 매다

끝내 더는 못하겠다고 회사를 나올 때도,

여기저기 이력서를 넣어놓고

두근 두근 마음 졸이느라 옴짤달싹못하고

원치 않은 결과에 마음마저 얼어붙어

가족들에게 찬 바람을 쉬이 뿌릴 때도,

그 때도 엄마는 마음이 많이 아프셨나보다.


내가 아프고 우리가 아프면 더 아프셨나보다.


"늙느라 아픈가봐" 하시는 엄마의 말씀에

이제 내 마음이 아프다.


효도는 고사하고 엄마의 사랑에 감사해하고 갚는 시늉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며,

하루 세 번 따뜻한 식사와 잠자리,

행여 지루하실까 가까운 시장이나 동네 마실을

가끔 모시고 다니며

엄마에게 집중하는 몇 주를 보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부족한 느낌이다.


피땀흘리고 진액까지 다 쏟아내며 아껴주고

보듬어주셔서 이제 곧 마흔이 되는데,

나는 어떻게 따라가 보려고 해도 흉내낼 수도 없고, 온 몸에 새겨진 세월의 주름을

아무리 지워보려고 해도 지워지기는 커녕

나무 밑둥만 갉아먹어서

굵고 깊게 패여 새겨진 나이테는 더 선명해보였다.


엄마, 아프지 마세요.


이렇게 말하는 중에도 나는 엄마가 아픈 것보다

아픈 엄마를 보는 내 마음이 아픈 게

견디기 힘들어 말도 안되는

투정을 부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못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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