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만 사는 그리스도인
언제든 입에 붙을 수 있도록, 그래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예수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습관을 갖을 수 있도록 매일 대 여섯시간은 족히 앉아있는 방 안 책상, 길이가 오십센치도 안되는 작은 책상 벽 앞에 짧은 신앙 고백을 작은 종이에 나누어 써 붙여 놓았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계신다. 나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기 원합니다. 하나님 당신을 나를 떠나지 않으십니다. 내가 하나님을 더욱 신뢰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세요. 내가 하나님만 의지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당신은 나의 하나님, 나의 왕이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핵심요절은 마음에 더욱 붙들기 위해 함께 적어놓았다.
By his divine power, God has given us everything we need for living a godly life. We have received all of this by coming to know him, the one who called us to himself by means of his marvelous and exellence. <2peter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베드로후서1:3>
A single day in your courts is better than a thousand anywhere else. I would rather be a gatekeeper in the house of my God than live the good life in the house of the wicked. <Psalm 84:10>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편84:!0>
말씀을 수시로 읽고 외우면서 무시로 성령안에서 기도하기를 간구하였다.
사실, 나는 시간에 대한 강박관념이 매우 큰 편이었다. 남들에게 그렇게 보이지 않으려고 노력해서 그다지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시간을 허투루 쓰거나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쉴 때마저도 계획을 짜서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제대로 하루를 보냈다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강박관념에 대해서 나는 겉으로 잘 표현하지 않았었다.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배려심많은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얼렁뚱땅 보내는 사람과 함께 할 때도 화를 누르고 좀 더 순화된 언어로 좀 더 생산적기를 권면해왔다. 어쩌면 나의 삶의 태도와 방식이 옳다고 생각하며 은근슬쩍 강요 혹은 유도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만이 옳다고 생각했던 고집스러움이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으로 부지불식간에 주변의 사람들을 괴롭게 했던 일이 있었다면 용서해주세요."
일을 쉬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시간의 소중함을 더욱 크게 느끼게 되었다. 한때는 하나님의 동행하시는 은혜에 둔감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깊은 자괴감에 빠져있을 때도 있었지만 새신자가 아니면서 새신자양육과정을 밟으며, 말씀묵상과 기도로 다시 십자가 앞에 바로 세워지는 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하나님과 함께 눈뜨고 함께 걷고 함께 눕는 매 순간이 소중하고 귀한 시간임을 고백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은 내가 혼자 있을 때에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심을 인지하는 것인데, 이것을 깨닫고 나서 나의 시간을 어떻게 채워야 할지에 대해서 '거룩한 부담감'을 갖게 되었다.
인기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보다는 시간을 지켜 10시 합심기도에 참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것이 분명하기에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그 뜻을 쫓기를 간구하게 되었다. 전에는 그저 시간 때우기나 인지못할 정도의 굳은 습관처럼 내 몸에 편하고 익숙한 했던 일, 믿음의 척도로 삼을만큼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일,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고백하면서 정작 하나님이 관여하시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영역에서조차 나의 행동과 습관을 점검하고 다시 돌아보고 하나님의 마음은 무엇인지 구하는 '새로운 주저함'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 당장 나를 해치고 병들게 하는 생각이나 행동이 아니라 할지라도, 결국 그것이 습관처럼 굳어버리게 되면 나태하게 만들고 깨어있지 못하게 만들 수 있고 더 나아가 내가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지 못한 게으른 육신을 입게 될 것이라는 깨우침을 주시니 습관처럼 아무런 의식없이 해왔던 말과 행동을 다시 되짚어보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이었을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습관이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싫어, 귀찮아, 짜증나, 피곤해, 니가 해.' 하는 말들을 생각없이 뱉어버리고, 피곤할 때면 습관처럼 티비앞에 앉아 멍한 상태로 시간을 보냈는데 하나님의 마음을 구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구하니 지금껏 생각없이 해왔던 습관들 앞에서 주저하게 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내 영과 육과 혼에 유익이 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구하게 되었다.
주 안에서, 주 안에서만 내 영혼이 안전하고 평안함을 고백하며 감사찬양을 드릴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시간을 더욱 귀하게 흘려보내기 위해 지혜를 구하다 사랑의 빚진 자의 마음으로 나의 시간으로 그 빚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시간대출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몇 시간 뚝딱 거리며 12장의 ppt를 만들어 페이스북에 올려 나의 시간을 의미있는 일에 사용하고 싶다며 지인들에게 나의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 감사했다. 밤 늦게 게시한 탓에 반응이 빠르지 않았지만 하나, 둘 호응을 느끼며 응원해주고 격려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문정동에서 청소년들과 건강하고 즐거운 마을살이로 문화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즐거운가'를 찾아갔다. 터전지기인 방글과 복실을 만나고 반가운 인사도 나누며 내 시간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을 나누었다. 반가워하셨다. 그 동안의 여러 상황과 지금의 어려움을 나누시며 내가 함께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사실 도움을 요청하고 싶으셨다 하는데 잘 왔다 싶었다.
하나님의 마음에 순종하는 것이 내게 복이고 기쁨이 됨을 알 수 있었다. 감사했다.
사랑의 빚을 지고, 사랑의 빚을 갚고, 세상의 빛이 되어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소망하며 하루를 하나님과 기쁘게 동행하고 그 뜻에 기쁘게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과도 비교할 수 있는 즐거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