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증인으로 사는 삶
주일 예배와 일과가 모두 끝난 저녁시간, 남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오늘의 간단한 안부를 서로 묻고나니, 동생은 본인의 설교에 대해 이것 저것 소감(?)을 묻는다.
남동생은 목회자인데, 그제서야 가족들에게 교회 홈페이지에 본인이 한 설교의 동영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도 가끔 목사님들의 설교 영상을 찾아 듣고는 하면서 동생이 사역하는 교회의 홈페이지는 정작 들어가볼 생각을 못해봤다. 어느 예배 설교담당이라는 이야기를 전해들으면 자신의 생각과 지식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단에 서게 해달라고 기도하였지만, 정작 영상이 있다는 생각까지는 미치지 못했었다.
주일 전날 동생의 설교영상을 찾아보며 좋았던 것과 고치면 더 좋을 것 같은 말의 습관이 있어 이야기해주었더니, 주일 사역을 다 마치고 나서야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이런저런 생각과 의견을 물으려고 한 것이다.
목소리가 좀 작은 것 같아. 좀 더 당당하고 자신감있게 이야기하면 좋겠어.
그런데 중반 이후에는 작은 목소리가 오히려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서 좋았어.
말을 시작하기 전에 스~하는 작은 소리를 내며 숨을 들이마시는 습관이 있더라. 아마 긴장되서인가봐.
마이크를 자주 만지던데, 음향이나 마이크 고정에 문제가 있는걸까.
"응, 그건 스캣같은 거야. 하하"
긴장감으로 티나게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습관을 재즈의 스캣같은 거라며 너스레떨며 받아치는 모습에 한바탕 같이 웃고 말았다.
"다른 목회자들의 설교는 어때?"
사실 동생은 자신의 설교가 어떤지, 기술적인 스킬의 능숙함등에 대한 궁금함보다는 정작 다른 사람에 관심이 있었다. 나는 몇 편의 설교를 들으며 내용보다는 느낌이나 표현력 등에 대해서 정도 소감을 나눌 수 있었다.
동생에게는 고민 아닌 고민이 있었다.
목회자의 설교(예배)와 삶의 태도가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평소 다른 교역자나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그럴싸한 핑계를 대며 차일피일 미루고 어렵고 궂은 일에는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기 바쁜 동료 목회자를 보며 마음의 불편함이 컸던 것이다. 동역자의 마음으로 후배 목회자들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본이 되자, 함께 하자고 권면하지만 더 긴 변명을 늘어놓으며 결국은 불편함만 남기고 대화의 자리를 떠나곤 하면서 예배중에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우리가 서로 섬기고 사랑하자고 힘주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마음의 짐이 되었다고 했다.
어렸을 적부터 동생의 생활태도나 가치지향적 고민과 삶의 방식에 대해서 지켜보고 가족으로써 오랫동안 함께 나누었던 나로써는 동생의 고민의 깊이와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주말동안 몇 편의 설교영상을 들으며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목사님들의 삶이 설교의 내용과 같다면...'
'목사님들은 성도들의 어려움과 고난에 어느 정도 공감하며 어느 정도 체감하며 말씀을 전하실까? 온전히 내 아픔으로 받아들이며 성도들을 목양할 수 있을까? 가능할까?'
"사실, 나도 내가 말씀 전하는 대로만 살아도 좋을텐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많지."
동료 목회자의 삶에 대한 안타까움, 믿음과 은혜로만 살지 못하는 아쉬움은 실상 이 시대의 어두움앞에 빛을 잃은 한국교회의 안타까움, 그리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끊임없이 동행하는 믿음을 소망하는 또 한 명의 목회자로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지에 대해서 다시 들여다 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감사했다.
"사실, 너의 설교말씀을 영상으로 들으면서 감사했어. 고난중에서라도 안개처럼 사라질 것에 마음 두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오직 하늘에 소망을 두자는 말씀을 몇 번씩 반복해 들으면서 감사하더라. 네가 7년이 넘게 교제하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도, 작은 누나가 회사에서 3년 넘게 마음쓰고 잘 가르쳐보려고 했던 팀원에게서 뒷통수를 맞듯 그 어려운 상황을 겪게 된 것도, 사람의 입맛에 맞추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과정으로 일하고 싶어서 일을 그만 둔 내가 6개월 째 쉬고 있는 것도, 우리 가족이 일원동에서 죽음의 공포까지 느끼던 그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도 모두 감사했어."
형제들아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1:12]
우리 가족 모두 너무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빌립보서 1장 12절의 말씀을 주셨던 것이 기억나서 동생과 다시 나누었다.
모든 일이, 모든 상황이 감사했다.
무거웠던 짐, 아둥바둥할수록 더욱 어렵게 옭아매었던 그 때 그 모든 것이, 그리고 지금의 삶의 무게까지도 은혜로 여겨졌다.
"설교를 준비하며 두렵기도 해. 내 삶으로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전해야할텐데...하는생각이 들거든."
"그렇지만, 기쁘고 재밌어. 준비하는 과정이 힘들고 피곤하기도 하지만, 이렇게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게 감사하고 즐거워."
너무 기뻤다. 너무 감사했다. 목회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기쁨이며, 전하는 대로 살기를 소망하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어린아이처럼 하나님앞에 선다는 고백을 듣는 일이 있다는 것이 감사했다. 동생의 삶을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겸비케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감격스러웠다.
한시간이 훌쩍 넘도록 길게 이야기를 나누며 축복의 메시지로 통화를 마쳤다.
"나는 너의 배우자를 위해 이렇게 기도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기쁨을 알고 매일 그 기쁨을 누리는 자, 오직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현숙한 그리스도인을 배우자로 허락해 달라고. 그리고 너와 함께 사랑으로 온전히 하나됨으로 연합하고 땅에 매이지 않고 천국에 소망을 두되 매일을 천국으로 사는 기쁨으로 감사로 사는 가정 이루게 해달라고. 하나님께서 분명히 우리의 소원을 이루실꺼야. 하나님 그 분의 영광을 위해"
매일을 하나님의 증인으로, 복음의 증거로 살게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어서 감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