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하지 않는 면접보기

불합격이어도 실패는 아니다.

by Sunny Day


지난 달 이력서를 써냈던 곳에서 지난 주에야 연락이 왔고 오늘에서야 면접을 봤다.


심사숙고하며 지원했으니 '됐으면'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좀 편한 마음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여러 달 여러 번의 면접을 거치며 '여기 아니면 안된다는 절실함'과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같은 것 아니고도 취업에 작용하는 요소는 너무도 많음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면접가는 길, 가을하늘 만끽하는 여유까지 부려본다.

집에서부터 1시간을 훌쩍 넘기고 거기다 빨간색 광역버스로 갈아타고 고속도로를 지나서 가야하는 꽤 긴 코스였지만 '여행삼아'하는 호기를 부리며 출발!


수원이라는 낯선 동네에 내려서 구글맵을 보며 큰 건물을 기준삼아 동서남북을 확인하고 안내하는 길따라 시장을 가로지르고 횡당보도를 두 번 건너 640미터를 걸었다.


요청한 시간보다 오분 정도 일찍 도착해서 다른 면접자와 함께 작은 상담실에서 십오분 쯤 대기하다가 면접장에 들어갔고 시작한 지 오분도 안되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알게 되었다.


채용공고에 정확한 직무를 명시하지 않아서 지원자들, 정확히는 오늘의 면접자들에게 큰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오마이갓!


당황스러움에 이어 허탈함이 밀려왔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결정해야했다. 애초부터 잘못 공고된 채용에 입사지원한 나는 심지어 면접까지 보게 되었는데, 그리고 오류가 있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면접에 임해야할까? 면접을 잘 봐서 통과되고 최종합격했으면 하는 기대는 면접을 시작하면서 이미 물건너 갔으니,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는 시간낭비라고 느껴지기 십상이었다.


일단 지금 주어진 이 시간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하자!

비록 잘못 꿰어진 구슬이지만, 어찌하다보면 보배는 아니더라도 꽤 괜찮은 준보석정도는 나올 수 있지 않겠는가.


기관의 실수와 최종검토하지 못한 자신의 실책이 드러나서였는지, 결과가 뻔한 면접을 위해 먼 길을 오가게 한 것이 미안해서였는지, 대표는 사십분 정도의 꽤 긴 시간동안 면접 아닌 면접을 진행했고, 나는 최선을 다해 나를 소개했다.


'나를 소개하는 시간'


그렇다. 그동안 어디서 어떤 과업을 통해 어떤 성과를 냈는지에 초점 맞춘 면접이 아닌 내 소개시간이었다. 나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생각과 가치관을 어떻게 일해왔는지를 이야기했다. 일이 중심이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었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막힘없이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아주 편하고 자연스럽게.

막연하게 업무경험을 나열하지도, 부풀린 자기자랑도 하지 않았다. 그냥 여기까지 어떤 마음과 가치, 철학을 가지고 그 길을 걸어왔는지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되고 말거야', '반드시 합격해야해'하는 어쩌면 당연한 포부와 부담을 빼고 나니 나를 포장하던 말들이 걷어지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 지금껏 진탕과 마른 땅을 수없이 지났던 그 길 위의 나를 아무 가감없이 소개할 수 있었다. 올해 본 면접 중 나를 가장 잘 표현했던 면접이었다.


그렇지만, 불합격이었다.


나와 또 한명의 남자 면접자, 그리고 면접관인 기관 대표도 면접을 시작하면서 이 면접의 결과를 미리 알고 있었다.


간단히 면접 소감과 공고의 착오에 대한 아쉬움을 밝히고 나오기 직전 면접관은 마무리 인사를 하며 면접을 끝냈다.


아이들을 위해 계속 일하고 있다면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또 만날 수 있을 거에요.


인사치레같은 그 말을 듣고 왠지 정말 그럴 것만 같아서 면접관의 얼굴을 한번 더 눈에 담고 나왔다.


오늘의 면접은 실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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