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진, 속초, 양양
1. 주문진 어민 수산시장 <홍게찜>
홍게찜은 강원도 여행에서 빼 먹을 수 없는 메뉴다. 그런데 항상 비싼 가격 때문에 갈 때마다 먹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메뉴기도 하다. 그런 나의 주머니 사정을 알아주는 주문진 어민 수산시장이 있다. 어민들이 직접 잡은 생선들과 홍게를 파는 곳으로 신선하고 시중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생물을 팔기 때문에 구입 후 시장에서 쪄 가거나, 근처 식당에서 테이블 값을 내고 먹을 수 있다. 찜 값이나 테이블 값을 내도 여전히 싸다. 식당에 비하면 물건 흥정부터 시작해 입에 들어가기까지 과정이 좀 번거롭게 느껴질 순 있겠지만, 그게 또 시장여행의 묘미인 듯하다. 어민들이 즐비해 있는 시장은 활기가 넘친다. 보통 홍게를 큰 대야에 넣어 파는데, 한 대야에 3만원부터 15만원까지 다양하다. 가격차이는 양도 있지만, 보통 크기에 따라 좀 다르다. 너무 작으면 먹을 살이 없고, 너무 크면 또 살이 덜 차기 때문에 보통 중간사이즈의 게를 먹는다. 보통 한 대야에 5-7만원짜리 홍게를 먹는다.(게딱지밥에 홍게라면까지 먹으면 성인 4명이서도 충분히 배가 부르다) 사실 홍게는 크기보다도 철이 중요한 것 같다. 요즘은 금어기 빼고 다 홍게 철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홍게는 추울 때가 제철이다. 2월이면 홍게의 거의 끝물이어서, 작년 11월에 먹었던 홍게보다는 좀 아쉬웠다.
어민시장에 갈 때마다 이용하는 식당은 어민시장 근처 선화네(웅이네건어물)다. 어디서 게를 사든 사장님들이 여기를 추천해주셨다ㅎㅎ. 이곳은 테이블비는 한 테이블당 2만원, 게라면은 1인분에 4,000원, 게딱지밥은 1개 2,000원으로 매우 합리적이다. 두둑한 홍게 봉다리를 들고 홍게 먹으러 왔다고 하면 사장님이 바로 찜기에 쪄서 주신다.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 날 잡은 게를 바로 쪄서 먹는데.. 이날은 특별히 소라도 한봉다리 샀다. 게가 나오면 사장님이 게살 잘 바르는 법 특강을 해주신다. 하지만.. 특강 듣는다고 다 만점 받지 않듯이 특강이 무색하게 게살 바르는건 늘 어렵다…ㅎㅎ 게딱지 밥과 홍게라면을 먹으려면 게 내장과 몸통을 남겨야 한다. 내장은 게 몸통을 게딱지에서 떼낼 때, 조심스레 분리하면 된다. 게라면을 먹으려면 몸통을 1-2개 정도 남겨야 한다. 작년 11월 여행에서 게 내장 남기는 설명을 동영상으로 남겨나 같이 올려본다. 반복학습이 중요하기에 게 다리 살 바르는 법을 남겼어야 했는데, 사장님 스킬에 감탄하다 놓치고 엉뚱한 걸 남겼다.. 홍게라면이 정말 풍미가 좋아서 대체 이게 무슨 라면인지를 놓고 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신라면부터 사리면까지 안 나온 라면이 없는데, 모두 정답 비켜갔다. 정답은 의외로 1차원적이었고, 또 납득이 가는 라면이었다. 바로 해물라면ㅎㅎ 다음에 집에서 킹크랩 삶을 때, 해물라면을 이용해야겠다.
2. 속초 범바위막국수 <막국수>
아침으로 두부를 먹은지 채 2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일찍 올라가야하는 일행 중 막국수 찐팬이 있어 또 먹으러 갔다. 사실 막국수는 내가 좋아하는 메뉴가 아니다. 특히 강원도 막국수는 빨간 양념을 베이스로 하고, 간혹 질긴 면이 있어 선호하지 않는다.(나의 최애 막국수는 고기리막국수다.) 그럼에도 강원도에 갈 때마다 막국수집을 들린다. 워낙 방대한 양의 막국수집이 있기에 나의 인생막국수 집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범바위막국수는 평점이 굉장히 높은데(네이버 지도 기준 4.7), 실제로도 나쁘지 않은 집 중 하나였다. 그래서 그런지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2시쯤 도착했는데도 사람들이 꽉 차 있었다. 이 집에서 나의 원픽은 물막국수다. 면에서 메밀향이 좀 부족하긴 했지만, 물막국수가 시원했다. 아침이 채 소화되기도 전에 먹었는데 이 정도 맛있었으면, 훌륭한 맛 아닐까싶다. 명태비빔막국수와 수육도 같이 시켰는데 둘은 그냥 그랬다. 비빔막국수는 고춧가루 양념이 너무 쎄게 느껴졌고, 수육은 나에겐 좀 퍽퍽했다. 나는 비계가 좀 있는 수육을 선호한다. 다음에 근처를 지나게 되면 다시 들릴 것 같다.
3. 야삼정식당 <물곰탕>
물곰은 물메기의 강원도 사투리다. 물메기는 곰치, 꼼치, 물곰 등으로도 불려진다. 물곰은 곰처럼 미련하고 퉁퉁하게 생겼다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옛날에 곰치는 못생기고 먹을 게 없다고 하여 잡히면 바로 바다로 버려졌다고 하는데, 요즘엔 동해바다 별미이자 인기 해장메뉴로 자리 잡았다. 물곰탕은 묵은지를 넣고 얼큰하게 끓이는 스타일도 있고, 무와 대파 마늘만 넣고 시원하게 끓이는 지리 스타일도 있다. 나는 맑은국물파라 항상 지리물곰탕 집을 찾아다닌다.
가격은 싸지 않다. 보통 1인분에 2-3만원이다. 사실 물곰은 70-80년대만 해도 버려지는 비인기종목이었다. 옛날에는 해장국으로 대구가 인기가 많았는데, 대구가 너무 비싸 대구 대용으로 물메기가 사용되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대구보다 물메기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최근 몇 년 새 금메기가 되었다고 한다..ㅋㅋ 겨울철 곰치 값은 대구 값을 뛰어넘은지 오래라고 한다.
나 또한 겨울에 강원도에 가면 꼭 물곰탕을 먹고 온다. 이번에는 매번 가던 식당 말고, 시내에 있는 새로운 식당을 도전해봤다. 가자마자 망설임 없이 물곰 3인분을 시켰다. 가격은 1인분에 25,000원인데, 이 또한 시세에 따라 변동하니 내년 겨울엔 또 오를지도 모르겠다. 맑은 국물에 무와 대파와 함께 끓여나온 물곰탕은 추운 몸을 사르르 녹여줬다. 야들야들하고 사르르 녹는 물곰 맛이 참 일품이었다. 물곰 식감은 덜 쫄깃한 아구 식감도 나고, 젤리같이 흐물흐물한 부분도 있다. 씹는 맛을 즐기는 사람들은 싫어할 수도 있다. 밥은 돌솥밥이 나온다. 가격은 비싸지만 양이 정말 푸짐했다. 처음에 식당에 갔을 때 우리 밖에 없었는데, 먹다보니 동네 분들이 하나 둘 팀을 이루어 오셨다. 동네 맛집인듯 하다..ㅎㅎ 근데 주민분들은 물곰탕보다 대부분 장치조림이나 가자미조림을 많이 시키셨다.
4. 감자바우 <감자옹심이>
사계절 불문하고 강원도에 가면 늘 먹고 오는 메뉴는 옹심이다. 옹심이는 강원도 아닌 곳에서는 잘 팔지도 않고, 서울까지 포장하는 집도 흔치가 않다. 감자 옹심이는 강원도 향토 음식인데, 감자를 갈아서 새알처럼 만든 수제비다. 원래 옹심이는 옛날 보릿고개 시절 쌀 대신 국에 넣어 먹던 음식이었다고 한다. 여행친구가 이번에 감자바우에 가보고 싶다하여 매번 가던 곳을 안가고 여기로 가보았다. 몇 년 전 식객 허영만의 백반기행에 나왔다고 한다. 방송을 타서 그런지, SNS 맛집인지 평일 점심인데도 관광객들로 붐볐다. 정말 까닥했으면 자리가 없어 못 먹을 뻔 했다.
메뉴는 간단하다. 감자 옹심이, 감자전, 회덮밥, 회국수, 회무침이 있다. 옹심이 2인분, 회국수, 감자전을 시켰다. 기대보다는 그냥 그랬다. 이 집 옹심이에는 밀가루 수제비가 같이 나오는데, 그 점이 별로였다. 그냥 감자옹심이만 들어갔다면 더 맛있었을텐데… 회무침류는 왜 같이 메뉴에 구성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옹심이 안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니면, 자칫 감자요리가 느끼할 수 있어서? 여름철용? 일단 회무침과 옹심이의 조합이 썩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껴졌고, 회무침 자체도 굉장히 자극적으로 느껴졌다. 옹심이의 슴슴한 맛을 헤쳐서 손이 잘 안 갔다.
옹심이집 포스팅을 하다가 급 나의 최애 옹심이집이 생각나 함께 올려본다. 이곳은 시내에서 설악산 쪽으로 가다보면 있는 샘물막국수라는 작은 식당이다. 기본에 충실한 옹심이 맛이다. 그리고 열무김치가 참 시원하다. 막국수는 그냥 그런 편..
5. 먹거리마을 <가자미 세꼬시>
참가자미 세꼬시를 먹으러 갔다. 참가자미의 주산지는 동해로 속초부터 포항까지 잘 잡히는 생선이다. 그래서 속초에 가면 오징어물회와 함께 가자미 물회 식당을 많이 볼 수 있다. 먹거리마을은 속초시 교동의 좁은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는 식당이다. 어부이신 사장님이 직접 잡으신 물고기로 장사를 하는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가격도 합리적이다. 이른 저녁에 식당에 갔는데 이미 동네 어르신들이 한 잔씩 걸치고 계셨다. 동네 핫플에 왠지 우리가 불청객으로 온 것 같아 불편한 마음도 있었는데, 또 그만큼 맛있는 집을 차장 온 것 같아 기대가 됐다.
이집은 참가자미 세꼬시가 유명한데, 이 외에도 그 때 그 때 잡는 고기가 달라 매일 메뉴가 조금씩 바뀐다. 식당 한 구석 칠판에 써 있는 오늘의 생선을 참고하면 좋다. 가자미회와 도루묵 구이를 먹고 싶었는데, 도루묵은 철이 지나 먹지 못했다. 한참 추울 때 와야 도루묵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다음 겨울을 기약하며 가자미 세꼬시 중자와 가자미 튀김을 시켰다. 세꼬시를 정말 잘 잡아주셔서 가시하나 안 걸리고, 고소했다. 특히 사장님의 특제소스를 곁들여 먹으면 세꼬시에 감칠맛이 더해진다. 가자미 튀김은 통으로 튀겨져 나오는데, 정말 예상보다 훨씬 맛있었다. 구이와는 또 다른 풍미와 고소함이 있다. 가자미 통구이는 잔가시는 바르지 않고 꼭꼭 씹어먹으면 더 맛있다.
세꼬시와 가자미 튀김을 다 먹고도 뭔가 아쉬움이 남아 도치알탕을 시켰다. 도치알탕은 처음 먹어본 음식인데, 물곰탕의 베이비 버전? 느낌이다. 겨울철이 제철인 생선인데, 식감은 전반적으로 야들야들한데 물곰보다는 덜 흐물흐물하다. 도치의 특징은 알이다. 사진처럼 탕에 알이 수북하다. 알 매니아라면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이다. 묵은지를 베이스로 한 알탕인데, 보는 것과 달리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맑은탕이 아니라 걱정을 많이 했는데, 묵은지 베이스라 끝맛이 은근히 개운했다. 계절마다 찾아가고 싶은 곳이다.
6. 바우카페 <흑임자라떼>
강릉의 카페 툇마루는 강릉 여행객이라면 이제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해졌다. 3년 전 강릉여행에서 두부를 먹으러 가는 길 작은 가게에 긴 줄이 늘어져 있어 호기심에 갔는데, 커피 주문 예약을 위한 줄을 서고 있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는데, 그게 바로 카페 툇마루였다. 그 다음 여행에서 운이 좋게 대기가 없어 툇마루 커피의 시그니처인 흑임자 라떼를 먹을 수 있었다. 대기가 없었다는 게 커피를 바로 먹었단 얘기는 아니다. 커피 주문을 위한 대기가 없었다는 말이다. 주문 후 1시간 반 후에 찾으러 오라고 번호표를 줬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먹었는데도 흑임자 커피가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그 후로도 먹고 싶어 강릉에 갈 때마다 툇마루를 기웃거렸지만 매번 더 길어져 있었다.
3년 전 마신 그 커피가 내 생애 마지막 흑임자라떼라고 생각했는데, 최근 근처에 툇마루 사장님 가족이 커피집을 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게 바로 바우카페다. 사장님 어머니가 운영하시는 곳인데 사천진 해변 카페거리에 있다. 여기는 사람이 늘 있긴하지만, 줄을 서거나 그러진 않는다. 맛은 둘 다 먹어본 나로썬 큰 차이를 못 느끼겠다. 큰 차이라면 카페 분위기다. 감성인테리어로 많은 여행객들을 유혹하는 툇마루와는 달리 바우카페는 어딘가 엄마집같은 인테리어다ㅎㅎ. 그래서 그런지 중년의 어머니 손님들이 많다. 줄 서는 걸 싫어하는, 아니 줄 서면 안 먹고 마는 나에게는 정말 반가운 곳이다. 근데 이 바우카페가 용산 삼각지에도 생겼다. 혹자는 강원도의 그 맛이 안난다고 하는데, 나는 크게 다른 점을 모르겠다.
강릉 바우카페를 즐기는 팁이 있다. 바우카페 바로 앞이 사천진 해수욕장인데, 작은 캠핑의자를 챙겨가면 어느 카페 부럽지 않은 커피타임을 즐길 수 있다. 물론 날씨가 도와줘야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