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도문 돌담마을과 외옹치바다향기로
상도문 돌담마을
속초 여행을 오랜만에 왔다. 속초에는 설악산이란 명산이 있기에 늘 인기있는 여행지 중 하나지만 평창 올림픽, 강릉의 커피열풍, KTX 개통, 서핑열풍 등으로 인해 최근 다른 도시들에 비해 속초의 인기가 좀 떨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 또한 10년 전만해도 강원도 여행하면 속초에 자주 갔었는데, 최근 몇 년동안은 강릉이나 정선, 양양에 자주 갔지, 속초는 지나가다 물회 포장하는 코스로만 스쳐 지나간 것 같다. 사실 이번 속초여행도 원래 가려던 양양에 원하던 숙소가 예약이 안되서 차선책으로 가게됐다. 속초가 언제 이렇게 찬밥신세가 된건지..ㅎㅎ 오랜만에 만난 속초는 그모습 그대로인 곳도 있었지만, 또 새로운 모습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 여행은 속초를 재발견한 그런 여행이었다. 그 중 하나가 상도문 돌담마을이다.
돌담마을은 설악산 자락에 있는 고풍스러운 한옥마을이다. 500년이 된 유서깊은 마을인데, 돌담 안에 고즈넉한 한옥들은 그 세월과 전통을 고스란히 담고있다. 마을에 들어섰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건 대문이 없는 집들이었다. 다들 꽁꽁 숨기고 서로를 경계하느라 도어락에 보조키까지 설치하는 세상에 살다 대문없는 마을을 보고 있으니 마을의 따뜻함이 느껴졌다. 게다 뒤로 펼쳐진 설악산 풍경은 마을에 운치를 더해줬다. 이 곳은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실제 마을 주민분들이 생활하시는 마을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한옥이 더 정겹게 다가왔다. 아기자기 꾸며논 텃밭이며, 돌담 넘어 말리고 있는 양미리,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동네 고양이들한테서 친근함이 느껴졌다.
속초에 올 때마다 설악산을 그렇게 올랐는데 왜 돌담마을을 이제야 찾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담마을의 역사는 길지만, 돌담마을이 관광브랜드로 자리잡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2018년 속초가 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에 선정되면서, 돌담마을의 아름다움이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문화특화지역조성 사업은 지역의 특화된 문화자원을 활용하여 지역 자체가 고유브랜드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사업이다. 이런 정부사업이라면 언제든지 두 팔벌려 환영이다. 속초는 2018-2020년 상도문 돌담마을을 중심으로 문화마을형 사업을 추진하였고, 현재는 문화 도시형 사업을 추진중이다.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을 곳곳에는 아기자기한 조형물들이 놓여있다. 자연 속 돌담과 한옥이 어울어진 마을 풍경이 주는 멋도 상당한데, 마을 곳곳에 다양한 스톤아트 외의 작품들구경에 재미를 더해준다.
아래 사진은 마을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문화공간 돌담이다. 원래는 마을 주민들이 창고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기능을 상실하고 놀고 있던 폐창고를 리모델링하여 최근 문화거점공간으로 재활용중에 있다. 문화공간에 들어가면 주민들이 창작한 다양한 작품들이 있다. 주민들이 문화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작성한 글이나 그림일기 등이 전시중이다. 이 외에도 속초 여행 관련 책자와 돌담마을에 관한 정보와 같이 관광객들이 관심있어할만한 정보들이 매우 풍부하다. 이 곳은 관광객들에게 속초를 소개하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을 주민들의 각종 모임,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 되고있다고 한다.
돌담마을은 최근 갔던 여행지 중 정말 마음에 드는 여행스팟이었다. 요즘은 어딜가든 조금만 유명세를 타면 획일화되는 관광지들에 종종 실망할 때가 있다. 어딜가나 스타벅스가 들어오고 관광지가 조금만 유명해지면 그새 요즘 트렌드에 맞춘 시멘트를 잔뜩 바른 카페와 숙박업소들이 즐비하게 되면서 관광지는 본인의 색깔을 잃어버리곤 한다. 옛 전통을 그대로 간직한 돌담마을의 심심한 매력에 푹 빠졌다 온 시간이다. 한 가지 마음에 걸렸던 건 실제 주민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유명해지면 주민들의 생활이 불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가끔 이런 정부 사업들을 보면 제일 중심이 되야할 주민들이 뒷전인 경우가 많은데, 이 문화사업은 주민들의 삶의 공간을 활용한 만큼 정부에서 주민을 배려하는 방향으로 계속 진행되길 바란다. 나는 너무 행복한 시간었는데, 그 시간이 나만 행복한 시간이 아니길 바란다.
아직 늦겨울이라 앙상한 가지만 드러낸 나무들 뿐이었는데, 꽃이 피는 봄이 오면 꼭 다시 한번 돌담마을에 들리고 싶다.
돌담마을을 한 바퀴 돌고 몸도 녹일 겸 따뜻한 커피를 마시러 마을 안 카페에 갔다. 이름은 도문道門 카페. 카페가 두 곳 있었는데 망설임 없이 한옥카페로 향했다. 카페 입구에 딱 도착했는데, 뿌리칠 수 없는 호객꾼들을 만났다. 바로 두 고양이 녀석들. 도문카페에 사는 고양이들 같은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지 무장해제로 꿀잠을 자고 있었다.
도문은 분위기도 좋은데 커피맛이 참 좋았다. 사실 큰 기대를 안하고 시켰는데, 밸런스가 참 좋았던 커피로 기억한다. 나중에 찾아보니 사장님께서 딥블루레이크의 딥 원두를 사용하신다고 하여 조용히 장바구니에 원두를 넣어다. 내 커피의 문제가 원두는 아니겠지만..ㅎㅎㅎ 그리고 그냥 평범해 보이는 저 머그컵이 그립감이 참 좋았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또 가면 누구 작품인지 알아오리라. 저녁을 일찍 먹으러 갈 계획이라 주문할 때 치즈케익 한조각만 시켰는데, 옆 테이블에서 크로플을 시켰다. 버터 풍미가 온 카페에 솔솔 퍼져서 추가 주문을 안하고 배길 수가 없었다. 안 시켰으면 큰일 났을 뻔 했다. 바삭바삭하고 버터 향이 고소하니 정말 맛있었다. 한참을 햇볕을 맞으며 커피타임을 즐기다가 나왔다.
외옹치 바다향기로
속초 바다 구경을 왔다가 정말 멋진 바다산책로를 만났다. 이름도 바다내음 가득한 ‘외옹치 바다향기로’라는 산책로다. 이 길은 속초사잇길 5코스 중 속초해변길에 포함된 곳이다. 속초해변길은 속초 해변 - 송림 산책로- 새마을 - 외옹치- 대포항전망대 -대포항 구간으로 편도로 약 1시간 30분이(1.8km) 걸린다. 외옹치 바다향기로는 속초해변길 중 외옹치부터 속초해변까지인데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다녀오면 왕복 1시간 정도 걸린다. 속초해수욕장에서 출발해도 되고, 외옹치항에서 출발해도 된다. 이 길은 2018년에 준공 된 길인데, 안타깝게도 작년 9월 하이선으로 산책길이 유실되었었는데, 복구공사를 거쳐 작년 12월부터 다시 개방됐다.
바다향기로는 길 자체는 크게 험하지 않았는데, 바닷바람을 맞으며 걷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바다향기로는 흙길로 시작해서 나무데크길로 이어지는데, 풍경이 정말 끝내준다. 산책로를 걸으면 정말 눈이 시릴 정도로 시원한 동해바다를 만난다. 동해는 수심이 깊다보니 남해바다와는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남해바다는 에메랄드빛 푸른 바다가 지평선에 닿을 것 같이 드넓었는데, 동해바다의 짙푸른 색은 깊은 바다를 보여줬다. 이 산책로의 좋은 점은 바다를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온 몸으로 느끼며, 바다향기를 맘껏 맡을 수 있는 산책로다. 산책길을 걷다 보면 안보철책선이 나온다. 이곳은 바다향기로가 조성되기 전까지 안보지역으로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는 곳이었다. 1968년 울진 삼척의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군사경계철책으로 가로막혔다가, 최근 남북 간 화해의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66년만에 개방되었다고 한다.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철책선의 일부는 철거하지 않고 보존해 두었다.
양양 죽도
양양에 햄버거를 먹으러 왔다가. 가게 앞에 있는 죽도에 들렸다. 죽도는 양양 8경 중 하나로 송죽이 사시사철 울창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죽도는 과거에는 섬이었는데 현재는 육지에 연접해있다. 섬에 간다하니 뭔가 굉장히 거창할 것 같지만, 40분 정도 걸리는 짧은 산책길이다. 성황담이란곳에서 시작하여 죽도전망대-죽도정-부채바위,신선바위-죽도암 코스로 이어진다. 섬의 한쪽에는 죽도해수욕장이, 다른 한쪽에는 인구해수욕장이 있어 섬에 오르면 멋진 바다풍경을 쉼없이 볼 수 있다.
철제로 된 바다길을 따라나오면 자그마한 죽도암이 나온다. 고양이암자라고 불러도 될만큼 고양이가 많았다. 스님들이 챙겨주시는 애들 같은데, 얼마나 잘 먹었는지 다들 토실토실하다. 암자 구석구석에 놓여있는 앙증맞은 동자 조각들이 귀여움을 더해준다. 산책을 마치고 나오는데, 죽도해수욕장에 서핑객들이 보였다. 이날 영하의 날씨여서 우리는 주머니마다 핫팩을 넣고 다녔는데 서핑을..! 한참을 구경하다 산책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