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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g satisfied Apr 14. 2022

22’04 속초 칠성조선소

속초 커피맛집

속초의 독립서점을 소개하는 글에서 칠성조선소를 본 적이 있다. 지난 속초 여행 때 가고 싶었는데 시간이 부족해 못 갔다. 근데 마침 친구가 조선소 커피가 맛있다고 하여 이번에 들리게 됐다. 이곳은 3대에 걸쳐 배를 만드는 조선소인데, 최근 복합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1952년 피난을 내려와 원산조선소라는 이름으로 조선소를 시작해 칠성조선소로 이어진 이곳에는 조선소 가족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함께 배를 만들었던 목수들, 엔지니어들의 삶이 곳곳에 담겨있다. 조선소가 활발하게 운영될 때는 배의 갯수를 세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배들이 이곳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최근에는 어획량도 배도 많이 줄어 2017년 칠성조선소는 문을 닫았는데, 칠성조선소의 레저선박부가 와이크래프트보츠로 독립하여 조선소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와이크래프트보츠는 카누나 카약을 제작하는데, 상시 제작은 아니고 주문이 들어오면 제작을 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조선소로 사용되던 공간들은 현재 카페 조선소쌀롱, 카누/카약 제작소인 Y Craft Boats, 서점 동그란 책으로 운영되고 있다.   


칠성조선소의 입구에는 조선소의 65년 역사가 담긴 미니박물관이 있다. 1952년부터의 사진자료 외에도 선박제작에서 사용된 선박제원과 선박용어들이 전시되고 있다. 사실 더 많은 자료가 있었는데, 2002년 태풍 피해로 많은 자료들이 손실되었다고 한다.

칠성조선소 미니박물관
칠성조선소의 역사
미니박물관에서 조선소의 역사 뿐만 아니라 선박용어들이나 도면들도 전시하고 있다.

조선소 안으로 들어가면 옛 칠성조선소 건물과 칠성조선소의 협력사인 협성기계의 작업장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칠성조선소의 마지막 목선이 전시되고 있다. 목선은 선박제작에서 나무를 다루는 기술로 나무 틈 사이로 물이 세지 않게 하기 위해 나무를 다듬는 작업에 해당한다. 현재는 새로운 기술로 대체되었지만 과거에는 목수들이 직접 제작하였다. 조선소에 전시되어 있는 마지막 목선은 속초에서 배 목수로 활동하셨던 전용원 목수님이 20년 만에 재현해본 목선이다. 조선소의 목선은 마지막이겠지만, 조선소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계속해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칠성조선소에는 일반 카페가 주지 못하는 조선소만의 분위기가 있다. 아무리 멋지게 인테리를 한다고 해도 칠성조선소에 묻어있는 그 세월과 추억을 보여주진 못할 테니까. 그래서인지 스토리 덕후인 나에게 칠성조선소란 공간은 그 어느 카페보다 좋았다.  


조선소 한쪽에는 현재 카페로 운영 중인 조선소쌀롱이 있다. 이 곳 커피가 정말 맛있다는 소문을 들어 기대를 품고 갔는데 정말 카페 입구부터 구수한 커피내음이 솔솔 났다. 커피를 안 사고 베길 수가 없었다. 오후에 커피를 마시면 잠을 설치는 나와 친구들은 다음날 재방문을 기약하며, 원두와 작은 에스프레소를 한 컵 샀다. 이 날 오후 내내 차 안의 그 작은 에스프레소 컵 밖으로 고소한 커피 향이 나서 커피 앓이를 했다. 첫 방문한 날은 금요일이라 조선소가 상당히 한적했다. 바다를 보면서 여유롭게 커피 마실 생각으로 다음날 조선소를 다시 방문했다가 깜짝 놀랐다. 토요일의 조선소는 관광객들로 만원이었다. 카페 안은 만석이었고, 강풍이 부는 외부도 사람이 많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는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서 차에서 마셨다.


칠성조선소에는 선박의 우현을 의미하는 ‘스타보드’와 선박의 좌현을 의미하는 ‘포트’ 두 가지 원두가 있다. 스타보드는 에티오피아 싱글오리진으로 꽃향과 단맛이 나는 산미가 있는 화려한 맛이다. 포트는 조선소쌀롱의 시그니처 블렌드로 고소하고 밸런스가 좋은 커피다(원산지는 브라질). 나는 보통 식후 커피는 산미가 있는 커피를 선호한다. 보통은 고소하고 묵직한 커피를 안 좋아하는 편인데, 조선소쌀롱은 포트와 스타보드 둘 다 맛있었다. 특히 포트는 평소 내가 안 좋아하는 커피 종류인데도 고소하고 밸런스가 좋아 정말 맛있게 먹었다.

조선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조선소쌀롱
카페 안 안전제일 구조물이 조선소 분위기를

카페 맞은편에는 동그란책이란 작은 서점이 있다. 이 서점은 조선소 사장님네 가족이 실제로 살던 곳인데, 리모델링을 통해 책방으로 변신했다. 책 종류가 많지는 않았고 동화책이 주를 이루고 있다. 구석구석 살펴볼수록 가족단위로 오면 참 좋은 곳이라는 생각들었다. 요즘 인기스타인 이수지 작가님의 책들도 구비되어 있었는데 <그늘을 산 총각>이란 책을 구입했다. 내용은 욕심쟁이 동네 영감이 본인의 나무 그늘에서 쉬려면 돈을 내라고 하자 동네 청년이 그늘을 아예 사버린다. 그 후, 청년은 나무 그늘이 드리우는 곳이면 어디든지 갔고 영감네 집 담 넘어까지 넘어가 욕심 많은 영감이 골탕을 먹는 얘기다. 어려서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전래동화다. 내용보다도 책의 구성과 일러스트가 독특해서 구입했다. 새 책을 원했는데, 재고가 없고 언제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여 충동적으로 득템을..ㅎㅎ 요즘 종종 동화책을 사는데, 글과 그림이 잘 어우러진 책은 문학작품을 넘어 미술작품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동그란 책 서점 건물(왼), 서점 내부(오)
이번 여행을 함께 해준 나의 친구들. 갑작스런 제안이었는데도 기꺼이 함께 여행해줘서 고맙고 즐거웠다.
동그란 책에서 구입한 이수지 작가의 <그늘을 산 총각> 무심한듯한 붓놀림 몇 번으로 이야기를 담아낸 일러스트가 참 멋있다.

조선소쌀롱에 또 가고 싶은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야외공간이다. 조선사업에 사용하던 설비들을 무심한 듯 툭 배치해놓은 야외공간에서는 탁 트인 바다를 보며 커피를 마실 수 있다. 평일에 왔을 때는 날씨도 맑고 사람도 거의 없어 친구들과 바다 구경을 실컷 하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봄이나 가을에는 햇살을 맞으며 책 읽기에도 참 좋은 공간이다. 조선소 폐업으로 그냥 폐허가 됐을 수도 있는 이 공간이 서점으로, 카페로, 공연장으로 다시 재탄생해서 사람들과 호흡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자신들의 방식으로 가업을 이어나가는 모습에서 2대째 속초에서 독립서점을 운영 중인 동아서점이 떠오르기도 했다. 폐업의 위기에서도 새롭운 모습으로 가업을 이어온 만큼, 칠성조선소가 속초의 터줏대감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으면 좋겠다.

옛 조선소 설비들을 활용한 야외공간(왼), 서점에서 구입한 책을 언박싱 중인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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