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철 서해안 맛 기행
가을 전어가 있다면 봄엔 주꾸미가 있다. 대천에 내려간 김에 옆 동네에 있는 서산회관에 들렸다. 친구가 추천한 식당인데, 주꾸미 철인 4월에 꼭 가야 한다고 해서 들리게 됐다. 서산회관은 주꾸미 철판볶음 전문점인데, 주꾸미 생물만 취급한다. 그래서 주꾸미 철이 아닌 가을이나 겨울에 가면 주꾸미 대신 낙지볶음을 판다고 한다. 주꾸미는 3월부터 수온이 따뜻해지면 먹이를 찾아서 서해로 몰려든다고 한다. 특히 봄에는 산란기여서 머리에 알이 두둑하고, 알을 낳을 준비를 할 때여서 주꾸미에 영향소가 가장 많을 때라고 한다.
보통 어망으로 주꾸미를 잡는데, 산란기 때는 주낙을 이용하여 주꾸미를 잡는다. 주꾸미는 산란기에 알을 낳기 위해 소라 껍데기 같은 곳으로 들어가는데, 이를 이용한 어획방법이다. 주낙은 줄에 소라껍데기를 달아 바다로 던지는 낚시법으로, 줄을 걷어 올리면 주꾸미를 산채로 잡을 수 있어 신선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서산회관의 시그니처라고 할 수 있는 주꾸미 철판볶음을 시켰다. 매운 걸 잘 못 먹는 편이라 볶음요리를 안 좋아하는데, 굉장히 맛있게 먹었다. 얼핏 보면 매워 보이는데 밥 없이도 먹을 만큼 자극적이지 않았다. 주꾸미를 먹을 때 주의할 점은 너무 오랫동안 익히면 안 된다는 점이다. 오래 익히면 질겨지기 때문에, 다리는 살짝 데쳐 먹어야 한다. 반면에 알이 가득한 머리는 오래 익힐수록 맛있다. 산란기 주꾸미 머리에 가득 찬 알은 모양이 꼭 밥알 같아 주꾸미 밥알이라고도 한다. 주꾸미 알은 덜 익으면 투명하다. 하얗게 고슬고슬 지어진 쌀밥처럼 잘 익혀 먹으면 굉장히 고소하다.
주꾸미 볶음을 다 먹고 나면 남은 소스에 면사리와 볶음밥을 먹을 수 있다. 주꾸미가 익으면서 나온 육수 소스 베이스에 개운한 미나리와 함께 볶아진 볶음밥은 감칠맛이 정말 좋았다. 과식을 부르는 맛. 사실 가기 전에 온라인 후기들에 불친절하고 간혹 위생상태가 더럽다는 말이 있어서 걱정했었다. 오래된 식당이라 그렇게 느꼈을 수 있겠다. 이 식당은 최상의 서비스와 분위기보다는 맛있는 로칼 음식을 맛보고 싶은 여행자에게 추천한다.
서산회관 근처 5분 거리에 홍원항이 있다. 작은 항구인데 어시장과 방파제가 있어 식사 후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어민들이 그날그날 잡은 해산물들을 거리에서 파는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이하게도 아직도 나무상자에 생선을 팔아서 조선시대(?) 수산시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시장에 들어서면 주꾸미를 비롯한 제철 해산물부터 시작해 갈치, 병어 등 갖가지 생선들이 즐비해있다. 가격도 시중보다 저렴해서 한가득 사 오고 싶었지만, 큰일이 될 것 같아 참았다. 잘 참았다. 어시장을 지나면 홍원항 방파제가 나타난다. 방파제를 따라 수십대의 선박들이 오밀조밀 늘어서 있는 모습이 또 하나의 장관이다. 방파제 끝, 밤에는 바다의 불빛이 되어주는 홍원항의 빨간 등대는 낮에는 관광객들에게 아름다운 바다 풍경을 선사해준다.
대천에 갈 때마다 항상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있다. 대천어항이다. 보령 사람들은 ‘어항’이라고 한다.ㅎㅎ 노량진 수산시장의 대천판이라고 보면 된다. 바다 도시라 더 싸진 않고, 신선한 서해안 해산물을 먹으러 가기 좋은 곳이다. 4월 제철 해산물에는 주꾸미, 키조개, 갑오징어가 있다. 특이 주꾸미와 키조개는 아직 양식에 성공하지 못해 제철에 먹는 맛이 있다.
원래는 간단히 회를 뜨러 간 건데, 해산물 덕후는 해산물 앞에서 이성을 잃고 마구마구 주워 담았다. 샤브샤브용 주꾸미와 키조개, 회로 먹을 멍게, 갑오징어, 작은 도다리 한 마리를 샀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너무 많아 회 포장을 주문하고 거의 40분 가까이 기다린 것 같다.
주로 서남해 일대에서 잡히는 갑오징어 제철은 봄과 가을인데, 맛으로 따지자면 산란철인 봄이 제철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해산물들이 산란기 때는 영양소도 풍부하고, 살이 연해져 부드러운 식감을 맛볼 수 있다. 갑오징어는 일반 오징어와 다르게 회처럼 얇은 포로 떠서 나온다. 산오징어와는 또 다른 담백하고 독특한 오징어 식감을 느낌 수 있다.
키조개는 여름 산란기 전 4-5월에 살이 통통하게 올라 가장 맛이 좋다. 키조개 내장에는 독성이 있어 손질이 까다롭기 때문에, 구입 시 손질을 해달라고 하는 게 좋다. 어시장에서 샤브샤브용으로 주문했더니 얇게 슬라이스까지 해주셨다. 사실 새조개를 사 오라는 어머니의 주문을 키조개로 잘못 알아듣고 사 온 거였는데, 너무 맛있어서 놀랬다. 특히 관자 부위가 정말 부드럽고 달아서 꿀떡꿀떡 넘어갔다.
해산물 덕후에게 봄의 서해안은 가을 서해안 못지않게 매력적인 곳이다.. 내년 봄을 기약하며
주낙 사진출처: https://www.crowdpic.net/photo/%EC%96%B4%EC%97%85-%EC%82%B0%EC%97%85-%EC%A3%BC%EB%82%99%EC%9E%AC%EB%A3%8C-%EC%86%8C%EB%9D%BC%EA%BB%8D%EB%8D%B0%EA%B8%B0-%EB%82%9A%EC%8B%9C%EC%9E%AC%EB%A3%8C-8030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