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장어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1. 여수 조일식당
올 겨울 여수 방문 때, 조일식당이 문을 닫는 바람에 못 갔다. 월성소주코너에서 먹은 삼치회도 괜찮았지만,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그래서 여수에 도착하자마자 조일식당으로 갔다. 작년 봄에 방문했을 때, 이른 저녁이었는데도 테이블이 꽉 차 자리가 없을까 조마조마하며 갔는데, 자리에 꽤 여유가 있었다. 식당에 도착했을 때 예전의 조일식당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리모델링한 조일식당이 눈앞에 있었다. 리모델링을 하면서 가게 확장을 해서 그런지 전보다 더 많은 인원을 수용하는 것 같았다. 리모델링을 해서 전보다는 전반적으로 더 깔끔해진 느낌이긴 한데, 첫 방문 때 느꼈던 조일식당 특유의 그 분위기가 사라진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
조일식당의 메뉴는 고민할 게 없다. 선어회와 튀김뿐이다. 우리는 둘이서 선어회 소(40,000원)와 새우튀김(15,000원)을 시켰다. 선어회는 삼치가 기본이고, 계절에 따라 함께 나오는 생선이 바뀌는 것 같다. 작년 봄에는 민어를 같이 주셨는데, 이번에는 병어회를 같이 주셨다. 선어회는 주문하면 거의 바로 나온다. 삼치회는 여전히 맛있었다. 선어회라 정말 부드러운데, 비린내도 전혀 안 난다. 작년에 방문했을 때, 사장님이 친절히 선어회 즐기는 법을 알려주셨다. 김에 삼치회를 얹고 갓김치와 조일식당 특제소스를 살짝 올려 먹는 방식이다. 삼치회는 지방이 많아 많이 먹다 보면 좀 질릴 수가 있는데, 갓김치가 그 느끼함을 싹 잡아준다. 여수는 갓김치로도 유명한데, 개인적으로는 조일식당 갓김치가 제일 맛있다. 튀지 않고 밸런스가 좋은 맛이랄까. 선어회가 나왔을 때 병어회가 있어 기대했는데, 많이 아쉬웠다. 병어는 5-6월이 제철인데, 철이 좀 지나서 그런가. 병어 특유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보다는 억센 맛이 나서 아쉬웠다.
조일 식당은 튀김도 꼭 시켜야 한다. 새우튀김을 시키면 쑥, 고구마 같은 야채튀김도 같이 나온다. 쑥 튀김을 워낙 좋아해서 새우보다 쑥 튀김이 더 반가웠다..ㅎㅎ 새우도 야채도 전부 바삭하니 정말 맛있었다. 튀김은 언제나 옳으니까. 식사를 다 마칠 때쯤이면 삼치 머리 구이를 내주신다. 머리 부위인데도 살이 도톰하니 꽤 된다. 마무리로 매운탕을 기다리는데, 매운탕 메뉴가 없어졌다고 한다. 작년 방문 때 매운탕을 정말 맛있게 먹었었는데, 없어졌다니…! 여담이지만, 식사를 하다 보니 전에 테이블마다 다니시며 삼치회 먹는 법을 알려주시던 사장님은 안 보이시고, 뉴페이스의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젊은 분이 보였다. 직원에게 슬쩍 물어보니 사장님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으셨다고 한다. 물려받으시면서 리모델링과 함께 약간의 변화를 꾀하신 것 같다. 옛 노포가 주던 분위기가 없어져 살짝 아쉬웠지만, 새로운 조일식당의 앞날을 기대해본다.
2. 정다운 식당 꽃게장과 돌게장
여수에 올 때마다 가장 고민하는 게 어느 집 게장을 먹을 것인가다. 돌게장이냐 꽃게장이냐. 가본 집이냐, 새로운 집이냐. 고민을 하다 친구가 추천한 정다운 식당에 게장을 파는 걸 보고 이리로 갔다. 정다운 식당은 물메기탕으로 허영만의 백반기행에도 나온 집이다. 허영만 추천식당과 잘 맞는 편이라 걱정 없이 들어갔다. 꽃게 삼총사(꽃게탕+암꽃 게장+양념꽃게장)(30,000원) 정식과 돌게 삼총사(돌게탕+돌게장+돌게 양념게장)(15,000원)을 각각 하나씩 시켰다. 꽃게와 돌게 삼총사는 반찬이나 다른 구성은 다 같고, 게장이 돌게냐 꽃게냐의 차이다. 꽃게장과 돌게장을 동시에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집은 꽃게장이 정말 맛있다. 싱겁게 먹는 나에게 돌게장은 양념이 너무 셌고, 꽃게장이 간이 정말 좋았다. 살짝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간이 심심해서 밥을 많이 먹지 않고도 게장을 즐길 수 있었다. 그리고 의외의 숨은 메뉴. 꽃게탕! 삶은 꽃게는 안 좋아하는 편이라 기대를 안 했는데, 정말 부드럽고 고소해서 맛있게 먹었다. 된장 베이스에 푹 익힌 꽃게가 정말 맛있었다. 꽃게살이 두둑해 게살 향이 훅 들어왔다.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꽃게장이 너무 맛있어 가족들한테 배송을 보내려 했는데, 여기는 돌게장만 포장을 하신다고 한다. 꽃게장의 경우, 굉장히 예민해서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맛이 변할 수 있어 포장을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여수에 와서 먹는 걸로..!ㅎㅎ
3. 경도회관 갯장어 사시미와 샤브샤브
경도회관은 이번 여수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볼 수 있다. 올 겨울 여수에서 붕장어 샤브샤브를 정말 맛있게 먹었는데, 사장님이 여름 갯장어 샤브샤브는 훨씬 더 맛있고 하여서 망설임 없이 여수로 또 휴가를 왔다. 갯장어는 따뜻한 바다에서 서식하기 때문에, 봄여름철 주로 남해안에서 잡힌다. 5-10월에 남해바다에 출몰하는데, 가장 맛있는 때가 7-8월이라고 한다. 크기로만 봐도 붕장어 평균 크기가 1미터라면 갯장어는 2.2미터에 달할 만큼 훨씬 크다. 여름 갯장어는 보양식으로도 손에 꼽힌다. 사실 갯장어와 붕장어의 영양성분의 거의 다 비슷한데, 갯장어가 붕장어보다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더 높다. 갯장어를 많이 소비하는 일본에서는 7월만 넘어가도 갯장어의 지방 함유량이 높아져, 6-7월에 먹는 갯장어를 최고로 친다고 한다.
2명이서 갯장어 사시미와 샤브샤브 세트를 시켰다(소, 120,000원). 장어회는 처음 먹어보는 것 같다. 샤브샤브가 나오기 전, 갯장어 사시미가 나왔다. 처음 먹어보는 맛이었는데, 맛이 좋았다. 처음엔 쫄깃한 듯하면서도 지방 때문인지 씹다 보면 금새 부드럽게 장어 살이 녹아내렸다. 은은한 고소함이 느껴졌다. 정말 순식간에 회가 사라졌다ㅎㅎ 회를 먹고 나니 갯장어 샤브샤브가 나왔다. 갯장어 샤브샤브는 갯장어 뼈와 야채를 넣고 끓인 육수에 장어를 살짝 데쳐먹는 샤브샤브다. 살짝 데친 갯장에 살에 부추나 양파를 올리고 간장소스를 얹으면 정말 맛있다. 장어 샤브샤브는 10초에서 15초 사이로 정말 살짝 익혀야 한다. 너무 오래 익히면 살점이 부스러진다고 한다. 직원 분의 말을 못 믿고 푹 익힌 친구는 부스러진 장어를 직접 경험했다.ㅎㅎ 붕장어와 갯장어 샤브샤브를 둘 다 먹어봤는데, 솔직히 말하면 샤브샤브는 큰 차이를 모르겠다. 붕장어가 좀 더 부드러웠던 것 같기도 한데,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면 가려낼 수 있는 정도의 차인가 싶다. 반찬 중에 정말 맛있었던 건 갯장어 뼈 튀김이다. 갯장어 뼈는 딱딱한데, 여름철에 뼈가 부드러워진다고 한다. 철이 지나면 잔뼈가 딱딱해져 이렇게 튀김으로는 먹을 수가 없다고 한다. 처음엔 이게 뭐지 했는데, 한 입 맛 본 후로 멈출 수가 없었다. 바삭한데, 고소하면서도 장어 향이 느껴져 정말 맛있었다.
명칭과 관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갯장어 샤브샤브라고 잘 모르고, 하모 샤브샤브라고 해야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 하모는 갯장어의 일본식 명칭이다. 포악한 성질의 갯장어는 뭐든 잘 물어뜯는 경향이 있는데, 일본말로 물어뜯다를 의미하는 ‘하무’라는 일본어에서 하모가 유래했다. 문제는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갯장어를 하모라고 더 많이 쓴다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은 장어 중에서도 특유의 고소함과 담백함 때문에 특히 갯장어를 정말 좋아하고 귀한 음식이라고 여긴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은 국내의 갯장어를 모두 일본으로 가져갔고, 갯장어를 수산통제어종으로 지정해 우리 국민은 잡아먹을 수 없게 해 놨다. 해방 이후에도, 갯장어는 오랜 시간 전량 일본으로 수출되어 왔고, 최근에 들어서야 국내 갯장어 요리가 입소문을 타며 국내에서 소비되기 시작했다. 2000년대 들어서야 국내 갯장어 수요가 늘어나면서 현재는 한 40% 정도만 일본으로 수출하고, 나머지 국내에서 소비를 한다고 한다. 문제는 갯장어가 여전히 하모라는 표현으로 더 많이 사용된다는 점이다. 나도 여수에 갔을 때, 갯장어를 ‘하모’라는 이름으로 처음 알게 되었고, 꽤 오랜시간 갯장어를 하모로 불러왔다. 누군가는 그냥 생선 이름일 뿐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하모는 일제강점기 시절 이 귀한 생선을 열심히 잡아 맛도 못 보고 일본으로 다 보내야 했던 아픈 역사가 담긴 씁쓸한 역사를 소환한다. 맛있는 생선인 만큼 제대로 된 이름으로 더 많은 사랑을 받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