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는 해산물만 맛있는 게 아니다
국내여행을 다니다 보면 항상 한식을 찾아 먹는다. 그 지역의 고유한 맛을 느끼고 싶기도 하고, 아무래도 인터내셔날 키친은 서울에 밀집되어 있어 서울이 더 잘할 거라는 편견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여수에 며칠 있다 보니 한식이 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끼 먹을 때마다 갯장어며 게장이며 거하게 한 상을 먹다 보니 조금 가볍고 캐주얼한 식사를 하고 싶어졌다. 가보고 싶어 저장해 놨는데, 항상 게장과 장어에 밀려 가보지 못한 식당들을 가봤다.
1. 여수 피어하우스
여수의 신도시인 웅천에 위치한 커피 앤 와인 바다. 스스로를 스페셜티 커피와 내추럴 와인을 전문적으로 판매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일단 분위기가 정말 힙하다. 여수 MZ 세대들의 아지트 같았다. 늦은 저녁에 갔는데 다들 커피를 많이 마시고 있었고, 가게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 바빠 보였다. 그럴 만도 한 게 구석구석 안 예쁜 구석이 없는 가게였다. 벽면에 포스터 액자들이 많았는데, 독일에서 열린 호크니 전시 포스터도 있었다. 마침 가게 이름도 Pierhouse가 아닌 Pierhaus(haus는 독일어로 집이란 뜻)여서 사장님이 독일과 인연이 있나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추가 주문을 할 때 슬쩍 물어봤는데, 사장님은 미국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셨다고 한다. 가게 오픈할 때 한참 독일 바우하우스(Bauhaus)*에 빠져 계셔서 가게 이름이 피어haus가 되었다고 한다. 어쩐지 가게 인테리어가 정말 멋지더라니. 아마 냅킨 디자인 또한 사장님이 직접 하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가벼운 저녁을 먹으러 간 거여서 식사를 위한 안주를 시켰다. 과일 부라타 샐러드, 오일 파스타, 잠봉 플레이트에 샹그리아 한 잔을 시켰다. 차를 안 가져왔으면 와인을 먹는 거였는데, 아쉬운 대로 혼자 샹그리아 한 잔을 홀짝였다. 샹그리아는 직접 담그신다고 하셨는데, 맛이 정말 좋았다. 특별히 튀는 과일맛이 없이 새콤달콤 밸런스가 조화로웠다. 메뉴는 아무래도 식사용이 아닌 안주용이어서 양이 엄청 많지는 않다. 세 가지 메뉴를 시켰는데, 둘이서 적당히 배부르게 먹고 나왔다. 음식 맛은 나쁘지 않았다. 사실 주문한 메뉴들이 재료만 신선하면 맛없기도 힘든 메뉴들이다.(샐러드나 잠봉 플레이트는 사실 플레이팅만 잘하면 되는 메뉴 아닌가ㅎㅎ) 오일 파스타도 괜찮았다. 싱겁게 먹는 편인 나에게는 딱 좋은 간이었는데, 평균적인 입맛에서는 좀 싱겁다고 느낄 수도 있다. 집에서 해 먹는 파스타 맛이라 좋았다.
식사를 다 마쳤는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 바로 집으로 가기가 아쉬워 커피를 시켰다. 분명 못 잘 껄 알면서도 에스프레소를 시켰다. 듁스커피의 마켓 원두였는데, 코코아와 베리향이 은은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상하목장 아이스크림을 사용한 아포가토!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여수 여행 중 헤비한 한식에 물려있었는데, 분위기 있는 와인샵에서의 가벼운(?) 한 끼를 먹을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2. 여수 비하이브. 특별한 아이스크림이 있는 곳.
이날은 이동이 있는 날이라 가벼운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그래서 숙소 건물에 있는 카페에 갔다. 벌집이란 뜻의 비하이브는 이름답게 여기저기 꿀벌을 연상시키는 인테리어들이 눈에 들어왔다. 전에 여수 여행 정보를 모으다 과일 모양의 무스케이크를 보고 언젠가 가봐야지 했는데, 지금은 무스케이크는 없고 초당 옥수수 아이스크림을 판매 중이다. 지역에서 나는 농산물과 제철 식재료를 사용하여 건강한 프랑스식 디저트를 판매하신다고. 비하이브 검색할 때 이것저것 맛보고 싶은 메뉴 많았는데, 계절에 따라 메뉴를 다르게 구성하시는지 없는 메뉴도 많았고, 그만큼 못 봤던 메뉴들도 있었다. 계절 재료를 사용하셔서 메뉴가 바뀌나 보다.
식사를 위해 우선 샌드위치 두 개와 샐러드를 주문했다. 잠봉뵈르와 루꼴라 프로슈토, 카프레제 샐러드를 시켰다. 맛은 다 괜찮았다. 맛있는데, 자주 먹어 상상할 수 있는 맛이다. 재밌는 건 샐러드를 시켰더니 가게 앞에서 키우시는 바질 화분에서 바질을 직접 따서 만들어 주신다. 장마와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가버린 우리 집 바질이 생각났다. 정말이지 한국은 허브 농사를 짓기에는 기후가 안 맞다. 내년엔 정말로 농사를 짓지 말아야겠다 또 한 번 다짐했다.
식사 후 디저트로 초당옥수수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셨다. 해남 유기농 초당옥수수로 만든 사실주의(ㅋㅋ) 아이스크림이라고 한다. 옥수수 부위에는 유기농 원유와 옥수수가 들어가고, 옥수수 수염은 꿀 아몬드로 만든 꿀타래다. 일단 비주얼이 너무 귀여워서 먹기가 아까울 정도였다. 옥수수 아이스크림인데 맛있다..ㅋㅋ 꿀타래랑 같이 먹으면 더 맛있는데, 꿀타래가 캐러멜처럼 입천장과 이에 들러붙는다. 그래도 멈출 수 없는 맛이다. 순식간에 흡입했다. 다른 계절에 와서 다른 디저트도 맛보고 싶어졌다. 여수에 이런 엄청난 디저트 가게가 있다니..!! 아무 서울에 있었다면 줄이 어마무시해서 나는 맛도 못 봤을 것 같다. 나올 때쯤엔 가게가 만원이었다. 다음 여수 여행 때 꼭 다시 들려야겠다.
* 바우하우스는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가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한 대안적인 예술교육기관이다. 당시 바우하우스에서는 순수미술과 건축과 같은 응용미술의 통합을 중시하였고, 이를 위해 교육 프로그램부터, 교수진 선발, 바우하우스 설립까지 전 과정에 그로피우스가 관여했다. 파울 클레나 칸딘스키와 같은 유명 작가들도 당시 바우하우스에서 수업을 했다. 바우하우스는 설립 이후 산업디자인에 중심을 두면서 가구, 디자인, 실험주택, 도자기 등의 다양한 작품들을 내놓았다. 건축과 산업디자인에 대한 바우하우스의 혁신은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대량생산이 확보되지 않아 높은 가격 탓에 대중화되지 못하여 어려움을 겪었고, 나치시대를 거치며 나치주의자들에 의해 1933년에 폐교되었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바우하우스의 흔적은 여전히 우리 생활에 남아있다. 당시 바우하우스에서 나온 디자인, 제품 디자인, 가구 등은 현대 대자인의 초석이 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미드 센추리 모던 또한 바우하우스가 미국의 인터내셔널과 결합한 것이다.
참고: wikipedia Bauhaus(https://de.m.wikipedia.org/wiki/Bauhaus)
테마로 보는 미술 바우하우스(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3572674&cid=58862&categoryId=588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