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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g satisfied Aug 15. 2022

22’07 전남기행 강진에서 백운옥판차를 마시다

백운차실에서 운치를 마시다

인터넷 서칭을 하다 해남에서 멀지 않은 강진에 분위기 좋은 찻집을 하나 발견했다. 20대만 해도 차맛을 잘 몰랐는데, 역류성 식도염을 겪으며 자연스레 커피 소비가 줄면서 차를 즐기게 됐다. 해남 읍내에서 20분 정도 차로 걸리는 곳에 있는 백운차실이란 곳이 있다. 주차를 하고 내리자마자 멋진 풍경에 감탄이 끊이지 않았다. 찻집 뒤로 펼쳐진 월출산 자락과 바람에 넘실거리는 벼 밭 풍경이 가슴을 뻥 뚫리게 해 줬다. 이한영 茶 문화원의 역사는 조선후기까지 내려간다. 다산 정약용은 18년의 강진 유배생활을 마친 후 양주로 다시 돌아가면서, 제자들과 다신계를 맺었다. 다신계는 제자들이 해마다 차를 만들어 1년간 공부한 글과 함께 다산에게 보내기로 한 약속인데, 다산의 가장 어린 제자였던 이시헌은 평생 이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일종의 제자모임이 아니었을까 한다. 이시헌 선생님은  다산에게서 배운 녹차 제조법을 이산흠에게, 이산흠은 이한영에게 전수했고, 현재는 이한영 선생님의 딸인 이현정 원장이 대를 잇고 있다. 이한영 선생님은(1868-1956) 일제강점기 시절을 보내며 당시 우리 차가 일본 차로 둔갑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최초로 한국 전통의 차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게 바로 백운차실의 시그니처 메뉴인 ‘백운옥판차’다. 이한영 茶 문화원에서는 한국 전통차의 맥을 잇기 위해 전통방식의 찻잎을 재배하고 연구를 통해 한국 전통차의 맥을 잇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백운옥판차와 백운차실은 다산과의 약속을 한 세기를 넘어 지켜온 신의의 상징이고 우리나라 차 문화의 정체성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백운차실 앞 풍경(왼), 백운차실 정원에 만개한 수국(오)
백운차실의 전경

매장 외부에 1830년 정약용이 이시헌에게 보낸 편지 내용이 소개되어 있는데, 일부를 적어본다.

“지난번 보내준 차와 편지는 가까스로 도착하였네. 이제야 감사를 드리네. 올들어 병으로 체증이 더욱 심해져서 잔약한 몸뚱이를 지탱하는 것은 오로지 떡차에 힘입어서일세. 이제 곡우 때가 되었으니, 다시금 이어서 보내주기 바라네. 다만 지난번 부친 떡차는 가루가 거칠어 썩 좋지가 않더군. 모름지기 세 번 찌고 세 번 말려 아주 곱게 빻아야 할 걸세. 또다시 돌샘물로 고루 반죽해서… ”

제자에게 차를 청하시는 스승님이 할 말을 다 하시는 게 재밌다..ㅋㅋ 보내준 차는 고맙지만 더 잘 만들어 보내라는 말.. 이런 까칠함과 지도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훌륭한 차를 마실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백운차실은 고즈넉함과 현대미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올해 이한영 차 문화원과 에피그램이 함께 콜라보를 하면서 백운차실이 새 공간으로 재탄생했다고 한다. 에피그램은 2017년부터 국내 소도시와 콜라보를 통해 브랜드 제품과 도시 콘텐츠를 소개하는 로컬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데, 올해 봄이 전남 강진이었다. 강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한영 茶 문화원과 다양한 협업을 기획했는데, 그중 하나가 백운차실이란 공간이다. 백운차실에서는 전통 차도 경험할 수 있지만, 올모스트홈을 통해 한옥체험도 할 수 있다.


백운차실 매장에서 한옥으로 가는 길목의 풍경. 항아리의 꽃(왼), 햇빛에 말리고 있는 양갱틀(중간), 백운차실의 한옥공간(오)

백운차실 메뉴는 꽤 다양한데, 이 날 우리는 백운옥판차(10,000원)와 꽃피는월산떡차(금잔화)(7,000원), 수제양갱(6,000원) 그리고 계절메뉴인 녹차빙수(14,000원)을 시켰다. 다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많이도 시켰다.. 차를 주문하면 매장 안에서 마실 수도 있고, 매장 옆 한옥에서 마실 수도 있다. 화장실에 들리며 한옥을 둘러보고선 사장님께 한옥에서 마시는 걸로 주문했다. 한옥에서 마신다고 하면 바구니에 메뉴를 담아 주신다. 매장에서 받아서 옆 한옥으로 가면 된다. 이동용 바구니까지도 얼마나 정갈한지, 백운차실에서의 모든 경험 하나하나가 운치 있게 느껴졌다. 우리가 들어간 한옥 방에는 손님이 없어 월출산 풍경과 함께 차분히 차를 즐길 수 있었다. 백운차실의 한옥은 전통한옥이라고 하기에는 현대식으로 재해석한 한옥에 가까웠는데, 고즈넉함과 현대미를 함께 느낄 수 있어 좋았다. 한옥 방에 통유리창이 나 있어 눈앞에 월출산을 두고 차를 마실 수 있었다.

한옥에서 먹는다고 주문하면 메뉴를 담아주는 이동용 바구니
한옥 매장에서 보이는 월출산 풍경

차에 큰 식견이 있진 않지만, 메뉴 얘기를 해보자면 백운옥판차는 굉장히 부드럽다. 녹차 특유의 떫은맛이 없어 부드럽게 넘어갔다. 월산떡차는 찻잎을 떡처럼 찧고 동그랗게 빚어 월출산 지역에서 바람과 햇빛에 발효시키는 한국의 전통 차다. 깊은 맛과 동시에 은은한 단맛과 구수함이 함께 느껴지는데, 홍차와 비슷한 맛이 난다. 처음 한 입 마시고는 월산떡차가 맛있다고 느껴졌는데, 월산떡차의 단맛 때문인데, 마실수록 부드럽고 깔끔한 백운옥판차에 손이 더 많이 갔다. 그리고 차를 시키면 양갱이 한 조각씩 나온다. 그걸 모르고 추가로 주문했더니 양갱파티가 되어버렸다.. 평소 대량 생산되는 양갱만 먹어봐서인지 굉장히 낯선 맛이었는데, 확실히 더 부드럽고 덜 달았다. 은은하게 단맛이 베어와 차와 함께 곁들이기 좋았다. 계절메뉴인 녹차빙수는 요즘 스타일의 빙수는 아니다. 투박하게 갈린 얼음에 밭과 떡, 녹차 아이스크림이 올라간 조금 레트로 한 느낌의 빙수 맛이다. 개인적으로는 녹차빙수는 많이 아쉬웠다.. 차라리 다른 전통 디저트를 맛볼걸..

차와 양갱(왼), 녹차빙수(14,000원)

창문 너머 강진 풍경을 보면서 차를 마시다 보니 2시간이 훌쩍 지났다. 한옥 구석구석 안 예쁜 곳이 없어 떠나는 게 아쉬웠다. 나오는 길 마당 정원에 수국과 봉숭아꽃이 만개해 있었는데, 마지막 기억을 공유하며 글을 마친다.

백운차실 한옥 정원에 활짝 핀 수국과 봉숭아

참고: 이한영 茶 문화원(https://www.1st-t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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