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길도 해수욕장의 모든 것
보길도는 이번 여름휴가의 끝이자 꽃이라 할 수 있겠다. 지난겨울 금오도 여행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이번 여름휴가에도 섬 여행을 꼭 넣기로 했다. 금오도에 갈까 하다가, 해남 밑에 있는 보길도에 들어가게 됐다. 고등학교 때 애정 했던 한국지리 인강 선생님이 보길도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게 말씀하셔서, 늘 마음 한구석 보길도에 한 번은 가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이번 여름에 들린 해남에서 멀지 않아 보길도에 삼박을 예약했다. 해남에 사는 친구 부부가 보길도에서 삼박을 한다고 하니 대체 거기 뭐 보러 가냐며, 하루만 지나도 심심할 거라고 했다. 금오도에 비해 보길도에 대한 정보가 많이 없어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안고 섬으로 들어갔다. 보길도에 들어가려면 해남 땅끝마을에서 배를 타야 한다. 해남 땅끝 선착장에서 노화, 보길로 들어가는 산양진항 가야 한다. 배 시간은 대략 1시간마다 있는데, 동절기와 하절기의 뱃시간이 다르니 확인하고 가야 한다. 우리는 해남에서 점심을 먹고 땅끝으로 달려 오후 2시 배를 탔다. 차와 함께 승선했는데, 뱃삯은 성인 2명 7,150*2= 14,300원, 승용차는 18,000원으로 편도 32,300원이 나왔다. 보길도에 들어가기 전날 밤 해남에 천둥번개가 쳐서 혹시나 섬에 못 들어갈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니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해가 쨍쨍했다. 땅끝에서 산양진항까지는 대략 30분이 걸린다. 선박 위로 올라와 멀어져 가는 땅끝마을을 구경하다 보니 금새 노화도에 도착했다. 노화도와 보길도는 연륙교로 연결되어 있어, 보길도에 들어가려면 노화도까지 배를 타고 연륙교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검색을 해보니 노화도는 인구가 약 5,000명 보길도는 약 2,500명으로 노화도가 보길도보다는 규모가 큰 것으로 나왔다. 실제로 체감하기에도 보길도에 비해 노화도에 식당이나 편의시설이 더 많아 보인다.
배에서 내려 보길도에 들어가는 내내 눈앞에 펼쳐지는 비현실적인 섬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등학교 시절 갔던 떼 묻지 않은 제주도의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딜 가나 사람이 거의 없어 유유자적할 수 있었다. 보길도에는 총 4개의 해수욕장이 있는데, 이번 섬 체류 중 4군데를 모두 들렸다. 해수욕장이 다 비슷할 것 같지만 저마다 특색이 있었기에 글로 남겨본다. 보길도에는 보옥리의 공룡알 해변, 예송리의 예송리 해수욕장, 백도리 가는 방면에 통리, 중리해수욕장이 있다.
1. 통리 해수욕장
도착 당일 해수욕을 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해서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 길에 있는 통리 해수욕장에 들렸다. 맑은 바닷물 뒤로 크고 작은 섬들이 펼쳐져 있어 섬 특유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보길도의 해수욕장에서는 가장 작은 규모의 해수욕장이었는데, 물이 맑고 수심이 깊지 않아 수영하기에 좋아 보였다. 모래도 고와 발 다칠 우려도 없었다. 우리가 방문했을 때는 두 팀 정도가 물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더없이 좋아 보였다. 바로 입수하고 싶었지만, 규모가 작은 해수욕장이어서 그런지 샤워시설도 운영 중이 아니고 지난번 무계획 입수에 따르는 뒷감당을 떠올리며 참았다.
2. 중리해수욕장
윤선도 원림을 갔다가 해수욕을 하러 중리해수욕장으로 갔다. 섬은 어딜 가나 아름다웠지만 태양이 정말 강렬해서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바다에 풍덩 빠지고 싶은 날씨였다. 도착한 날 봐 뒀던 통리 해수욕장에 갔는데 모래사장이 공사 중이어서 그 바로 옆 중리해수욕장으로 갔다. 중리해수욕장은 통리해수욕장의 빅 버전이었다. 고운 모래사장에 맑은 바닷물의 해수욕장이 었는데, 그 규모가 훨씬 컸다.
보통 바다 수영을 가면 래시가드나 기능성 옷을 입고 입수하는데, 과감히 수영복을 준비했다. 여름의 해수욕장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보길도엔 사람이 거의 없어 수영복을 입고 수영할 자신이 생겼다..ㅎㅎ 이 날도 이 넓은 해수욕장에 우리 포함 3팀이 해수욕을 하고 있었다. 물이 따뜻한 편은 아니었는데, 워낙 해가 강렬해서 차가움보다는 시원함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본격 바다수영을 할 줄 모르고 수경을 안 챙겨 온 게 너무 아쉬웠다. 바다수영이 어려운 건 수영장과 다르게 언제 어디서 수심이 깊어질지를 모른다는 거다. 얕다고 생각하고 물속으로 계속 들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팍까지 물이 차오르고, 파도가 한 번 치기라도 하면 가슴이 철렁한다..(난 좀 겁이 많다) 중리 해수욕장이 좋았던 점은 해수욕장의 경사가 완만해 비교적 안전한 바다수영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상하게 바다수영은 수영장에 비해 금방 지친다. 긴장을 해서 인지, 파도 물살 때문인지 바다수영은 확실히 금방 체력이 방전된다. 트레드밀에서의 10km와 등산 10km의 체력소모 차이인가 싶기도 하다. 수영을 하다 지치면 물에서 나와서 과일도 먹고, 책도 읽고, 낮잠을 자다 다시 햇볕을 견디기 힘들면 다시 바다로 풍덩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끽하는 여유여서 좋았다.
중리해수욕장에도 샤워실이 따로 없었다. 보길도 내 해수욕장에는 일반 해수욕장에 비해 기반시설이 부족하다. 육지 해수욕장처럼 파라솔이나 튜브 대여도 없고, 샤워시설도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여행 중 알았는데, 지금 노화도 보길도는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잦은 가뭄으로 상수도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3월부터 제한급수를 하고 있다. 섬을 떠나는 날에는 한 식당 사장님이 8일 단수에 들어간다는 말을 하셔 마음이 아팠다. 이런 상황에 해수욕장 샤워장은 는 말이 안 되지. 비치타월로 적당히 물기를 닦고 옷을 갈아입었다. 사실 다른 해수욕장에 비해 불편할 수 있지만, 이런 불편함 때문인지 오는 사람이 없어 오히려 바다를 만끽할 수 있었다.
3. 예송갯돌해수욕장
보길도는 모래 해변보다는 몽돌해변이 더 유명하다. 보길도에는 예송갯돌해변과 보옥공룡알해변, 이렇게 두 개의 몽돌해변이 있다. 예송갯돌해수욕장은 보길도 동남쪽에 위치해 있는데, 청환석이라고 불리는 갯돌이 약 1.4km 정도 펼쳐져 있다. 청환석이라고도 불리는 이 몽돌은 몇 만년에 걸쳐 파도에 씻기고 깎여 둥글둥글하고 표면이 굉장히 반들반들하다. 몽돌은 보는 것도 아름답지만 듣는 게 더 아릅답다. 바닷물이 드나들 때 몽돌에 부딪히면서 자그락자그락 소리를 낸다. 몽돌해변 위에 앉아 바다 너머 소안 군도 풍경을 보며 몽돌에 파도 부딪히는 소리를 들으면 그야말로 힐링이다. 날이 맑아 운이 좋으면 제주도도 볼 수 있다고 한다. 예송갯돌해수욕장에 갔을 때,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해수욕하기에 안성맞춤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갯돌해변이라 수심을 가늠하기도 어렵고, 밥숟가락 크기 정도의 몽돌들을 걷는 게 쉽지 않다. 해수욕장의 모래를 정말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반가운 해수욕장일 수는 있겠다.
예송리 해수욕장은 몽돌도 유명하지만, 해수욕장 뒤편의 상록수림 또한 빼먹을 수 없다. 예송리 상록수림은 300년 전쯤 마을 주민들이 태풍을 막기 위해 조성한 곳으로, 현재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동백나무와 소나무가 빽빽한 숲 사이사이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가볍게 거닐기에도 좋고, 해수욕 후 그늘에서 쉬기에도 아주 훌륭한 장소이다.
4. 보옥리 공룡알 해변
공룡알 해변은 보옥리 마을 안쪽에 위치한 해변이다. 이곳도 몽돌해변인데, 몽돌의 크기가 크고 둥글둥글하여 마치 공룡알을 닮아 공룡알 해변이라 불린다. 예송리해수욕장에서 멀지 않은 숙소에서 이곳까지 바다가 보이는 산길을 따라 걸어왔다. 낭만적으로 들리지만 꽤 힘든 등산이었다.. 공룡알 해변이 트래킹의 종점이었는데, 어두운 숲 너머 공룡알이 보였을 때의 안도감과 기쁨을 잊지 못한다. 공룡알 해변에서는 피서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예송리 해수욕장에 비해 몽돌의 크기가 꽤 커서 보행이 정말 어려워 그런 것 같다. 물 밖에서도 돌이 울퉁불퉁해 뒤뚱거릴 때가 있었는데, 물속에 들어가면 더 컨트롤이 어려울 것 같다. 보행이 어려운 만큼 보는 재미와 듣는 재미가 크다. 몽돌해변은 파오가 드나들 때의 자갈 부딪히는 소리가 몽글몽글 아름다운데, 몽돌소리의 끝판왕이 공룡알 해변이다.